다니엘과 변기세척솔

우아한엄마의사생활

by 우조


올해로 육아는 십 년 차에 접어들었다. 세 남매는 제 나이에 맞게 고유한 성장을 하고 있다(나도 정직하게 늙고 있고). 이 친구들과 매일 부대끼면서,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 있다. 공간 속 여백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가 신경이 과민해져서 숲속을 방황하듯이,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빈 공간을 찾아다닌다. 정신이 산만해지면, 그곳에 가서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면서 깊은숨을 내쉰다.


셋째를 출산하고서, 산후조리 중이던 때였다. 곧장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아이들도 본의 아니게 등교가 중지되면서, 모두 산후조리에 동참했다. 그들도 나도 외출을 못 하면 슬프고 우울해지는 병이 있는데, 그 병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 집에 있다가는 우리 모두 서로 좋은 말이 안 나올 것 같아서. 발걸음 하나 떼기도 무겁던 마음을 여미고, 꾸역꾸역 채비하여 공원으로 나갔다. 멍하니 서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뉴스에서 비 소식을 예고해서 그런지, 공원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했다.

아직 차디찬 2월의 공기가 마스크 안으로 훅 스며들어온다. 바람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말했다.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큰 나무들의 잎사귀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대꾸했다. 푸름과 잿빛이 신비하게 어울진 하늘 아래, 거대하게 자리 잡은 버드나무 군락지였다. 그때는 참 오묘하게도, 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오랜만에 나는 충분히 깊은숨을 쉴 수 있었다. 마음이 이내 조금씩 경쾌해졌다.


지금 나는 우리 집 식탁에서 거실을 바라보고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식탁 위에는 노트북만 달랑 놓여 있지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다. 여백의 미는 찾을 수 없는 구조. 거실에 깔아놓은 유아 매트 위에는 날마다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매일 예외 없이 어수선하다. 아이들은 셋이 자주 연극 같은 것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보이는 대로 다 꺼내서 소품으로 활용한다. 내가 보기엔 모든 풍경이 우스꽝스럽지만, 그들에게는 다 계획이 있는 것들이란다. 도대체 어떤 연극이기에…


그 외에도 나의 찻잔을 거치대 삼아서 장난감 공을 올려놓고, 건조기나 소파 밑에 숨겨둔 젤리와 먹다 남은 옥수수도 나온다. 치약을 묻혀놓았지만, 이미 화석처럼 굳어버린 칫솔도 있다. 슬리퍼 한 짝은 이쪽 방, 또 한 짝은 책상 서랍에, 나의 감시를 피해서 소파 뒤쪽으로 방공호를 만들고 식량을 섭취한 흔적들, 거기엔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과자들 부스러기가 잔뜩 널려있다(거듭 말하고 싶지만, 이 여자가 청소를 전혀 안하는가 생각하지는 말아주시길. 그러면 너무 억울하고 섭섭하다).


어느 날에는, 고이 길러오던 키 큰 떡갈나무 잎사귀에 애벌레 같은 무엇이 보였다. 한 3미터 떨어진 지점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던 흰색 타원형의 점. 잔뜩 긴장해서 가보니 밥풀이었다. '어떻게 여기 높은 곳까지 날아왔지? 식탁에서 여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밥풀을 떼면서 무의미한 동선을 그려본다.


한편,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기 앞의 생을 정성스럽게 일구어가는 중이다. 마음껏 놀고 어지르고, 탐색하면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아간다. 어디서든 재미를 느끼면서 깔깔대고, 즐거워한다. 이토록 빡빡한 세상에서 스스로 위트를 발견하면서 그들만의 여백을 누리고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쉼 없이 육아에 잠식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가끔 뇌가 멍해지고 느려지고, 주의력이 산만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재빨리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지 못할 때가 있다. 충분하게 깊은숨을 쉬는 것이 사치일 때가 있다. 살림이 자꾸 정체되고, 이제 정말 쓰러질 것 같을 때가 온다. 육아의 최전선에서 쉴 새 없이 파도를 맞다가, 내 모든 체력과 정신력은 바닥을 친다. 그럴 때면 자식이고 뭐고, 갑자기 눈이 희번덕거리면서 이성을 잃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비인격적인 인간이 된다.


고백하자면, 지금 말한 상황에서 나는 검은 봉지를 급하게 찾는다. 창고에 가서, 그동안 쟁여두었던 검은 봉지를 두개(그 날 기분에 따라 더 적거나, 많아질 수 있음)정도 가져와서 거실을 천천히 스캔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한 채 그들의 얼굴을 노려본다. 희망찬 다음 세대의 티 없이 맑은 얼굴을. 의견은 청취할 필요 없다. 거실에 늘어놓은 장난감들을 검은 봉지에 마구 집어넣는다. 어떤 것은 잠시 보류하거나, 정말 운좋게 살려주는 것들도 있다. 대략 5분 안에 엄마 눈에 거슬리는 모든 물건이 정리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일들이 일 년에 몇 차례씩 일어나고, 아이들 방은 순식간에 장례식 분위기가 되어 흐느낌 소리만 들린다.


언젠가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다,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기겁한 지점이 있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글을 써 내려간 주인공은, 맨 처음 수용소에 도착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떤 대령이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수용소에 모인 이들을 한 명씩 훑어본다. 손가락 하나를 좌우로 까딱하기만 하면, 사람들의 생사가 바로 결정된다. 가스실로 직행하느냐, 아니면 그 순간만큼은 죽음을 면하고 수용소로 들어가 조금 더 연장된 삶을 사느냐. 비인격적이고 기이한 세계 안에서, 대령의 손가락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기대고 있는 자신의 절박한 모습을 묘사한다. 아, 대령의 비인격적 행보와 내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날도 그랬다. 누적된 피로를 참을 대로 참다가, 체력이 완전히 떨어지면서 폭발했던 날이었다. 내 안의 미친 아주머니가, 길길이 날뛰면서 한참 동안 소리를 질렀다.


착하고 너그러운 엄마로 살고 싶은데, 언제나 나는 원점이구나! 자괴감을 견딜 수가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대로 주저앉아, 오랫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드니까, 눈앞에 변기세척솔이 보인다. 그놈이 내게 찡긋 윙크한다.


'아, 너... 그래 너, 거기 있었지'


이런 순간에 꼭 아는 체를 하는 저 변기세척솔은 나와 인연이 깊다.

막내 다니엘이 막 15개월에 접어들던 시기, 나는 그와 저 변기세척솔, 이렇게 셋이 나란히 누워 한동안 밤마다 같이 잤다. 우리는 그런 사이다. 다니엘은 그맘때쯤 꼭 저 세척솔을 껴안고 잤다. 밤중에 일어나서 그 찝찝한 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귀신처럼 알아채고 일어나서 저벅저벅 화장실로 간다. 다시 그 솔을 가지고 돌아와서, 자기 옆자리에 고이 누이는 것이다. 그 두 살배기가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내 쪽을 가만히 째려보는 것 같으면 코 골고 자는 척을 했다. 흔히 아기 애착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라는 6개월부터, 항상 그의 손에 들려있던 그것! 이건 아니라고, 이건 너의 애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엄마가 여기 있잖니! 제발 그만두라고 어르고 달래며 눈물로 애원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수면 장애가 왔고, 나는 너무나 예민해졌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에 이른 경험을 하고,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그저 계속 한 침대에서 동침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니엘은 변기세척솔의 쓸모를 아는 사람이었다. 변기 닦는 것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이 조용해서 약간의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할 때쯤엔.. 저 멀리서 찰랑찰랑 물소리가 들려온다. 곧 변기 중심부를 마구 쑤시며 튀어 오르는 물방울에, 환희로 가득 찬 아기의 까르륵 웃음소리도…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도 이미 게임은 끝나있다. '평소 나는 변기 청소를 열심히 했던가?' 찝찝함에 압도된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는 행복한 그의 얼굴을 향해, 독한 분노의 눈빛을 쏘아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변기를 쑤셔대는 조그맣고 다부진 주먹. 나는 곧 폭발해서 그놈을 잡아채고 욕조에 거의 날려 던진다. 광란의 변기 물 파티에, 내복이 흠뻑 젖은 그가 나를 향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얼굴에 샤워기로 물을 뿌려대면, 또 2차로 신난다고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폭발하네 이게.


한편, 사람이 무언가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고, 그 일에 몰입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적극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이다. 큰딸이 낳은 막내 손주에게 하늘의 별도 따주실 참이던 외할아버지는, 변기세척솔에 빠져버린 다니엘의 근황을 들으신 것 같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그윽하고 인자한 미소를 띠고서 다니엘을 부르셨다. 한 손에는 새 변기세척솔을 들고서.


“다니엘? 이건, 오직 다니엘 거야.”


결정적인 그 한마디로, 외할아버지는 손주의 마음을 영원히 훔쳤다.


기존에 쓰던 것은 스테인리스 재질로 인생살이 15개월을 갓 넘긴 입장에서는 약간의 무게감이 있었다. 그래서 한 손에 쥐기에는 좀 버거울 터였다. 그러나 외할아버지께서 하사하신 새 물건은, 플라스틱 재질로 그립감이 부드럽고 가벼워 보인다. 도구가 한결 용이해져서인가? 그보다 이 모든 뜻밖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걸까? 감격에 겨운 느린 발걸음으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한참 동안 새로운 세척 솔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직 새것 냄새 폴폴 나는 솔을 품에 안고 활짝 웃었다. 동화책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아가의 평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니, 나를 향한 승리의 미소였지.


다음 날 아침, 집안에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바흐의 곡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내가 좋아하는 첼로 선율을 감상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흐의 음악을 고요하게 휘감는 제3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모든 것을 질식시켜버리는 경쾌한 물소리. 근원지는 화장실로 추정된다. 아, 정말 그의 기쁨을 변기 물에 내려버리고 싶다.


외할아버지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은 이후, 다니엘은 더 이상 침대에 자신의 애착 솔을 눕히지 않았다. 새로운 변기세척솔은 전용 거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뭔가 깊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자신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일까. 다니엘은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변기를 쑤셨다.


가끔 그 주말 아침이 생각난다.


아이들의 편이 되고 싶지만,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는 날에,

어질러져 있는 거실 풍경이,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아이들의 흔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감사가 메마른 날에,

나만의 여백에 집착하다가 검은 봉지 가득, 그들의 소중한 추억을 다 버리고픈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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