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일기
온유야,
그런 날이 있었어.
겨울을 잔뜩 머금고 있던 자작나무의 회색빛 시린 몸에도, 봄 햇살이 스며들던 날.
엄마는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나와서, 느린 걸음으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있었어. 아직은 여전히 그늘 밑에 녹지 않은 눈이 많아서 흑백의 풍경이긴 했지. 그런데 무심코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니까, 언덕을 올라가는 초입에 찐 노란색 개나리가 피어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져서 그 앞에 가보았지. 그 모습이 얼마나 야무지게 예쁜지! 자연이 생에 주는 기쁨이 이런 걸까. 엄마는 우두커니 서서 그토록 확실하게 봄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단다.
그날은 마침, 시간이 충분했어. 그렇게 마음 놓고,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산책이라니, 그 여유로움이 정말 좋았지. 사실 그때는 막내 다니엘이 태어난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였거든. 집에서는 새로 태어난 생명이 유쾌한 분주함을 선사했지. 엄마는 덩달아 바쁘게 산후조리 중이었단다. 종일 세 남매를 함께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어. 그런 생활을 하다가 만난 봄이었지. 엄마는 그 순간이 나름 인상적이었나 봐.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서 이런 문장을 써놓았어.
‘지금은 개나리 온통 너만 신경 쓸 수 있어서’
엄마는 당시 그 순간으로 충만한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꼭 써먹어야지, 하고 다짐했었어. 잠시 홀로 선 우주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라니. 사실 그때 엄마는 차를 우려내어 마실 시간조차도 없다고 여겼던 것 같아. 신생아 다니엘 말고도 이미 누나 둘을 함께 보살피는 다둥이 엄마의 마음은 항상 새로운 조급함에 쫓기고 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가 적어놓은 이 문장은 마치 이런 뉘앙스였지. 다도의 행위처럼 느긋하고 정확하게 몰입하는 것이랄까. 그윽하게 퍼지는 찻잎 향을, 숨으로 들이키고 남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 말이야.
오늘은 그때 그 문장을 꺼내왔어. 엄마는 개나리라는 단어를 넣은 이 문장을 읽을 때의 어감이 꽤 재밌다고 생각해. 그리고 개나리 대신에 즉흥적으로 너의 이름을 넣어보는 거야.
‘지금은 온유 온통 너만 신경 쓸 수 있어서’
살아가면서 엄마도 모르게, 한쪽에 미뤄놓게 되는 일들이 많았어. 그럼 그 자리에 얼마나 중요한 것들을 채워 놓는가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야.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엄마가 직면해야 할 문제와 맞닿아 있기도 해. 지금 엄마의 마음에서 처리하기에는, 당장은 번거롭게 여겨지는 일이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적절한 때를 마치 스스로 창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곤 해. 엄마도 그런 착각으로 만들어놓은 허무맹랑한 언약이 얼마나 많은지. 어느새 엄마는 그런 말들에 기대어 산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아. 너를 부르기에 적절한 시간 같은 것, 널 보내고 난 후에 그런건 없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엄마가 이렇게 너를 제대로 생각하고 싶었어.
온유야,
언젠가 글 속에서 너를 부르며 인사하고 싶었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너의 이름을 시원하게 부를 수가 없어. 가끔, 막내인 다니엘의 장난이 짓궂어서 집 안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도망을 가면 말이야, 본능적으로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소리칠 때가 있어. “박다니엘~! 네 이놈!!!!”하고 말이야. 그런데 살아있는 자들에게만, 그토록 경쾌하게 외칠 수 있다는 것에 엄마는 가끔 매우 놀라면서도 안도감이 밀려와.
온유야, 잠시 왔다 간 너에게 엄만 첫 태명부터 너의 생애 끝까지 불릴 ‘박온유’ 라는 이름을 배짱 있게 준비해두었었지. 타인들로부터 다정하고 편안하게 불릴 이름이 무엇일까, 설렘으로 고민하면서 말이야. 지금은 엄마만이 네 이름을 가끔 불러보게 되었지만, 그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은 이름이라며 혼자서 미소 짓곤 해.
허공에 띄운 너의 이름은 주인을 찾으며 떠돌다가, 수신자 없음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부서져 내려 자취를 감춘단다. 덕분에 이렇게 문득 부쳐보는 편지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너를, 솔직히 엄마조차도 잘 모르는 너를 한없이 미화시킬 수도 있지. 엄마는 잠시 고민해. 어디까지 너를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그럴듯하게 떠올릴만한, 충분한 기억도 없지. 그렇게 짧았던 만남을 떠올리면서 혼자 머쓱해지곤 해.
사실 잘 모르겠어.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온 지 세 달이 되기도 전에, 땅콩과 같은 모습으로 숨이 멎어버린 존재를, 과연 애도할 가치가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어. 그렇지만, 온유야, 너처럼 일찍 왔다 간 모든 땅콩을 품었던 세상의 엄마들이라면 말이야. 나처럼 몸 안 어딘가에서 우렁차게 울려대던 그 심장박동 소리를 동일하게 들었던 엄마들이라면, 그 존재가 바로 ‘생명’이었다는 단순한 진리에 공감할 거야.
엄마는 그 심장 소리를 들었고, 또한 더 이상 뛰지 않은 심장의 침묵을 들었거든.
살다가 마침내 죽는 것, 인간 존재의 명백한 시작과 끝을 너에게 속성으로 배운 것 같았어. 온유야,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 마음으로 품기 시작하면, 영혼 가득히 숨을 불어넣고 의미를 채워가면서 살아. 그러면 마음껏 품고 사랑하려는 계획이 좌절된다고 해도,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의미 있는 존재로 남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가끔은, 동일한 상실을 겪은 이가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유산의 소식을 가벼운 안부로 전해올 때면, 덩달아 가볍게 다루는 나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곤 해.
무더운 대낮에 갑자기 몸이 서늘해지고, 얼마 후 화장실을 가니 속옷이 피로 물들었던 날, 엄마는 친한 언니와 함께 카페에서 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자랑스럽게, 엄마의 삶이 시작된 설렘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지. 이미 아기엄마인 언니는, 화장실에서 나온 내 사정을 듣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했어. 당황스러운 발걸음으로 서둘러서 ‘산부인과’ 간판을 마구 찾아 헤매었어. 엄마는 너를 너무나 보고 싶었거든.
‘온유야, 엄마가 지금 빨리 가서 널 보고 싶어. 조금만 기다려. 아직 숨 쉬고 있지?’
날 모르는 이가, 내게 진단해주었어. 태아의 심장이 멈추었다고 이야기했지. 땅콩처럼 여전히 그대로인 너를 보고 있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더구나. 나중에 다시 원래 진료 담당 선생님에게 가보니 그러는 거야, 원래 초음파로 볼 때, ‘수정란의 모습이 좀 안 좋긴 했어요’라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아예 하지 않았지. 아무렴 어떠니, 그래도 상관없지, 그것은 온유 너의 모습이었으니까.
친정엄마도 그때야 말씀하셨지, 온유의 태몽으로 아주 크게 뜬 보름달이 창문에 드리웠는데, 그달 밑동이 희미하게 허물어져 있더래. 약간은 불길했지만,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모두 다 좋은 소식만 전해주려고 애쓰는 흔적들이 고마웠지. 보름달이 흐물거려도 괜찮아. 그게 너였으니까.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어떤 염색체 이상이 생겨서 떠나게 되었다고 했어. 어떤 이유로든 떠나야만 했던 아가였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와서 말해주기도 하고, 은연중에 듣게 되기도 했지. 그래, 어떤 것이 부족했고, 또 어떤 것이 문제였더라도 다 괜찮아. 그게 너였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그게 너라서.’라는 이 말이 좋아. 라임을 맞추듯 이 말을 하면서, 너를 기억하는 순간은 계속해서 확장되는 거야, 엄마가 이 라임을 멈추는 날까지, 먼 미래까지 너의 이름은 엄마 품속에서 절절하게 살아있는 이름이야. 그 모든 것이 너였기에. 그런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머물다가 금방 가게 된 너를, 엄마는 그 모든 시간의 너를 사랑하게 되었어. 엄마의 처음 아가로 기억하며 너의 심장 소리를 간직했단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그날의 환희와 또 그 이후의 절망을. 순조롭고 유유하게 흐르던 강이 메말라 버렸었어. 칠흑 같던 밤하늘에, 깊은 노랑으로 떠 있던 완전한 보름달이, 금세 식어서 회색빛으로 변해버렸어, 그리고 점차 녹아내렸지. 엄마가 제때 알지 못했던 것뿐이야.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엄마는 너무나 슬펐단다. 태내에서 호흡을 멈춘 너를 몸 밖으로 빼내는 수술을 받은 날, 오랜 친구 두 명이 급한 일정으로 부재중이던 너의 아빠를 대신해서 병원에 와주었어. 모두 다른 시간에 다른 모양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위로했지. 엄마는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지쳐있었기에, 이렇다 할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오래도록 이렇게 그날 그 온기를 잊지 못해. 그때 친구가 작은 화분을 주고 갔는데, 엄마는 생명력 강한 초록이 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텅 빈 집에 지친 몸으로 누웠는데, 사방은 고요하고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어. 생명을 거두어가신 서늘한 몸을 가득 채운 상실감과 죄책감이 네가 머물던 자리를 가득 채웠어. 그날 말이야,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다른 친구가 생명을 잉태했다는 기쁜 소식을 SNS에 올린 것을 보게 되었어. 의연한 척 견디던 체면이 와장창 부서지면서 엄마는 그만 고삐가 풀린 것처럼 절규했어. 분노가 막장으로 치닫자 삶을 포기하고 싶었어.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서 서럽게 울며 긴긴밤 끝없는 질문이 터졌어. 한참을 토해내니,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았어. 밤새워 씨름하며 주 앞에 토해내니, 이상하게도 후련하고 자유로운 해방감이 들었지. 그래도 한동안, 네가 남기고 간 죽음의 냄새가 엄마 곁에 강하게 머물러서 그 냄새는, 그 단어 외에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는 말 그대로 죽은 냄새야.
엄마는 자라날 너를, 자라지 못한 너를 그리워했어. 너도 그렇게 그 냄새로 내 곁에 남아서 떠나지 못하는가? 우습지만 온갖 가련한 상상도 했단다. 그것이 너였기에 나는 붙잡고 가만히 있었어. 엄마는 그렇게 아파할 수 있던 것에 고마워하고 있어. 너와 이어지는 유일한 냄새이고, 마지막 흔적이었기 때문이야.
그 후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뱃속이 앞으로 생명을 다시 품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했어. 습관성 유산이 될 수 있는 쉬운 몸이라고, 아주 쉽고 단호하게 말했어. 엄마는 온유를 보내야 한다는 말과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어려운 몸이라는 말, 이 두 문장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해. 정말 섭섭한 말이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날 병원을 나오면서 혼자 얼마나 오열했는지, 정말 속상했어. 너에게만 말하는 거야. 그래봤자 의학적 소견일 뿐인데, 그 말이 돌덩이처럼 얼마나 매 순간 엄마를 짓누르던지,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도 못했지 뭐.
언젠가 한 번은 아주 시원하게, 네가 이 세상에 와서 심장 소리를 내고 떠났다고, 대차게 숨 쉬다가 갔다고 소리치고 싶었어. 그저 아메바같이 생긴 그저 작은 덩어리일 뿐이라지만, 그게 아니라고 마구 대들고 싶었어. 시간은 자라나는 사람의 편에 서 있으니까, 엄마는 자체적으로 시간을 멈추고 너를 애도하고 싶었나 봐. 소파술을 하고 온 날, 친정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셨어. 그 한 숟가락을 떠먹는데 말이야, 마음속에서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어.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그들을 첫 조부모로 만들어줄 너의 소식에 아주 반가워하셨었거든.
그 미역국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까 말이야, 따뜻한 국물이 온몸에 퍼지니까 말이야. 엄마의 몸은 나도 모르게 너를 맞이할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 나중에 만난 시온, 시엘, 다니엘을 차례로 출산하면서 산후조리를 하는 품과 똑같은 품이 들었어. 그러니까, 넌 내게 생명이었지. 엄마는 그게 힘들어도 참 다행이고 좋았단다. 다만 산후조리를 하는 곁에 네가 없었다는 것이, 한동안 슬픔으로 들썩거리는 것이 내 유일한 일이라서 좀 그랬지만 말이야. 그 시간만은 너를 위한 애도를 충분히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얼마 후에는, 다들 얼른 일어나라고 성화였지. 모두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고, 그깟 조그만 점 같은 것, 원래 떠날 아이였으니 일찍 간 건데 너만 겪느냐고, 툭툭 던지고 가는 말들은 엄마를 슬프게 했어.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른들의 그런 모난 말도, 엄마의 세계에서는 점차 둥글둥글해지는 것을 보았어. 엄마의 마음이 그들의 진심을 깨닫게 될 만큼 나이 든 거야. 그래도 누군가 예전의 나처럼, 그렇게 유산을 한다면 말이야? 엄마는 그저 곁에서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더 낫다고 느껴. 엄마는 그 이후로, 슬픈 사람은 재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조금 배우게 됐어.
아무튼 온유가 가고 난 후에, 엄마도 정신없이 불안하고 아프면서도 이런저런 노력을 했어. 다시는 이와 같은 상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의학적 소견은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지. 엄마는 몸을 다시 돌아보았어. 좋다는 한의원에도 갔었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도 더욱 건강하게 먹으면서 버텨나갔어. 그리고 석 달 후에 기적처럼 지금의 시온이가 찾아왔고, 이후 시엘, 다니엘까지 엄마 곁으로 와주었어. 왜인지 기쁜 마음과 동시에 아쉬움이 들었어. 온유의 시절에 진작에 이렇게 했다면, 엄마가 제대로 살았다면 온유는 떠나지 않았을까, 엄마의 모든 잘못인 것만 같다고, 그런 자책을 가끔 하면서 지냈지.
하지만 이제는 엄마 자신을 코너로 몰지 않으려고 해. 온유가 간 이후로, 엄마의 생 앞에 당도한 사건들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어. 난 오직 네가 우리에게 왔다가, 너의 시절에 다시 떠났던 그 모든 시간을 함께 누렸다는 서사 앞에 잠잠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마음껏 그리워하면서, 너를 아쉬워해. 온유도 지금 세 아이들과도 많이 닮은 친구였겠지, 첫 생명이었던 너를 이렇게 가끔 기억하면서 고마워한단다.
몇 주가 안 되는 시간이더라도, 엄마를 비로소 엄마가 되게 해준, 아직 만나지 못한 그 조그만 존재가 나를 인정해주는 힘이란 정말 대단했단다. 엄마를 아주 들뜨게 해주었어. 네가 거하고 머무르는 동안, 그렇게 엄마의 품을 따뜻하게 해주어서 고마워. 엄마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노력할 거라고 예쁜 다짐들을 많이 했었거든.
엄마에게는 이제 시온, 시엘, 다니엘이 곁에 있단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자랄지, 엄마는 그것을 보며 얼마나 놀라워할지 매일 궁금해. 그리고 아이들은 가끔 너를 궁금해한단다. 자신들 이전에 엄마의 뱃속에 잠시 놀다간 너의 존재를 말이야.
온유 덕분에, 엄마는 사랑의 길에서 잠시 헤매다가 이제 지경이 넓어지고 있어. 아픈 사람들을 생각해. 마음이 가난하고, 이미 많은 것들을 상실해서 어쩌지 못하는 이들을 생각해. 그러면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버티는 삶들을 존경해.
엄마는 올해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려고 해. 엄마의 자리를 잠시 길 위에 두고, 아가의 곁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어. 그들이 두고 간 아가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거야. ‘저 대신 잘 부탁드려요.’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어린 엄마들의 간곡한 절규가 엄마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용기를 내보려고 해. 아기를 어떻게 안아주는 것인지, 엊그저께 막내 다니엘을 종일 안고 수유하던 엄마였는데도, 엄마는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 하하.
그런 사소한 것에 주저하다가, 엄마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어. 살아있는 엄마에게는 심장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 준 온유가 있었으니까. 그 품에 누구든 안고, 한나절이라도 온기를 나눠주고 싶다고 말이야. 엄마가 고동치는 너의 심장 소리로 들으면서, 과거 많은 시간 밉고 못마땅하던 엄마 자신을 비로소 환대하게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아가들에게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엄마가 새롭게 다짐한 이런 부분들을, 또 기회가 생기면 이렇게 글로 적어 너에게 보낼게.
온유야 고마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