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일기
남편의 유학으로 한동안 캐나다에서 머물렀다. 서울 토박이로 나고 자랐던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꽤 오래 떠나 있던 시절. 낯선 땅에 와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골고루 많았다. 그래도 아직 젊어서 그런지, 어리어리한 적응기조차도 배워가는 시간이려니 단순하게 생각했다. 매일 기대되기도 하고, 좋은 인연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도 가끔, 잘살아 보려는 나를 찾아와서 미치게 만드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 냄새였다. 대한민국이 뭐라고, 광대한 청정자연이 너른 품으로 안아주는 캐나다에서, 나는 매연과 미세먼지로 탁한 서울 해 질 무렵 그 공기를 못 잊어 가끔 지독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오랜 시간 내 몸에 젖어든 서울의 미운 기억, 고운 기억이 모두 뒤범벅되어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이제 어딘가로 또다시 떠나갈 사람이므로 근본적으로 정착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마음을 기꺼이 열어주는 이웃이자 타인에게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었다. 다양한 헤어짐을 많이 겪으며 그 땅에 터를 잡아 온 이민자들이, 또다시 용기 내 베푸는 사랑과 환대는 깊고 무겁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으로, 나에게 적절한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밀려들던 고독감. 그건 내가 꼭 다루어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서울 냄새를 들이마시고 내쉬던 해 질 녘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그나마 유지하던 유리멘털마저 와장창 깨지는 날에는, 창백한 몰골을 하고서 반대 방향인 한강 다리까지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러면 마치 나를 수혈해 주려고 나타난 듯, 붉은 노을이 내 전부를 온전히 물들였다. 그 앞에서는 바쁜 도시 인간인 척하는 것도 좀 촌스러운 일이었다. 한시적 낭만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까지 나를 뜨겁게 달래주면, 꽁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내 작은 우주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직장의 그 미친 띠로리라 기억도 바로 삭제된다. 퇴근길의 마음이 한결 가볍고 다정해지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고말고.’ 하면서. 뭐 도리가 있겠느냐고 피식 웃으면서, 노을이 아니면 좀 불가능한 이해를, 사과를, 다짐을 한다. 내일 또다시 부서질 용기를 내본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노을이 질 테니까.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옆 마을 써리(Surrey) 끝자락에는 밴쿠버의 명소라 불리는 크레센트 비치(Cresent Beach)가 있었다. 내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언제나 내 앞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것이, 거기에도 있었다. 우리 가족이 자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석양. 노을 곁에 앉으면 아이와 어른의 언어가 구분되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저 반해버렸다는 제스처로 넋을 잃고, 한참 동안 노을을 바라보다가 만족스럽게 충전되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뷰티인사이드'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여자주인공 '홍이수' 앞에, 매일매일 다른 얼굴로 나타나던 남자 '우진'이 있었다. 남자로, 여자로, 노인으로, 아이로, 외국인의 모습으로…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늘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사랑하는 연인 앞에 나타나던 남자 주인공이 인상적이던 영화. 매일 바뀌는 연인을 사랑할 수 있겠냐는 물음으로 시작되던 판타지 영화였다.
노을이 꼭 그랬다. 매일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던, 하늘의 판타지 같은 것. 내일이 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도 속사람은 일관적인 사랑. 붉게 물든 세상 앞에 선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스르르 무장 해제된다. 너무 아름답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것 같아서, 어울리는 표현을 찾을 때까지 나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에는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아 주고 싶다. 노을이 지는 순간, 이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탄생이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절망이 물거품처럼 부서질까!
나는 노을이 너무 좋다.
B-612 소행성에서 살던 어린 왕자는 우울하거나, 쓸쓸할 때 혹은 너무 슬플 때면 석양을 바라본다. 그 소년이 살고 있던 행성은 얼마나 작은지, 언제든 의자 방향만 조금씩 옮겨주면 얼마든지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어느 날은 행성을 방문한 조종사에게,
"어떤 날에는 저녁노을을 마흔네 번이나 본 적도 있어요, 마음이 너무 슬퍼질 때면 저녁노을을 보고 싶어 져요." 하고 말하니,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날은 네가 정말로 기분이 안 좋은 날이었겠구나."
이 말에 어린 왕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진심으로 어린 왕자가 말한 '마흔네 번'을 부러워했다. 어린 왕자의 유일한 일과는 바오밥나무의 싹을 캐거나, 그렇게 석양을 바라보는 일이다.
나의 일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 석양을 정말 매 순간 그리워할 정도로 슬프고 힘들고, 절망스러운 때가 있었다. 캐나다의 두 번째 집에 살 때, 이층 안방 창문을 위로 올리면 옆집 할머니네 밤나무가 보였다. 현실이 왜 그토록 두려웠던 걸까, 그 소행성처럼 작은 방에 나를 스스로 가두고는 의자의 방향만 조금씩 돌려가며, 종일 그 나무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자면 시간이 흐르고, 바람의 지도가 보였다. 그렇게 나무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면, 주위가 아득해지면서 어김없이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그제야 나는 옛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허공에 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속울음을 내뱉었다. 마음이 허약해서, 기운을 차리려고 해도 어쩌지 못하던 날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우울증'이라는 병이었나 보다.
넉넉하게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지, 하루는 그날의 석양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어김없다는 말도 무용한 날이 올 것이라고, 두 딸과 남편을 위한 밥때가 되었다고. 나는 천천히 주방으로 내려가 그들을 위한 밥을 지었다. 그때야 조금 사람답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시계의 초침과 분침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나는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건 여담인데,
그렇게 우울증으로 고생하며 몸도 마음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시절,
나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증이 심했다.
그러나 내가 죽을지언정, 가족들은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뜨거운 책임감(진짜 이상한 심리)으로, 내 선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양질의 식사를,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캐나다 코스트코는 대량의 질 좋은 돼지고기를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팔기 때문에, 우리 같은 유학생들은 코스트코를 자주 애용했었다. 나는 거기서 팁을 얻었다. 돼지고기 큰 덩어리를 사 와서, 식사 때마다 식단을 밥, 수육, 상추로 구성하여 내놓았다. 기력이 하나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 정도의 조리도 너무 힘들었지만… 아무튼 고기, 밥, 야채, 김치 정도가 가족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말 최선의 식단이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고기는 꼭 먹여야 하니까.
그렇게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때까지, 가족들은 매우 자주 수육을 먹어야 했다.
나중에 남편과 남동생(한동안 캐나다에서 같이 살았음)이 말하기를,
밥때만 되면, 이층에서 좀비처럼 내려와서 말없이 수육을 만들고,
밥상을 차린 후, 다시 저벅저벅 올라가는 모양새가 꼭 수육 귀신같았다고.
너무 을씨년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했다.
한두 끼도 아니고, 끼니마다 정말 고역이었지만
아픈 마음으로 밥을 차려주는 아내가, 누나가
얼른 우울증에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꾹 참고 먹었다고.
남동생은 그 시기에 평생 먹을 수육을 다 먹은 것 같아서,
그 이후로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수육의 르네상스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