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촬영은 처음이라 1

by 자두와두

캔모어가 작고 조용하지만, 시원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라면, 밴프는 여행지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캔모어와 다른 가장 큰 특징으로 중심 거리에 시원하게 넓은 도로를 볼 수 있는데, 1차선을 제외하고는 차량의 출입을 막아둔 이 도로는 국립공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모여 이곳이 관광지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분주한 군중이 만드는 밴프의 분위기는, 캔모어와는 크게 다를 리 없는 로키산맥의 절경조차 다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같은 대자연이라고 할지라도 주변 마을의 분위기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밴프였다.

푸른 하늘 아래 야외 자리가 너무나 매력적인 밴프의 한 식당에서, 준호와 태영이 형일을 잡아먹을 듯 보고 있다. 표정으로 미루어볼 때 좋은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을 짐짓 눈치챌 수 있었다.


“진짜 아니라고 하자. 아니어야 할 거야.”

“아니어야 하는 건 아는데, 세상일이 어떻게 맘처럼 그렇게 되나, 그렇지?”

“아예 하나도 없어? 진짜로? 우리 숙소 나와서 지금까지 거의 두 시간이야. 근데 정말 하나도 없어?”

“네….”


준호가 눈을 질끈 감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태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형일의 손에 들린 장비를 낚아채 확인하기 시작했다. 형일은 시종일관 민망하게 웃다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태영의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거 뭐 찾아볼 필요도 없네. 영상이 아예 없구나. 초기화를 한 건가?”

“초기화할 줄도 몰라.”

“영상 찍을 줄도 모르는 것 같은데?”

“그건 알지….”

“아는데 왜 안 찍었어. 자 변명해 봐.”

“일부러 안 찍었겠냐….”


능글맞게 빠져나가는 건 이미 글렀다는 판단에 형일의 시선은 점점 내려가기만 했다. 그러던 중, 돌아서서 잠시 숨을 고른 준호로부터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찍으면 되지. 이미 안 찍은 걸 어쩌겠어. 그치?”

“그치? 지난 일은…”

“거기서 그렇게 신나면 안 되고 인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네….”


편을 들어주는 준호가 반가웠던 형일은 순식간에 눈을 반짝이다, 다시 들어온 지적에 이내 시무룩해졌다. 한마디로 형일을 조용히 시킨 준호가 이어서 말했다.


“사실 빨간불 안 들어온 걸 아무도 못 본 거니까, 이제 셋이 다 이 빨간불 신경 써서 보면 되지. 그리고 오히려 이게 더 재밌을 수도 있어. 유튜버들 막 실수로 촬영 안 했다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거 많이 봤잖아? 오히려 유튜브 각인 거지.”

“상당히 긍정적이네, 준호.”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냐. 빨리 버스나 타러 가자. 레이크 루이스 가서부터 잘 찍으면 되지.”


갑작스럽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정리한 준호는 자리를 정리하고는 앞장서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태영과 형일도 준호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오늘 아침 캔모어에서 출발해 밴프에 도착한 세 사람은 본격적인 국립공원 투어에 앞서 밴프 시내를 잠깐 둘러보고 여행자센터에서 안내문을 받고 국립공원 입장권도 구매했다. 그다음은 촬영을 위해 신경 써서 고른 점심시간이었다.


“형일, 너 그 푸틴집 저장한 거 있지?”

“어 단톡방에 올릴게. 그리고 어제 그거 여기도 있다고 그랬지?”


형일이 태영을 슬쩍 보며 말했다. 지칭 대명사밖에 없는 형일의 말을 찰떡같이 이해한 태영은 핸드폰을 꺼내어 들었다. 준호는 처음 듣는다는 듯 물었다.


“그게 뭔데?”

“아, 단톡방에 올릴게. 어제 캔모어에 맛있어 보이는 게 있더라고. 비버테일이었나?”

“맞아 그거. 진짜 비버 꼬리같이 생겼다?”

“비버 꼬리 본 적 있어?”

“없다. 이 자식아.”


단톡방에 올라온 두 음식점을 확인한 준호는 식당 위치를 반영해 조용히 오늘의 동선을 계산했다.


“그럼 일단 비버테일 먹고, 푸틴까지 해서 점심 때우고, 그 바로 옆에 셔틀버스 있으니까 타러 가는 길에 간식 좀 사 들고 가면 되겠다.”

“좋습니다. 내비가 따로 없네요.”

“경로를 이탈하면 때릴 거니까 말 잘 듣고.”

“재검색을 해줘야지…. 역시 기계를 따라갈 수는 없구나.”


세 사람은,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한 매장에서 캐나다 국민 간식이라는 비버 테일을 향해 갔다. 식당 이름부터가 BEAVERTAILS 라서 헷갈리지 않고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비버 테일은 비버의 꼬리처럼 둥글고 넓적한 반죽을 튀기고 그 위에 토핑을 얹어 먹는 음식이다. 식사라기보다는 간식이기 때문에 토핑은 누텔라나 생크림에 바나나 같은 과일을 얹어준다.

이런 사실을, 형일과 태영은 비버 테일 매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당황한 형일이 먼저 말했다.


“뭔가 디저트 같은 느낌이네?”

“그러네. 약간 와플 느낌인데?”

“이거 그러면 하나 해서 나눠 먹자 어때. 이따가 다시 와서 먹을 시간 없어.”

“그렇긴 해. 온 김에 맛이나 보고 가자 그럼.”

“좋아. 토핑 뭐 할래? 난 누텔라 좋아해.”

“그럼, 누텔라에 바나나?”

“역시, 식성 잘 맞아. 아주 좋아.”


매장이 협소한 탓에 의자와 식탁은 길가의 화단과 태영의 손바닥으로 각각 대체했다. 비버테일은 갓 튀긴 따듯한 도우에 누텔라 초콜릿이 잘 녹아 눈으로만 봐도 달고 맛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당충전의 시간이었다.


“음! 바삭해!”

“음! 괜찮네!”

“아니 맛 표현을 잘 해봐. 이래서 어디 영상 분량이나 나오겠어?”

“했잖아. 바삭하다니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도우 튀김과 달콤한 토핑의 조합은 한국의 호떡을 떠올리게 한다. 도우의 맛은 길에서 파는 쫄깃한 호떡보다는 바삭한 호떡 튀김에 더 가깝다. 비슷한 도우를 사용하지만, 위에 얹어 먹는 누텔라가 도우의 맛을 호떡 튀김이 아닌 비버테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비슷한 듯 다른 비버 테일은 게눈감추듯 사라졌다.


“다 먹었다. 밥 먹자 이제.”

“좋아. 이제 본게임이지.”

“당 충전하니까 정신 확 드는데?”

“그치? 나 좀 기운 확 나는 것 같아.”


누텔라로 가벼워진 발걸음이 향한 곳은 본격적인 점심 메뉴로 선택한 푸틴 가게이다. 푸틴은 감자튀김 위에 치즈와 그레이비소스를 잔뜩 뿌린 요리이다. 그리고 기호에 따라 고기를 얹어 먹는다. 캐나다에서 먹어봐야 할 요리로 손꼽히는 만큼 어디에서나 푸틴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밴프에 있는 푸틴 식당도 식당 이름이 푸틴인 만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도착한 푸틴 가게에서는 훈제 고기가 들어간 푸틴과, 고기 샌드위치를 하나씩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2개 해서 30달러가 넘으니까, 지금 3만 원 넘게 나간 거지?”

“아 그러네, 물가가 쉽지 않긴 하다. 밴프라서 그런가?”

“고기나 치즈 많이 주겠지 뭐.”

“맛있었으면 좋겠다.”


비버 테일보다 빠르게 나온 푸틴과 샌드위치는, 비싼 만큼 파괴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잘 튀겨진 감자튀김과 덩어리 채로 아낌없이 올라간 치즈, 그 위에는 그냥 봐도 탱글하고 기름진 훈제 고기가 뿌려져 있다. 이 모든 건 라면을 끓여도 한참이나 남을만한 은박 그릇에 한가득 담겨있어 1인분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양이었다. 그리고 고기 샌드위치는 붉은 훈제 고기가 빵 사이에 겹겹이 끼워져 있어 한입에 먹을 수 있으면 먹어보라는 듯 도발적인 두께를 자랑했다.


“와…. 3만원 어치 맞네.”

“그러게. 돈값 하네. 빨리 먹자.”

“빨리 먹으면 안 되지. 말을 하면서 먹으라고. 지금 찍고 있잖아.”


비버 테일의 두 배가 넘는 양이었지만, 이 건장한 청년들은 이 역시도 10분이 걸리지 않아 해치워버렸다. 대화나 맛 평가 따위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사 정도로 대체했다. 음식이 금세 사라진 그릇을 내려놓으며, 태영은 이제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좀 배부르다.”

“앉은 김에 우리 촬영한 거 잠깐 볼까? 잘 나왔나?”

“좀 재밌을 것 같아 맞지.”

“우리끼리만 재밌을 수도 있어. 일단 한번 보자.”


형일은 손에 들고 있던 고프로를 켜서 밴프에서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다. 아니,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확인하려 해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동영상 목록을 아무리 확인해 봐도 촬영된 영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일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이 열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두 사람에게 전달했다.




앞장서서 가던 준호가 방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렸는지 갑자기 뒤를 돌아 태영과 형일에게 소리쳤다.


“아니 근데 야, 이제 우리 이틀 됐는데 하루는 오태영이가 여권 놓고 오고!”


태영이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본다. 그 와중에 본 산이 너무 멋진 나머지 잠시 상황 파악 못 하고 탄성을 지를 뻔 했다.


“하루는 민형일이가 2시간이나 고프로를 그냥 덜렁 들고 다니고!”


형일이 준호를 보고 민망하게 웃었다.


“놀러 와서 너네 때문에 화병 나겠어! 너네 때문에! 좀 계획한 대로 스무스하게 하루만 보내보자 제발. 진짜 이따가 트래킹하러 가서 무슨 일이 생길지 무서워서 못 살겠다!”

“진정해 진정해. 네가 그랬잖아. 유튜브 각이라고.”

“그걸 찍었으면 말을 안하지! 유튜브 각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그걸! 그냥! 어?”

“야 태영, 가자가자. 여기 계속 있으면 얘 숨넘어가겠다.”

“그래, 우리가 가면 따라오겠지. 제발 다음 사고는 준호가 쳤으면 좋겠다.”

“듣겠다. 빨리 가자.”

“다 들려 다! 안 들리게 말하던가!”


씩씩대는 준호를 두고 태영과 형일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더 이상 들어주지 않는 태영과 형일을 보며 체념한 준호는 잠시 분을 삭인 다음 두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