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촬영은 처음이라 2

밴프 - 레이크루이스

by 자두와두

“이번에는 잘 찍고 있지?”

“그럼요. 여기 빨간불 선명한 거 봐라.”

“진짜 이번에도 잘못되면 내일 와서 다시 찍어야 한다고….”

“근데 그게 더 재밌을 것 같긴 해.”

“너 여기서 던져버려도 재밌을 것 같은데 어때.”

“…. 여기 곰 있어 곰.”

“곰 없으면 던져도 되는 거야?”

“잘 찍을게….”


안 그래도 큰 가방에 카메라까지 들고 가는 바람에 처진 형일의 어깨가 한껏 내려갔다. 산길을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니, 사방에 눈이 쌓인 길임에도 두꺼운 겉옷은 진작 짐이 된 지 오래였다. 반면 준호와 태영은 가벼운 가방 덕인지 아직 겉옷을 벗지도 않은 채 형일보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고 있다.

잠잠히 길을 걷던 준호가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었다.


“Hi~.”

“Hi!”

“죄송한데 혹시 리틀 비하이브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거의 다 왔어요. 저기 저쯤 가면 옆에 레이크 루이스가 보일 거예요. 그러면 진짜 금방이에요.”


앞에서 내려오던 등산객이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중년의 백인 남성 두 명이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온 준호가 반가웠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형일은 이때다 싶어 태영과 준호의 뒤에서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그런데 곰 스프레이는 가져왔어요?”

“아니요. 이렇게 추운데 곰이 있나요?”

“필요하죠! 이제 막 곰들이 잠에서 깨어날 날씨예요. 다행히 올라올 때는 없었나 보네요. 저희가 여분이 있으니 하나 가져가세요.”

“와, 너무 감사해요. 답례하고 싶은데 저희가 가진 게 따로 없어요. 어쩌죠?”

“괜찮아요. 괜찮아요. 안전하게만 다녀와요.”

“네 너무 감사드려요.”


태영은 곰 그림이 그려진 스프레이를 건네받고는 연신 땡큐를 외쳤다. 두 중년의 남성은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곤 빠르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형일은 눈치껏 다시 배낭을 메고는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쫓아갔다. 태영은 잠시 스프레이를 살펴보다 문득 형일에게 물었다.


“형일, 근데 우린 왜 이런 거 없었어?”

“이 날씨에 깨어 있을 줄 알았나 뭐.”

“그럼 우리 밑에서 곰 만났으면 어떻게 하려 했는데?”

“안 만날 줄 알았는데?”

“그럼 우리 목숨 걸고 올라온 거야 여기까지…?”


문득 소름이 돋는 세 사람이었다.

중년의 백인 두 사람이 말한 대로 세 사람은 머지않아 목표로 하던 리틀 비하이브에 도착했다. 리틀 비하이브는 벌집 모양으로 층층이 쌓인 바위산의 모양을 일컫는 말로, 그 바위산 위에서는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레이크 루이스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레이크 루이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이다. 왜 10대 절경인지는 호수의 입구부터 알 수 있다. 호수의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과 그 주변을 호위하듯 둘러싼 엄청난 크기의 바위산, 그리고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눈 덮인 로키산맥의 풍경은 오전에 있던 해프닝 따위는 깨끗하게 잊게 했다. 거기에 한편에는 고풍스럽고 거대한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세 사람이 추운 날씨에도 산을 오른 이유는 이 아름다운 레이크 루이스를 가능한 한 다양한 곳에서 보기 위함이었고, 산을 오르는 내내 레이크 루이스는 그 선택이 옳았음을 몸소 증명해 냈다. 각양각색의 바위산은 어느 곳에서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위용을 보여주었고, 그 와중에도 고풍스러움을 유지하며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호텔은 호수와 완벽하게 어울려 트레이드 마크의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리틀 비하이브에 오른 세 사람은 레이크 루이스의 마지막 모습을 한껏 눈에 담고 있었다.


“야 어떡하냐. 지금 두 시간 넘게 보고 있는데 왜 또 감동적이야."

“이걸 못 담아가는 게 너무 아까운데. 인간의 사진 기술은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난 호수보다 저기 산맥이 너무 멋있다.”


거대하기만 했던 바위산에 올라서니 그 웅장했던 다른 바위산들과 눈높이가 맞는 위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위용은 아래에서 바라봤을 때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장엄함을 이제야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위산과 이어진 산맥과, 중간중간 그림을 그리듯 위치한 공원의 도로들, 손가락만 해진 호수와 손톱만 한 호텔은 가슴 벅찬 장면을 연출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말도 없이, 추운 줄도 모른 채 호수를 감상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며 경치를 즐겼다. 그러다 형일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우리 구경하는 거 풀샷으로 쫙 찍을걸.”

“어떻게 찍었는데?”

“그냥 내 시점으로 너네랑 호수랑 나와. 풀샷으로 호수랑 우리 같이 찍으면 그림일 것 같은데.”

“그것도 맞네. 지금이라도 해볼까?”

“우리 할 거 다 하지 않았나. 슬슬 춥다 그리고.”

“그래. 우리 내일도 등산한다며. 내일 하면 되지. 내려가자.”


마음은 풍경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온몸이 오들오들 떨려오고 있었다. 형일은 벗었던 겉옷을 어느새 다시 입고 있었다. 5월이면 한국은 더워질 시기지만 이곳은 아직 눈도 녹지 않은 날씨였다.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온 세 사람은 추위를 피해 내려가는 길에 있는 찻집에 들르기로 했다. 레이크 아그네스 티하우스라는 곳으로, 나무로 된 오두막집에서 따듯한 차를 파는 카페와 같은 곳이다. 산 중턱의 아기자기한 오두막의 이끌림에 넘어간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인데, 추운 날씨에 눈까지 쌓인 계절에는 그 아늑함을 곱절로 느낄 수 있다.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추운 날씨 탓인지 세 사람이 찻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앉을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유 살겠다 어후.”

“땀 식어서 그런가 너무 춥다 으으으.”

“우리 앉은 김에 촬영한 거 한번 볼까?”


얼었던 몸을 녹이며 몽롱해진 태영, 준호와 다르게 형일이 또렷한 정신으로 말했다. 형일은 찍고 있던 카메라의 촬영을 중단하고 녹화한 영상을 빠르게 넘기며 말했다.


“우리 너무 걷기만 하는 거 아니야 이거?”

“그렇긴 해. 우리 한 번도 안 쉬고 올라왔잖아. 말도 거의 안 한 것 같은데. 너희 왜 이렇게 조용해 오늘따라.”

“힘들어서 말이 안 나와…. 가방도 너무 무겁다. 물 다 갖다 버리고 싶어.”

“근데 내가 생각이 있어 들어봐 봐.”


세 사람이 각자 말했다. 그러다 형일이 뭔가가 떠오른 듯 두 사람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 별로 안필요하긴 해. 진짜 버려버릴까?”

“내려가면서 곰이나 만나면 좋겠다. 우리 스프레이도 있는데.”

“아니 좀 들으라고 이것들아.”




작은 배를 띄워 한참 동안 노를 저어야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레이크 루이스와는 반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를 돌아도 괜찮을 정도의 호수가 겨울임에도 옅은 초록빛을 내고 있다. 호수의 뒤편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나는 나무에 소복이 눈이 쌓인 채로 빼곡하게 배경을 채운다. 그 정도로는 아쉬웠는지 커다란 바위산이 배경 가운데 우뚝 솟아 이곳이 밴프 국립공원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호수의 한쪽에는 여행 온 중년의 커플이 호수 변의 바위에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요한 호숫가를 비추는 화면에 갑자기 동양인 세 남자가 등장한다. 눈이 쌓인 길을 헤치며 달려오더니 한 명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고, 두 명은 호수에 뛰어들 기세로 달려가 호숫물에 손을 담가본다. 파란 하늘과 거울 같은 호수에 기분이 좋은 여행객으로 보이긴 하지만, 호수 곳곳에 있는 살얼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장면이다. 사진을 찍던 남자는 이제 풍경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을 찍으며 신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찍힌 두 사람의 얼굴은 호기롭게 손을 담그던 모습과는 다르게 인상을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이제 됐겠지?”

“나 이제 감각이 없어. 가자 이제.”

“그래 그만하자.”


둘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물 묻은 손을 탈탈 털었다. 눈이 내리는 날씨에 물에 빠졌다 나온 손은 안타깝게도 새빨갛게 얼어있었다. 다른 한 사람도 주먹을 꽉 쥐고는 몸을 떨며 일어났다.


“성준호! 그만 가자! 손 잘릴 것 같아!”

“예에!”


준호는 설치해 놓은 카메라의 촬영을 종료하고 정리하려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듯 촬영을 종료하지 않고 렌즈를 형일과 태영에게로 돌렸다. 두 사람은 똑같은 자세로 주먹을 꽉 쥐고 준호가 있는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준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야, 손 보여줘 손. 주먹 좀 펴고 빨리.”

“손 왜. 지금 손 펴면 손가락 깨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깨지는 거 한번 보여줘 봐.”


준호가 한껏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자신의 손을 쫙 펴며 하이 파이브를 하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형일, 얘 빠뜨리자.”

“오케이.”


준호는 형일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도망가기 시작해 내려가는 길 입구에서 뒤를 돌아봤다. 다른 두 사람은 이제 물기가 마른 손을 주머니에 넣고 따라오고 있었다. 리틀 비하이브에서 세 사람이 모두 나오도록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세 사람, 아니 형일은 내려가는 길에서라도 한번 셋이 같이 찍어보자는 의견을 냈다. 내려가는 길에 미러 레이크라는 명소가 있으니 가는 길에 한 번 찍고 내려가자는 이야기였다. 다만 셋이 같이 출연해 뭘 해야 할지가 문제였는데, 태영이 의견을 냈다.


“호수에 손 담그기?”

“왜…? 거기 얼음 있는 거 못 봤어 아까?”

“그러니까 넣는 거지. 가위바위보 해서 한 사람은 빠지는 거야 어때.”

“아, 그럼 또 해야지.”


태영이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가장 적극적이었던 태영과 형일은 눈과 얼음이 가득한 호수에 손을 넣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를 못한 채 오들오들 떨면서 산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 손이 따뜻해지고 몸이 녹은 형일이 준호에게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풀샷으로 크게 찍을 게 아니라 손 담그는 걸 가까이에서 찍어야 했던 거 아니야? 그렇게 멀리서 찍으면 우리 뭐 하는지 모르지 않아?”

“그러네? 어떻게 나왔나 볼까?”

“아냐, 이따가 버스 타고 보자. 뭐 볼만하게 나왔겠지.”

“아니 지금 봐야지. 잘 안 나왔으면 형일이 말대로 다시 찍어야 하잖아.”

“또 찍자고? 나 손 아직 녹지도 않았는데?”

“다시 찍을 거면 준호 입수하는 거로 하는 건 어때.”

“그럼 잘 나왔어도 다시 찍어야지.”


준호는 꺼내려던 카메라를 슬쩍 집어넣고 말했다.


“그래, 그냥 가자. 손도 시린데 내려가서 핫도그 먹어야지.”

“물에 빠졌다가 먹으면 더 맛있을걸?”

“야 민폐야 민폐,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에이 괜찮아.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입수할걸?”


준호와 형일이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태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옆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잔뜩 우거진 비탈길이었다.


“야 조용히 해봐.”


태영의 갑작스럽고 진지한 목소리에 준호와 형일이 걸음을 멈추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 엄청 조용한데?”

“아니 발소리 같은 게 되게 크게 들렸는데, 아닌가?”

“그래, 아닌가 봐.”


잠시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세 사람은 조용하기만 한 숲의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다시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 했다. 맨 앞에서 출발하려던 준호가 손가락으로 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저거 뭐 같아?”


준호가 가리킨 나무에는 도끼질을 몇 차례 한 듯 깊이 파여있는 곳이 있었다. 그 자국의 주변엔 날카롭게 베인 자국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몇 개나 나 있었다. 세 사람은 준호가 말한 나무의 흔적을 보곤 같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달리는 것과 맞먹는 속도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태영의 손에는 어느새 리틀 비하이브에 가는 길에 받은 스프레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1시간이 넘게 올라온 길을 30분 만에 내려갔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