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촬영은 처음이라 3

밴프 - The Grizzly House

by 자두와두

노란색으로 칠하면 미국 영화에 나오는 스쿨버스가 될 듯한 하얀 버스가 곧게 뻗은 도로를 홀로 달려간다. 도로의 양옆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로 빽빽한 숲으로, 아무리 멀리 봐도 끝나는 곳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넓이를 자랑한다. 한적하게 달리는 버스 안에는 등산과 추위에 조금 지친 세 사람이 한 줄로 앉아 있다. 창가에 앉은 준호가 창밖의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저 숲이 뭔가 다르게 보여. 곰이 사는 숲인 것 같아 그냥.”

“것 같은 게 아니라 곰이 사는 숲이야.”

“곰이 막 마을로 내려오면 어떡해? 여긴 그런 훈련도 하고 그러나? 우리나라 민방위 하는 것처럼?”

“잡아먹기도 할 것 같은데. 여기 곰 고기도 팔지 않을까?”

“근데 그래도 숲이 예쁘긴 하다.”


대화인 듯 독백인 듯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국립공원의 입구에 다다랐다. 준호와 형일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태영은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몇 시간째 손에 쥐고 있던 곰 스프레이를 이제서야 가방에 슬그머니 넣었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도착한 밴프는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버스도 타고 등산도 하다 보니 레이크 루이스만 다녀와도 시간이 제법 지나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세 사람은 앞장서 걷는 형일을 따라 한 식당에 도착했다. 밴프의 계획을 주도한 형일은 엄청난 식당이 있고 예약까지 했다며 의기양양하게 두 사람들을 데려갔다. 도착한 식당의 입구는 형일의 자신감과 다른 두 사람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위로 길쭉하게 솟은 세모 모양 지붕은 마치 마법사가 나오는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이었고, 기둥과 벽, 문까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오 형일! 조사 좀 했는데?”

“당연하지. 메뉴 고를 필요도 없어. 주문도 내가 다 한다.”

“이야 민형일! 좀 꼴 보기 싫지만, 이번엔 넘어간다!”


식당 내부는 그렇게까지 오두막 느낌은 아니었다. 현대적인 대리석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화기도 걸려있었다. 형일이 잠시 직원과 이야기하더니 이내 자리를 안내받고 4명 자리에 둘러앉았다. 앉자마자 메뉴판을 잠깐 읽어본 형일은 곧바로 직원을 불러 주문을 넣었다.


“진짜 믿어도 되는 거지?”

“그럼. 제일 맛있는 거 종류별로 싹 시켰다.”

“얘가 저녁 식당 한 개만 딱 하겠다고 하더니 제대로 했네, 아주.”

“그래서 여기 뭐 먹는 집인데? 이제 알려줘 봐.”

“아 아직 말 안 했나? 여기 퐁뒤 집이야. 날 추운데 등산했으니까 따뜻하게 이런 거 먹어줘야지. 밖에 눈도 쌓였는데 딱 좋지 않아?”

“퐁뒤가 그 치즈 찍어서 먹는 건가? 넌 먹어봤어? 태영?”

“들어는 봤어. 추운 지역에서 많이 먹는 거고, 치즈 데워서 먹는 거고.”

“안 먹어봤다는 말이 너무 길다.”

“야, 메뉴 나온다. 카메라 빨리 꺼내.”


주문을 받아 간 종업원이 세 사람의 테이블에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요리를 가져왔는데, 다행히 그사이에 준호는 카메라를 꺼내 테이블의 음식이 잘 보이는 구도로 설치해서 첫 요리가 등장하는 순간을 찍을 수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요리를 보며 준호가 형일에게 말했다.


“이건 뭘까? 우리 혹시 어제 먹은 고기를 끝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었나?”

“만둣국인가 이건? 만두가 있네, 안에.”

“에피타이저 모르냐, 에피타이저. 비싼 요리를 먹어봤어야 뭘 알지 이것들아.”

“그러니까 우리가 코스요리를 먹는 거야 지금?”

“말 안 했나 내가?”

“말 안 한 거 더 있으면 지금 말하자. 딱 지금 말하면 그래도 그건 봐줄게.”


태영이 테이블에 있는 포크로 형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티격태격하는 태영과 형일의 옆에서 준호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정으로 보아 맛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끝내 코스요리의 내용을 다 말하지 않는 형일에게 태영은 지쳤다는 듯 포크를 내려놓고는 맥주로 식사를 시작했다. 샐러드와 스프를 다 먹고, 그릇을 치우고 세 사람이 투덕거릴 이야기가 떨어질 즈음, 치즈를 담은 그릇과 찍어 먹을 빵이 나왔다. 준호는 또 한 번 요리를 보고 형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퐁뒤가 치즈에 빵 찍어 먹는 거야? 뭐 고기나 그런 거 없어?”

“퐁뒤는 치즈에 빵 찍어 먹는 거야. 일단 하나 먹어봐. 맛있다니까?”

“퐁뒤가 치즈에…”

“그만하고 먹어보라고 빨리.”


형일이 재빨리 빵 하나를 치즈에 찍어 태영의 앞에 가져다 댔다. 얼결에 첫 퐁뒤를 시식한 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길쭉한 퐁뒤용 포크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고소하고 따듯한 빵과 살짝 쌉쌀한 맛이 나는 치즈가 어우러져 입안에서 밀고 당기는 맛이었다. 따뜻한 치즈를 먹다 보니 호수에 넣었던 손이 이제야 진정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양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게 근데 메인이야?”

“아니, 이거 다음이 메인. 근데 이거 좀 맛있었다 그치. 치즈에 와인이 들어갔나? 그렇대.”

“오 그래? 근데 퐁뒤는 진짜 합격. 되게 맛있네.”


아직 배가 고픈 세 사람에게는 조금 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온 메인은 온갖 종류의 고기와 해산물이 날것으로 나왔고, 테이블 중앙에는 네모난 돌 판이 놓였다. 마지막으로 다섯 가지 소스가 담긴 접시를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아준 직원은, 돌 판과 음식을 형일에게 뭐라 설명한 뒤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이건 또 뭘까? 여기 약간 의문의 연속인 게 너랑 잘 어울린다. 형일.”

“이 고기랑 이런 거 하나씩 여기에 구워 먹으면 돼. 판 식으면 바꿔준다고 자기 부르래.”

“오 신기하다. 고기구이는 무조건 맛있지. 소스는 뭐 어떻게 먹으라고 말 안 해줘?”

“해준 것 같은데, 몰라 이해 못했어.”

“너무 당당한데?”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를 네가 하면 어떡하냐. 우리가 해야지.”


눈총과 질타가 익숙하다는 듯 형일이 포크를 들고 고기와 해산물을 하나씩 돌 판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어두운 식당 분위기에 익어가는 고기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형일은 열심히 고기와 해산물을 뒤집어가며 고기를 구웠다. 준호와 태영은 맛있는 소리를 내는 돌 판을 보며 먹어도 된다는 형일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림이 끝나고, 준호와 태영은 형일에게 배정받은 고기를 신중하게 소스에 찍어 한입에 넣었다. 굽는 방법에서 오는 특별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구운 사람의 정성은 확실히 느껴지는 야들야들한 식감과 맛이 있었다.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뜬 두 사람을 본 형일은 자기 몫의 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하여튼 맛있게 먹을 거면서 말이 많아 이것들은.”

“이건 누가 해도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야 소스도 괜찮다. 이거.”

“내가 구워서 맛있는 거라고. 너희가 해보던가.”

“양도 얼마 안 되는데 모험하지 말자. 관자도 구워줘 빨리. 너무 맛있을 것 같아”

“야 나는 닭고기. 이것도 올려줘.”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형일은 남은 음식들을 굽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양이 많지 않았던 고기는 돌 판이 식기도 전에 다 구워졌고, 먹을게 없어진 세 사람은 포크로 소스만 찍어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음식이 사라진 테이블을 본 직원이 뺏어가는 바람에 포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맛은 있는데 양이 많지는 않다.”

“미식의 세계는 이런 거야 이 촌놈들아.”

“그래. 형일이는 미식의 세계에 살아. 우린 컵라면 먹으러 갈 거야.”

“컵라면도 미식이지. 난 소고기라면.”

“그래 어제 산 거 남았으니까 야식 먹자, 가서.”

“근데 코스 아직 남았는데? 코스면 당연히 디저트가 있지. 진짜 같이 코스요리 못 먹겠네.”


자리를 정리하려던 준호와 태영이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딱 알맞은 타이밍에 직원이 마지막 디저트를 가져왔다. 퐁뒤 집의 마지막 메뉴답게 디저트는 과일 초콜릿 퐁뒤였다. 사과와 딸기 같은 과일과 따뜻한 초콜릿이 같이 나왔다. 앞서 요리를 많이 먹은 세 사람이었지만 달콤한 초콜릿 냄새는 다시금 입에 침이 고이게 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뭔지 알 것 같은 음식이다. 일단 냄새 너무 좋은데?”

“이건 진짜 맛있네. 숟가락으로 퍼먹고 싶어 초콜릿.”

“아니 너희 배고파? 무슨 첫 끼 먹는 것처럼 먹냐, 디저트를.”

“너무 맛있잖아. 초콜릿 포장 안 되나? 여기도 뭐 와인 들어간 거 아니야?”


30을 바라보는 세 사람이었지만, 입맛은 와인을 첨가한 치즈의 맛보다는 초콜릿에 환장하는 애들 입맛이었다.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제법 긴 시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밴프의 거리는 이때를 노렸다 싶을 정도로 이곳저곳 노란 불빛을 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한참은 지났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와 따뜻한 조명이 걸린 아기자기한 건물들은 왜인지 모를 성탄절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또 새로운 야경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준호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형일, 근데 오늘 이거 네가 찍기로 한 거 아니었어?”

“네가 뺏어갔잖아. 할 수 없지, 뭐.”

“진짜 오늘만 봐준다. 내일은 네가 다시 하는 거야. 근데 태영이 어디가 쟤?”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간 태영은 현지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에게 말을 걸고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준호는 얼른 태영을 따라갔다.


“오 안녕하세요! 아직 여기 있었네요?”

“반가워요. 우리도 저녁 먹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리틀 비하이브는 구경 잘했나요?”

네. 너무 멋있었어요. 아 저희 다행히 곰 안 만났어요. 태영, 그 스프레이 다시 드릴까?”

“아 그래.”


태영이 가방에서 곰 스프레이를 꺼내 두 남성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스프레이를 돌려받지 않고 태영에게 물었다.


“안 만났다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내일은 또 트래킹을 하지는 않나요? 거기서 또 필요할 수도 있어요.”

“여기 산에는 다 곰이 있나요? 내일은 캔모어에 있을 계획이거든요.”

“캔모어도 너무 좋죠. 그런데 저희가 한군데 추천을 해줘도 될까요? 스프레이는 안 줘도 괜찮아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준호와 태영이 반갑고 신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형일은 조금 뒤에 떨어져 두 사람을 기다렸다. 평소 입이 쉬지 않는 성격에 반해 두 사람과의 대화에 끼지 못했는데, 그 덕에 내일의 계획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집에 가는 버스만 알아보고 있었다. 준호와 태영은 길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형일을 불러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낮에 파랗던 하늘은 이제 완전히 깜깜한 색이 되었다. 어두운 밤하늘에도 구름 없는 깨끗한 날씨임을 증명하듯 수없이 많은 별이 박혀있다. 그 별에 닿을 듯 솟아있는 높은 산봉우리는 하늘과 가까운 탓인지 깜감한 와중에도 은근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 모습을 배경으로 달리는 버스는 세 사람을 태우고 밴프에서 캔모어로 달리고 있다. 태영과 형일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숙소에 돌아가는 이 길에서도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준호는 카메라를 켜고 오늘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양이다 보니 마구 돌려가며 빠르게 보고 있었다.

트래킹 영상에서는 친구들과 이야기한 대로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많은 대화도 없이 걷기만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호수에 손을 담그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찍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역시나 남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준호는 다시 돌려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재미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식당이네.’


마지막으로 재생한 식당 영상은 한쪽에는 테이블이 나오고, 한쪽에는 나란히 앉은 준호와 태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신만만한 형일과 티격태격하는 준호, 태영의 식사 자리는 왜인지 영상을 계속 보게 만들었고, 준호는 캔모어에 다 도착할 때까지 식당의 영상을 돌려보았다.


“준호. 그만 봐 우리 내려야 해.”


캔모어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영상에 빠져있던 준호는 태영이 부른 다음에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버스에서 내렸다. 피곤했는지 형일과 태영도 별 대화도 없이 숙소로 걸어갔고, 뒤따라 걷는 준호는 버스에서 보던 영상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찍는 게 재밌구나.’


꽁꽁 얼어있던 태영, 형일의 손과 별생각 없이 즐겼던 식당의 분위기가 번갈아 떠올랐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