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nto HTO Park
‘호수 앞’이라는 의미로 아주 단순하게 지어진 하버 프론트는 토론토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이다. 이름에서는 단순히 호수 앞 공원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북아메리카 오대호 중 하나에 꼽히는 온타리오 호수의 ‘호수 앞’은 호수 변을 따라 수도 없이 많은 공원이 이어져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 다음 공원, 다음 공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공원마다의 이름에 맞는 특색을 갖추고 있어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없게 했다. 거기에 토론토의 파란 하늘과 오후 3시의 햇살, 5월의 선선한 날씨는 토론토의 주민들과 수많은 여행객들을 하버 프론트 곳곳으로 불러낸다.
“야, 여기 아까 위에서 본 데 아니냐. 뭔가 신기한데. 아 준호 너는 못 봤지?”
“난 지금 이렇게 보는 게 좋다. 와 사람 꽤 많다. 오늘 주말인가? 여행 오니까 요일 개념이 없어지네. 태영, 넌 뭘 자꾸 휘두르고 다니냐. 좀 내려놔 봐.”
“던지고 싶은데 참는 거야. 아 진짜 도끼 손맛 미쳤었는데. 내일 또 가면 안 되냐 우리?”
“안돼 태영. 또 가면 준호가 이번엔 진짜 나 맞출 거야. 쟤 도끼 들고 나 쳐다보는 거 못 봤냐고.”
걷기 좋은 날씨 때문인지 오전부터 즐긴 여행 때문인지 몰라도 한껏 들뜬 세 사람은 각자 이야기를 하며 하버 프론트를 거닐었다. CN 타워에서 계획에 없던 EdgeWalk부터 시작한 액티비티는 바로 이어서 BATL Axe Throwing이라는 도끼 던지기 체험장으로 이어졌다. 나무로 된 과녁에 손도끼를 던져 맞추는 체험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양궁 카페와 비슷한 곳이었다. 제법 무겁고 과녁에 박히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해온 태영은 대번에 도끼를 과녁에 꽂으며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강사님이 또 오라고 했다고 나. 형일 넌 못 꽂아봐서 몰라서 그래. 그 손맛이 진짜 있는데. 특히 칼 꽂히는 그게 진짜, 나 이런 거 배워볼까? 재능 있는 것 같지 않아?”
“형일, 쟤 원래 저렇게 말이 많았냐? 오태영이 신났구먼.”
“그러니까. 배우긴 뭘 배워. 어디다 쓰려고 그거.”
“그건 또 그렇네. 사람한테는 던지면 다치겠지? 음, 배워서 너네 시끄러울 때 한 번씩 써먹어야겠다.”
태영이 어디선가 주워 온 짧은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말했다.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외투 아래로 선명한 핏줄을 뽐내는 팔뚝은 짤막한 나무 막대기도 꽤나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아니, 사람한테는 안 던진다며…. 우리도 다친다고.”
“그래 태영, 그냥 싸워도 네가 이겨 인마. 뭘 던지기까지 하냐.”
준호는 괜히 어깨가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앞장서서 신나게 막대기를 휘두르던 태영이 갑자기 돌아서서 뒤따라오던 준호를 보고 말했다.
“근데, 얘 영상은 언제 찍어? 뭐 시킬 건데?”
“아 그거, 저쪽 저기서 지금 하면 될 것 같아. 안 그래도 물색하고 있었지.”
준호가 걸어가는 길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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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안전봉 앞에는 바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호수 너머에 있는 섬이 아니라면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이 호수 앞을 거닐다 보면, 바다에 온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모래사장이 아니라 나무로 된 데크가 이곳은 해변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긴 하지만, 이 아쉬움을 고려한 듯 데크 뒤쪽으로 작게나마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노란 파라솔까지 길고 높게 꽂혀 있어 호수 앞의 해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특별함 때문인지 파라솔 아래 그늘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펴고 앉아 바다와도 같은 온타리오 호수를 즐긴다.
준비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 햇빛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그늘에 반쯤 누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앞으로 한 남자가 결연하게 걸어 들어온다. 걸음걸이가 시원해 보이나 어딘가 조급하고, 고개는 푹 숙여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그러다 모래사장의 중간 즈음에 멈춘다. 왜인지 심호흡을 하는 듯 몇 차례 숨을 쉬다 호수 방향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어어어?”
남자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남자를 한 번 보고는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본다. 손가락 끝에 걸린 하늘에는 무언가 이상한 점은 커녕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은 하늘에서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뭐야? 뭐가 있어?”
“글쎄? 저 사람 왜 저래?”
“무슨 공연 하는 거 아닐까? 한번 보자. 뭐가 있나.”
“뭐지? 일단 찍어 볼래?”
앞에 모인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춰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파라솔 아래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 하늘을 가리키는 남자를 바라본다.
“뭐 하나? 저기서?”
“저기 뭐가 있어?”
“몰라, 뭐 하려나 봐.”
남자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유심히 보더니 햇빛이 강한 듯 미간을 찡그리고 손바닥을 이마에 붙여 얼굴에 그늘을 만든다.
“오오!!!”
남자가 무언가를 바라보다 놀란 듯 또 한 번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리키자,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멈추고 아주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이제는 아무도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들은 남자가 뭔가를 보여줄 거라는 확신에 마치 무대에 선듯한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그 정적과 시선을 견디던 남자에게로, 다른 한 사람이 다가온다.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는데, 전광판 어플을 띄워 반복해서 같은 문장이 지나가는 휴대폰 화면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들고 있었다.
Yes, I know him. Unfortunately. I’m so sorry.
난입한 사람은 한 손엔 휴대폰을 든 채, 남은 한 손으로 남자의 옷 덜미를 잡고 한 파라솔 아래로 끌고 간다. 파라솔 아래는 또 다른 사람이 카메라로 이 광경을 촬영하고 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뭐야 저 친구. 이게 다야?”
“재밌는 친구들이네.”
준호가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며 형일을 데려가자, 형일을 보던 사람들은 잠깐의 이벤트가 재밌었다는 듯 웃어넘긴다. 겨우 몇 초 만에 형일의 이벤트는 끝이 났지만, 형일은 아직도 파라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쥔 채 창피함에 몸을 떨고 있었다.
“좋아 형일. 이제 계획표 잘 지켜줄 거지? 자, 점심이나 먹자. 태영, 잘 찍었어?”
“어. 근데 생각보다 대단히 재미가 있지는 않은데? 깔깔 까지는 아니고 살짝 낄낄 정도?”
“그치, 나도 막상 시켜놓고 보니까 실망이었어.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내일 다시 하면 진짜 재밌는 걸로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어떻게 생각해 형일?”
“너, 하.”
형일이 분해서 어쩔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획 돌려 바닷가 쪽을 보며 이마를 부여잡는다. 그제야 준호와 태영은 마주 보며 낄낄대고 있다. 형일의 몸부림에도 그 광경을 지켜봤던 주변 사람들은 평화롭고 느긋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