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nto CN Tower
“아니 야, 야, 야! 어디가! 바람 왜 이렇게 불어 여기! 아악!”
준호가 앞에 가는 형일과 태영을 다급하게 부른다. 눈가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고 온 몸의 모든 근육을 쓰겠다는 듯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친구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곧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듯 다급하고 격양되어 있었지만,, 준호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 형일과 태영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야, 쟤 우는데?”
“와 성준호 우는 걸 다 보네. 잘 찍고 있지? 영상 너무 재밌게 나오겠다. 여기 오기를 잘했다니까 역시. 좋은 구경 했으니까 이따가 약한 걸로 부탁한다 태영.”
“나보단 준호가 독 품을 것 같지 않냐. 근데 쟤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거야?”
“불러 볼까?”
형일은 급기야 주저 앉아버린 준호에게 큰 목소리로 말한다.
“준호! 나 밀어버린다며! 그래서 되겠냐, 그게! 가위는 뭐 챙기긴 했어?!”
“너 진짜 내가 던져버릴 거야! 어흐흑.”
형일의 말을 들은 준호는 몸에 묶인 줄을 붙잡고 바들거리며 형일에게 다가간다. 죽일 듯이 째려보는 표정에 비해 눈가에 맺힌 눈물과 후들거리는 다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오, 효과가 있는데? 가자 이제.”
“너 이따가 어떡하려고 그러냐. 감당 되겠어?”
“설마 뭐, 죽기야 하겠어? 와 이쪽이 호수 뷰네. 진짜 폭포 보이겠는데? 가보자 빨리.”
준호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형일은 멀리 보이는 경치에 금세 한 눈이 팔려 다시 준호와 멀어져갔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로, 못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층 빌딩 숲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깨끗하고 속이 탁 트일 정도로 파란 하늘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밴프에서는 숲과 산맥, 마을에 어우러진 파란 하늘이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도시로 옮겨 오니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특이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토론토에는 이 하늘을 말 그대로 찌르는 듯한 구조물이 하나 있다.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높다. 이름이 뭐였지 저거?”
“CN타워. 가면 시간 딱이다.”
“오 그러네. 아침을 그렇게 오래 먹나 했는데, 커피가 있으니까 좀 천천히 먹게 되네.”
“그래, 그렇다니까.”
CN타워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10분 거리에 있는 토론토의 명물, CN타워 전망대로 향했다. 500미터를 훌쩍 넘기는, 건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는 이 곳에서 토론토 전체를 돌아보는 것이 첫 일정이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검사 시간이 있는 터라 잠깐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얌전히 기다리다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형일이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티켓팅 창구로 가던 준호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형일을 불렀다.
“형일, 여기. 여기서 예매하면 돼.”
“아니 잠깐만. 내가 아까 줄서서 뭘 봤거든? 아, 저기 있다.”
형일이 한 안내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하나에 꽂히면 돌진하는 형일을 아는 두 사람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막아 세우지도 못한 채 크게 문제만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며 보고만 있었다.
“우리 이거 하자!”
형일이 안내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일의 손가락 방향이 이어진 곳에는 Edge Walk라는 이름의 액티비티 안내문이 있었다. 그리고 안내문의 배경에는 CN타워 외부로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아주 작은 토론토가 그 사람들의 배경인 것으로 봤을때 아무래도 CN타워 꼭대기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하, 저거 또 시작이네. 오태영 좀 말려봐 제발.”
“그래 아니 형일, 우리 일정 잘 지키자고 하고 지금 첫 일정 왔거든? 벌써 냅다 그래버리면 오늘 쉽지 않아. 좀 자중해봐봐.”
이번엔 태영도 나서서 형일을 만류했다. 어젯밤 식사자리에서 준호가 열심히 만들어온 일정에 확실하게 협조하기로 한 두 사람이었지만, 형일은 개의치 않다는 듯 시작부터 혼선을 주기 시작했다. 태영과 준호가 형일을 만류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형일은 이미 머리속에서 새로운 일정을 완성시킨 형일은 자신이 만든 새 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 봐봐, 내가 이거 보고 계산해봤거든? 지금이 9시 반이고, 이게 10시부터 1시간 반정도 걸릴 거래. 그럼 11시 반. 끝나고 구경 조금 더 하고 하면 12시 되겠지? 그럼 우리 맥주 투어나 도끼 중에 하나만 포기하면 다음 일정은 딱 맞아. 어때 준호. 내가 진짜 널 위해서 시간 계산 딱 맞게 해봤다.”
현재 시간 9시 30분, 그 다음 일정으로는 10시 45분에 도끼 던지기 체험과 12시에 맥주 공장 투어, 그리고 13시 30분부터 그 다음 일정이 이어졌다. 듣다 보니 또 형일의 말에 틀린 점은 없다는 생각이 든 준호는 다시 한번 형일이 말한 일정대로 진행이 가능한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 옆에서 태영이 형일에게 말했다.
“근데 형일, 어제 말한 거 기억 나지? 일정 하나 빼면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그건 감안하고 말하는 거 맞아?”
“그럼그럼. 다 감수하고 말하는 거지. 내가 내 한 몸 희생해서 진짜 좋은 경험 하게 해주는 거라니까?”
준호에게 협조하기로 한 어젯밤의 자리에서는, 누군가 문제를 일으켜 일정에 큰 변동사항이 생길 경우엔 벌칙 영상을 찍기로 타협했다. 벌칙 내용은 각자 생각해보는 것으로, 생각해온 아이디어는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 형일의 제안은 계획표에서 일정 하나를 빼는 정도이기에 벌칙을 감수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형일은 자신이 희생한다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하자면 지각비 내고 당당하게 지각하는 것과 같았다. 태영과 형일이 이야기하는 사이, 생각을 마친 준호가 형일에게 물었다.
“10시에 자리는 있는 거야? 예약 꽉 찼을 수도 있잖아.”
“아까 줄서서 봤는데 4자리 있대. 6명까지 하는 건데 두명밖에 예약 안했나봐.”
“와, 민형일 얘는 가끔 보면 엄청 치밀하고 똑똑하다? 지 하고싶은 일에만 그래서 문제지.”
“아무튼, 난 오케이. 사실 어제 벌칙으로 생각한 게 있어서, 형일이 시키고 싶긴 했어. 시작부터 이럴 줄은 몰랐네.”
계산을 마친 준호가 의외로 흔쾌히 형일의 말을 들어주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형일이 말한 Edge Walk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형일의 성격을 잘 아는 준호가 미리 예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태영에게 준호가 물었다.
“그럼 뒤에 두개중에 뭐 취소할래? 이건 네가 정하자 태영.”
“맥주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그저께도 갔으니까 뭐. 도끼 한번 던지러 가보자.”
“오케이. 딱딱 맞네 생각보다. 가서 예매하자 그럼.”
첫 날, 첫 일정부터 즉흥적으로 바꿔버린 형일의 탓에, 세 사람은 일정에 없던 표를 예매하기 위해 예약 창구로 향했다. 담담하게 걸어가는 준호를 본 태영이 준호에게 말했다.
“준호 근데, 이따가 벌칙이랍시고 얘 앞에 세워두고 도끼 던지기 이러는 거 아니지 너?”
“뭘 거기까지 가. 나 이거 Edge Walk 체험할 때 가위 숨겨가려고. 쟤 줄 끊고 밀어버릴 거야.”
앞에서 듣고 있던 준호가 하늘을 가리키며 태연하게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도와줄게 준호.”
“아니 왜…. 재밌을 거라니까. 나 오래 살고 싶어….”
“좀 살겠냐 이제?”
“어. 하. 이게 적응이 되긴 하네.”
“야, 이 정도로 무서워 할거면 아까 올라오기 전해 말해도 되지 않았어?”
“내가 이정도로 무서워할줄 몰랐지. 나도 고층 전망 보는거 좋아하는데, 이건 왜이렇게 무섭냐. 어우, 약간 멀미도 나는 것 같아.”
드디어 줄에서 손을 떼고 두 발로 선 준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영에게 말한다. 울고 불고 하던 조금 전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시선은 바닥이나 먼 경치는 바라보지 못하고 벽쪽에 고정되어 있다.
“오! 우와! 야! 이거 너무 짜릿해! 으악!! 태영! 나 사진좀 찍어줘!!”
두 사람의 앞에는 형일이 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낭떨어지를 향해 몸을 한껏 기울이고 있다. 500미터도 넘는 하늘에서, 눈 앞에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형일은 그 와중에 팔까지 벌려가며 아찔하고 짜릿한 이 하늘을 즐긴다.
“준호, 저거 돼? 한번 하고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
“…꼭 해야돼?”
“돈 냈잖아. 해야지.”
생각만 해도 무서운 듯 손까지 떨기 시작한 준호에게 체험을 마친 형일이 다가와 말한다.
“준호! 네 차례야! 가서 해봐. 막상 가서 서면 할 만 하다니까?”
“아, 잠깐만! 손대지 마! 내가 갈게. 내 발로 간다고! 후.”
준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 액티비티를 진행하는 가이드가 안내하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일이 사진을 찍었던 곳보다 두 발자국 정도 뒤였는데, 준호의 고소공포증을 고려한 위치인 것으로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시선을 둘 곳이 없는 준호는 눈을 질끈 감고 가이드의 손길에 따라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자 눈 뜨세요! 눈을 떠!"
"준호! 눈 떠봐! 안 보면 후회한다니까! 안 무서워 하나도!"
옆에서 들리는 가이드의 말과 조금 뒤에서 들리는 형일의 말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뜨자, 토론토라는 도시 전체가 꼭 자신을 덮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높이에서 오는 두려움과 마침 또 불어오는 바람, 또 발밑에 펼쳐진 도시의 환상적인 모습, 이 모든 게 휘몰아쳐 온 준호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전에 없이 소리를 질렀다.
“안 무섭다며!! 민형일 죽여버릴 거야!!"
"형일, 먼저 내려갈래?"
"그게 낫겠지?"
뜬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소리치는 준호의 목소리에서, 형일은 상공 500미터에서도 느끼지 못한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