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 이야기
한국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 지 5일, 세 사람은 그중 가장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늘 시끄러웠던 형일, 그리고 그 형일과 항상 투닥거리던 태영이 준호의 숙제로 조용해지니 숙소는 자연스럽게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불과 30분 뒤, 숙소의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며 오랜만의 휴식을 즐기던 준호에게 식탁에서 형일과 태영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태영, 우리 내일 그냥 숙소에 있는 거 어때?”
“나쁘지 않네. 그러다 하버프론트 가서 맥주나 마시고.”
“그렇지. 그래도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
너무나 선명하게 들리는 이야기에, 준호가 슬쩍 끼어들었다.
“안돼, 이것들아. 30분만에 포기하고 있어. 민형일이는 그렇다 치고 태영 넌 실망이야.”
“아니 준호. 넌 이거 어떻게 다 조사했냐. 너 바쁘지 않아? 맨날 바쁜 척 하더니 다 연기였어?”
“그 바쁜 와중에도 다 준비를 한 거라고. 엄살 피우지 말고 빨리 해 봐. 이거 말하는 사이에 다 조사했겠다.”
그렇게 다시 잠잠해지자, 준호는 새삼 열심히 조사하고 알아본 자신이 기특해졌다.
‘하긴, 이거라도 해서 다행이기도 했지.’
여행을 준비하며 만들어온 3일 치의 일정표를 괜히 뒤적거리며 스스로를 충분히 대견해하는 준호였다.
대학가의 식당은 교수님들이 식사하는 제법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과 학생끼리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저렴하고 양이 많은 식당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고급 식당에는 교수님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행사가 있는 가족들, 혹은 소속 단체의 돈으로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이 식당 한쪽에 자리한 대학교 3학년 네 사람은 스스로도 이 식당과 위화감이 드는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식당과 메뉴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우리 진짜 여기 와도 되는 거야? 1인분에 제일 싼 게 5만 원인데 여기?”
“야, 이럴 때 한번 와보는 거지 언제 와보겠냐. 두고두고 내 학점 좀 잘 챙겨줘라 그러니까.”
“학점에 졸업까지 시켜줘야 하겠는데. 계약한 게 뭐 얼마짜리길래 이런 데를 다 오냐?”
“그러게, 요새 일하던 거 돈을 받은 거야?”
“어. 원래 계약한 돈도 받고 추가금도 받았다. 3개월 은둔한 보람 있지 않냐 이 정도면.”
“추가금을 줬다고? 뭐 상여금 같은 거야? 그냥 계약금도 천만 원인가 그렇지 않았냐.”
“원래 요구사항에 이것저것 붙여서 더 만들어줬거든. 그래서 고생했다고 더 얹어주더라.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해 이래서.”
“아니지. 사람이 똑똑해야지. 머리가 좋으니까 벌써부터 돈을 버는구나. 나도 개발 잘하고 싶다.”
마블링 가득한 갈비는 네 사람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직원의 손을 통해 알아서 완벽하게 익어가고, 상에는 추가 음식을 주문하기 곤란할 정도로 밑반찬이 가득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밑반찬부터 맛보는 네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속박을 벗어 던진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 중인 준호는 프로그램 개발을 잘하기로 동기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는 학생이었다. 준호의 유명세는 한 학과 선배에게도 들어갔고, 우연한 계기로 한 회사로부터 웹서비스를 개발하는 외주 의뢰를 맡게 되었다. 개발 기간 3개월에 이후 몇 개월 정도 유지보수를 해주는 형태로 개발 인력이 부족한 작은 회사에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건 준호도 처음이었지만, 의뢰한 회사의 사내에서만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서 제법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솔깃한 준호는 잠깐의 고민 끝에 승낙했고, 3개월간 학과 공부보다는 외주 업무에 집중하며 결국 성공적으로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주문한 고기와 가득했던 밑반찬이 점점 줄어들고, 그 빈 자리에는 비워진 만큼의 이야기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너 나중에 회사 차리면 나 좀 채용해 가라. 내가 연봉은 5천만 받을게, 어때.”
“5백에서 시작하면 받아줄게. 대신 성과급으로 1200% 준다.”
“야 너는, 내가 대리 출석을 몇 번을 해줬는데. 서운해 성 사장? 나 아니었으면 이번 학기 쌍권총이었던 거는 아는 거지?”
“쌍권총이 뭐야. 거의 기관총 수준으로 맞았을걸.”
“그래서 맛있는 거 먹으러 왔잖아. 진짜 맛있긴 하다. 나 이제 다른 갈비는 못 먹을 것 같아.”
“다음 주에 과 회식 갈빗집이던데 너 못 온다고 한다 그럼?”
“말이 그렇다고. 알만한 양반이 그러네, 피곤하게.”
“그래 야, 성 사장님 피곤하시단다. 이거나 마셔. 자.”
4명의 저녁 식삿값으로 나온 65만 원. 보통 대학생의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돈이지만, 곳간에 한 번에 큰돈이 들어온 준호는 넉넉해진 인심으로 자신이 돈을 버느라 소홀히 한 학과 생활을 챙겨준 친구들에게 흔쾌히 베풀었다.
“잘 먹었다 준호. 나 이 정도면 다음 학기에는 대리 시험도 봐 줄 수 있어 어때.”
“아우, 오바하지 마 콱씨. 근데 나는 진짜 대리시험 가능.”
“나가 있자 둘 다.”
고마운 마음에 괜히 치근덕대는 친구들을 내보낸 준호는 계산대에서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괜히 휴대폰 어플에 접속해 속절없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을 확인했다. 큰돈을 쓰고도 아직 한참이나 남은 돈을 본 준호는, 홀린 듯 채팅 어플에 접속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는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 합류했다.
“그때 돈에 홀리지 말아야 했을까.”
“또 시작이다, 또. 그래도 돈은 실컷 벌었으면서.”
“돈은 벌었지. 이 상황에 장점이라곤 돈밖에 없는 게 문제 아닐까. 그렇다고 뭐 어마어마하게 버는 것도 아니고. 장점보다 단점이 너무 많다.”
카페 테이블에 놓인 두 대의 노트북은 서로 같은 화면을 띄운 채 30분가량을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노트북에 비해 그 옆의 커피 두 잔은 얼음이 녹은 물조차 없는 상태로 텅 비어 있다. 오늘은 태영이 준호에게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날이었지만, 카페에서 만나 노트북을 켜기만 한 채 준호의 푸념만 이어지고 있었다.
“일 줄이는 게 그렇게까지 안 되는 일이야? 계약 건을 줄이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뭐 하청을 또 돌리기도 하던데 그건 좀 무리인가.”
“하청을 맡기든 직원을 뽑든 시간이 좀 나야 하는데 나 지금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그리고 당장 계약 줄이려면 반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 전에 나 죽겠어.”
“죽기야 하겠냐. 근데 너 나한테 하청 맡기려고 이거 가르치는 거 아니야?”
“오?”
바쁜 와중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듯, 준호는 한 번씩 개발을 알려준다는 핑계로 태영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낮에 시간을 빼면 그만큼 밤에 더 일해야 했지만, 준호에게는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첫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준호는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 계약한 회사를 통해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 제의가 하나둘 들어왔고, 이 기회에 이런 프로젝트 제안을 받기 위한 자신만의 홈페이지도 개설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번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학업까지 병행하니 준호는 최소한의 학교 수업 이외에는 자취방에 앉아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이 직접 개발한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그 재미와 성취감에 빠져 힘든 줄도 모르고 일에 빠져 살았다.
여느 때와 같이 컴퓨터만 두드리던 준호는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두 시간도 넘게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곤한 얼굴에 옅게 화색이 도는 것을 보아 기다리던 사람인 듯 했다.
“지영아 왔어?”
“어후 냄새. 오빠 내가 아침에는 환기도 하고 그러라고 했지.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집에서 담배를 펴도 이렇게는 안되겠다. 청소부터 하자. 창문 열어 빨리.”
“나 하던것만…”
“오빠 또 하던거 끝내면 밤 되잖아. 그럼 피곤하다고 또 안할 거면서. 내가 오늘은 1시에 온다고 말 했지. 그럼 그 전에 마무리를 했어야지. 맞아 안맞아. 당장 청소 안할 거면 나 집에 갈 거야. 알아서 해.”
“알겠어 할게.”
지영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준호의 책상에 내려놓고는 잔소리를 쏟아냈다. 오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지영이 서운했는지, 옅게나마 화색이 돌던 준호의 얼굴이 금새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강경한 지영의 태도와, 그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자신의 자취방 상태를 보고는 방금까지 머리속에 가득했던 프로그램 코드를 비롯한 온갖 정보를 놓아주었다. 배달 용기 안에 남은 음식물부터 시작해서 부엌을 가득 메운 생수 페트병을 다 치우고, 온 방을 쓸고 닦고 물건 정리에 이틀만에 샤워까지 한 다음에야 준호는 지영이 사온 커피를 마시며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우리집도 이정도로 안치우는데, 오빠 덕에 좋은 경험 한다 진짜.”
“그치? 이게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눈치 안챙겨?”
“넵.”
“근데 진짜 이렇게 살아도 안힘들어? 일좀 줄여야 하는거 아니야? 어제는 몇시간 잤어? 또 새벽에 잤지.”
“아냐 그래도 해뜨기 전에는 잤어. 그리고 오전까지 잤으니까 충분하지 뭐.”
“운동은 했고?”
“했지. 산책하는 거 뭐 어렵다고. 동네 몇 바퀴 돌았어 어제.”
“그런데 샤워를 이틀만에 했다. 운동을 안한 거야, 아니면 하고 안씻은 거야? 어느 쪽이 덜 혼날지 머리굴리지 말고 그냥 말해.”
“…. 운동을 안했어. 미안.”
“그럴줄 알았다. 으휴. 나와 빨리, 지금이라도 좀 걷게.”
“더운데 지금…. 나 방금 샤워…”
“아 더워? 한대 맞으면 짜릿하고 시원할텐데 이리 와봐.”
개운하고 깨끗한 기분도 잠시, 혼날 일이 끝이 나지를 않는 준호였다. 마지못해 끌려 나온 준호는 며칠만에 보는 6월 오후의 햇살이 조금 버거웠지만, 화난 지영보다는 덜 버겁다고 판단하고는 순순히 동참했다. 그렇게 동네 일주를 마친 두 사람은 구석진 골목에 뜬금없이 자리한 카페로 향했다. 화분으로 가득한 테라스와 우드톤으로 따듯하고 정성스럽게 꾸민 카페는 주말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한바퀴 도니까 좋지?”
“너랑 놀아서 좋은 거지.”
“으휴, 말이나 못하면. 오빠 케이크도 먹을까?”
준호의 넉살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지영은 디저트까지 주문한 다음 준호와 나란히 소파 자리에 앉았다. 지영이 디저트를 주문했다는 건 마음이 편해졌다는 뜻이기에 종일 지영의 눈치를 살피던 준호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오빠 다음학기에 수업 3개라고 했나? 그럼 이제 완전 프리랜서 개발자네.”
“맞아. 다 교양과목이라 수업만 나가면 되니까. 이번에도 딱 저공비행 해야지.”
“그 저공비행 지훈오빠네 덕에 하는 거 알지? 이번에도 뭐 사줬어?”
“그냥 집들이 겸 해서 한 잔 했어. 오버 안하고 이번에는.”
“그래, 작년에 거기는 진짜 과했어. 부모님은? 아직도 못마땅해하셔?”
“응. 기껏 맛있는데 모셨는데 드시면서 계속 잔소리 하시더라. 자꾸 그러시니까 더 오기가 생긴다 이제? 그래서 다음학기엔 한 건 더 하려고.”
“그건 진짜 오기야 오빠. 그러다 F맞으면 졸업 못하는 거 알지?”
“알지. 그냥 하는 말이야. 졸업 빨리 하려고 휴학도 안하는 건데.”
“알면 좀 건강하게 일을 해. 맨날 밤새고 학교도 안가고 그러니까 부모님도 걱정하시지. 나같아도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겠다.”
“알겠어. 근데 너는? 인턴은 할 만해?”
“그냥 그렇지 뭐. 어차피 스펙용인 거 다들 알아서 별로 중요한 것도 안 시키셔. 이거 도움 되는 거 맞겠지?”
“그럼! 없는 것보단 낫겠지 당연히.”
“에휴, 됐어. 오빠 나 맛있는 거 먹고싶어. 이번주 내내 국밥 먹었단 말이야.”
“그래, 족발 먹을까 오늘은?”
“학교 앞에 거기? 좋아! 가자가자!”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영이 가장 큰 도움이고 위안이었다.준호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지영은 준호의 건강부터 시작해서 부모님과의 관계까지 늘 알뜰살뜰하게 챙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