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 이야기
준호는 졸업 후에도 프리랜서 개발자의 삶을 이어갔다. 대학생 타이틀이 따로 없어 이전처럼 계약금 외의 비용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과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노련함이 더해져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고객사의 소개에 소개가 이어져 준호는 특별한 공백기 없이 무난하게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 크게 돈을 쓸 일도 없다 보니 돈도 목표했던 이상으로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준호를 둘러싼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도 오빠랑 말씀 안 하셔? 지난주에 본가 다녀왔잖아.”
지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영은 취업도 하고 회사 근처에서 자취도 시작했지만, 여전히 바쁜 준호의 탓에 지영과 준호의 데이트는 대학에 다니던 3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영이 늘 오는 준호의 자취방이 조금은 깔끔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뭐. 이제라도 취업을 해야 한대. 나도 이제 모르겠어. 집에도 가기도 싫고, 저번에는 상품권 선물로 드렸었는데 그거 쓰지도 않으시고 그냥 두시더라고. 왜 불만이지 도대체.”
준호는 여전히 아들의 직업이 못마땅한 준호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난주 본가에 다녀왔던 날을 떠올리면 또 괜히 거부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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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엔 아파트가 즐비하다. 크게 뚫린 8차선 도로 양옆으로 최소한의 상가를 제외하면 전부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 준호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무탈하게 지나갈 리 없는 오늘 하루에 어딘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저 왔어요.”
“어, 준호 왔니? 잘 지냈어?”
“잘 지내죠. 저야. 이거 수박 좀 사 왔어요.”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간 준호는 부모님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는 거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베란다의 창가에는 화분이 가득하고, TV에는 한창 인기 있는 프로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준호의 아버지는 TV 소리를 조금 줄이고는 준호와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앉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준호의 어머니가 어느새 준비한 복숭아가 예쁜 접시에 담겨 자리를 차지한다. 어머니도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고는 복숭아를 한 조각 집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새는 뭐, 별일 없어? 이제 8월 휴가철인데 다들 놀러가지 않아?”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다들 놀러가지도 않나봐요.”
“그래, 일이 잘 되긴 하는 구나. 취업 준비는, 아직도 할 생각이 없어?”
“네. 맡은 것도 많고, 들어오는 것도 있고 하니까요.”
“…그래 알겠다.”
세 사람의 분위기는 겨우 몇 마디 만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식사를 할 때까지 TV로 눈을 돌려버렸고, 준호는 어머니와 둘이서 조금 이야기하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준호가 졸업 후에도 프리랜서로 일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준호가 집에 올 때마다 반복되는 분위기였다. 혼자 일하는 건 한계가 있고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의견과 취업에 회의적인 준호의 의견 차이는 몇 개월이 지나도 좁혀질 기미가 없었다. 처음엔 서로 언성을 높여 얘기하던 준호와 준호의 아버지는, 이제는 서로 이야기를 포기한 채 냉전 상태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본가를 오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준호는 종종 얼굴을 비추러 올 때마다 불편한 분위기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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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빠, 취업하는 건 왜 그렇게 싫어? 나 회사 다니는 거 보면 그래도 다닐 만한 것 같지 않아? 꼬박꼬박 휴가도 나오고, 여유도 좀 있고, 퇴근하고 집에서 나랑 있는 거야. 그런 건 어때?”
“그래도 그건 내 일이 아니잖아. 난 누가 시키는 일은 싫어. 내가 내 힘으로 계약해서 만들어가는 게 진짜 내 일이지. 그리고 젊을 때 이렇게 바짝 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다야?”
“어…?”
지영의 말에 뭔가 잘못됨을 느낀 준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잠깐 멈췄던 대화는, 지영이 다시 시작해 이어 나갔다.
“오빠, 오빠가 생각하는 미래에 일 말고 나는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당연해서 나는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일 얘기할 때는 신나서 이것저것 떠들고, 나랑 말하다가도 클라이언트 연락 오면 그것부터 받고. 내가 맨날 보고 싶다, 같이 있자 하면 마지못해서, 조르고 졸라야 겨우 나오고. 그거 얼마나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줄 알아? 넌 내가 있는 게 당연해서 내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살아? 이럴 거면 나랑 왜 만나?”
“아니, 그게 아니고 지영아…”
“난 우리가 졸업하고 서로 바쁜 시기라서, 자리를 잡는다고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자주 만나고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넌 네 생각만 한 거였잖아. 아니야?”
봇물 터지듯 나오는 지영의 말에 틀린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말에 그동안 받은 상처가 녹아있었고,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느껴질 만한 서운함에 준호는 대꾸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 단단했던 지영의 얼굴에는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눈물이 얼굴 끝까지 흘러내렸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준호를 한동안 바라보다, 일어나서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준호가 지영을 말리며 말했다.
“지영아 어디가.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잠깐만 있어봐.”
“너한텐 갑자기겠지만, 난 아니야. 컴퓨터 말고 나도 좀 봐달라고 몇 년을 얘기하고 기다렸어. 그렇게 매번 매달리듯이 말했는데, 같이 사는 건 어떠냐고까지 말했는데 넌 아무 생각이 없잖아. 됐어, 이제. 나도 안 할 거야.”
“그게 아니라 지금은 바쁘니까, 자리 좀 잡고 여유가 생기면…”
“여유가 생기면 날 보긴 할 거야?”
지영이 충혈된 눈으로 준호를 쏘아보았다. 차오른 눈물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흘러내렸음에도 지영은 미동도 하지 않고 준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준호의 모습에, 지영은 마저 짐을 챙기고는 준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지영이 나간 방에서 준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고, 모니터의 커서만 눈치 없이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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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3일 전이고.”
“응.”
“그리고 어제 만난 거고.”
“어.”
“지영씨는 헤어지자고 자기 할 말만 하고 갔다고, 어제.”
“그렇지. 하…”
한숨을 쉴 때마다 준호의 어깨를 시작으로 온몸이 조금씩 꺼졌다. 몸과 정신을 붙잡고 있는 끈이 조금씩 끊어지는 듯했다. 준호의 이야기를 듣던 태영은 준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야 이 등신아. 말하고 간다고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냐? 어제 그러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는다고? 뭐, 톡 한 줄이라도 보내긴 했어?”
“아니. 그냥 내일…”
“내일 뭐?”
“내 집에 자기 짐 택배로 보내래.”
“그게 다야?”
“어…”
다시 한번 태영의 날 선 타박이 날아왔다. 평소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지 않는 태영이기에, 안 그래도 쳐져 있던 준호의 어깨는 카페의 테이블 밑으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아니, 왜 그냥 가만있어? 잡던가, 빌던가, 핑계라도 좀 대라 차라리. 너 일 어떻게 하는지 지영씨한테 말 안 했지, 끝까지?”
“뭘 말을 안 해…?”
“너 맨날 클라이언트한테 갑질이나 당하고, 무상으로 유지보수하고, 새벽에도 연락받고, 그런 거 하나도 말 안 했지?”
“그게 뭐…”
태영이 답답한 한숨을 뱉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런 걸 말도 안 하면, 지영씨 눈에 넌 그냥 자진해서 일에 미친 놈이잖아. 자기는 봐주지도 않고 일에만 미쳐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코 박고 사는, 그런 사람이랑 계속 만나고 싶겠어?”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괜히 징징대는 거잖아.”
“뭐, 그럼 해결을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만두고 취업을 하던가 해야지. 왜 그렇게까지 프리랜서를 하냐? 그거 해서 남는 게 뭐가 있는데? 너 지영씨 없으면…”
“취업 안 되더라.”
“어?”
태영의 타박을 끊고 들어온 준호의 말에 태영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대학교 때부터 회사 취업에 대해 회의적이기만 하던 준호가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지원해봤어, 작년부터. 60개도 더 지원했는데 안 되더라고.”
“네가? 취업을 하고 있었다고? 아니, 다 떨어졌어? 왜?”
“모르지. 프리랜서 출신을 싫어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스펙이 부족한가도 싶고. 겨우 면접을 가도, 내가 뭐 면접관한테 호감 있는 느낌도 아니니까. 그리고…”
한 번 말하기 시작하니, 준호는 이후로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준호는 처음 프로젝트를 하고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던 날 느꼈던 성취감에 프리랜서를 시작했다. 통장에 찍힌 돈도 중요했지만, 생에 처음으로 느껴본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동경은 준호가 졸업한 이후까지 이 일을 놓지 못하게 했다.
준호가 위화감을 느꼈을 땐,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넘게 훌쩍 지나간 뒤였다. 준호의 일상은 클라이언트들의 일정 압박과 과도한 요구사항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부모님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으며, 지영과의 데이트마저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소 단체생활에 부담감을 느끼던 준호였기에 직장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버거워지는 프리랜서 생활에 준호도 취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래서 늦게나마 개발 회사에 지원서를 넣어보고 있었지만 1년째 낙방을 반복하고 있던 차, 지영에게 이별 통보까지 받은 것이다.
준호의 이야기를 다 듣고 태영이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게. 그냥 프리랜서 계속하게?”
“몰라. 생각 좀 해보고.”
“그래 좀 쉬든가 해라. 저번에 형일이도 그렇고 뭐가 이렇게 잘 안되냐.”
지금껏 준호를 쏘아대던 태영이 이제는 속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형일이 부산에서 올라와 하소연하고 간 지 불과 며칠 만에 준호의 이야기까지 들으니, 태영은 마음이 영 심란했다. 그렇게 조금 무거워진 공기를 피해 두 사람은 다시 일상 속 제자리로 돌아갔다.
태영과 이야기를 나눈 후 열흘 뒤, 준호는 여전히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저항할 새도 없이 밀려온 일들에 마음을 정리할 새도 없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려본 적이 없던 준호는 미련하게도 하던 일에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일주일 전 지영이 보낸 메시지가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빠, 갑작스럽게 이렇게 결정해서 미안해. 내가 좀 많이 지쳐서 감정적이었나 봐. 오빠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어. 오빠랑 같이 있던 시간이 다 좋았고, 항상 고마웠어. 근데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 바랜 것 같아. 같이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조금 벅차. 나 없어도 건강 잘 챙기고, 잘 지내. 진심이야.’
몇 줄 되지도 않는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외워버린 메시지를 떠올리며 멍하니 또 하루를 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3일째부터는 메시지를 떠올리는 시간을 줄여보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제 지나갔을지 모르게 닷새가 지난 날, 역시나 일을 하던 준호의 화면에 새 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야 우리 여행 가자. 이렇게 살 바에는 그만두고 여행이나 가고 싶어졌어.”
형일의 메세지였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지만, 다행히 같은 채팅방에 있는 태영이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그래그래, 진정하고 너의 계획을 더 말해보렴.”
“내년에 퇴사하기로 했어. 5월쯤 퇴사하고 돈 모은 거 써서 해외여행 갈 거야.”
“좋아, 설명이 조금 늘었어.”
형일과 태영이 대화를 이어 나가자, 준호는 그제야 채팅방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답장을 보냈고
“퇴사하기로 했어? 회사랑 얘기된 거야? 보통 한 한 달 전에 말하지 않냐?”
일주일 동안 텅 빈 껍데기처럼 살던 준호는 그 채팅 하나로, 정확히는 친구들과의 대화 한 마디로 텅 빈 자신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겨우 이런 일에 마음이 나아진 자신이 가증스럽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형일과 태영의 채팅을 보고 생각했다.
‘여행…, 그래. 이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