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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두 Sep 19. 2024

소란 完

일단 현수는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회사 직원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 문틈이 좀 넓어서, 보시면 걸쇠 같은 게 보이실 거에요. 카드나 뭐 얇은 거로 그 부분에 막 어떻게 하시다 보면 열립니다. 처음엔 잘 안되는데 하다 보면 어느새 돼요.”


 참 친절한 설명이었다. 일단 기댈 곳이라곤 이 친절한 설명밖에 없는 현수는 일단 가지고 있던 카드를 꺼내어 문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원이 설명한 걸쇠는 보이지도, 카드에 걸리지도 않았다. 조금 더 길고 얇은 게 필요한 일이었을까. 15분이 넘도록, 더운 여름에 땀까지 흘려가며 자기 방문을 열기 위해 낑낑대는 이 한국인은, 복도에 사람이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문틈으로 얼굴을 바짝 붙여 조금이라도 걸쇠를 찾는 데 열중했다.


“도와줄까? (영어)”

“악!”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현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한발 물러나 옆을 보았다. 자신보다 한 뼘은 큰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부른 사람을 잠깐 바라본 현수는 이내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2주 전부터 현관에서 보던 그 흑인 중 한 사람이었다. 현수가 말이 없자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열쇠 두고 나왔어? (영어)”

“그런데? (영어)”


 현수가 경계하며 대답했다. 좋은 감정이 없다 보니, 심지어 방금까지 아주 나쁜 감정을 가졌던 무리 중 한 사람인 것을 알아본 현수는 경계의 말부터 나왔다. 하지만 현수의 반응과 달리 이 키 큰 사람은 주머니에서 현수가 쓰던 카드와 비슷한 카드를 꺼내어 들고는, 현수가 공략하던 방문의 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텅~.


 그렇게 현수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들어가! 좋은 시간 보내고.(영어)”


 또다시 현수의 상황 파악보다 빠르게 열린 문이 닫히지 않도록 받침대를 내린 뒤, 일방적인 인사를 보내며 옆방으로 미련 없이 사라졌다. 덕분에 방으로 들어온 현수는 부엌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 열쇠를 바라보았다. 겨우 이 작은 것 때문에 무슨 고생을 한 것일까. 그다음으로는 감사의 인사 한번 못한 방금의 상황이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던 현수는 이내 무언가 마음먹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


 좋은 마음으로 시작은 했지만, 막상 저 소란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하던 분위기고, 피하다 못해 배척하고 대치하던 파티이다. 키 큰 친구에 대한 고마움에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 굳어진 몸을 움직여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퇴근길에 본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지없이 사람들의 시선은 현수에게 모여들었다. 시선에 손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현수는 아까 그 키 큰 친구를 찾아 무리를 훑었다. 하지만 현수가 찾아내기도 전에 그 친구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Hey!”


 현수는 자신을 먼저 알아본 친구에게 다가가 손에 든 것들을 건네줬다.


“아까 문 열어줘서 정말 고마워. 너무 당황해서 얘기도 못 해서 왔어. 이건 여기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만들어봤어. (영어)”


 건네준 것은 냄비와 포크였다. 냄비 안에는 현수가 아끼고 아끼다 결국 남아버린 한국의 명물 불닭볶음면이 맛있게 담겨있었다. 색이 연하고 찐득한 것이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게 치즈를 잔뜩 첨가한 모습이었다.


“먹고 냄비는 방문 앞에 가져다줘! (영어)”

“Hey hey, 잠깐만! (영어)”


 빠르게 할 말만 하고 돌아가려는 현수를 키 큰 친구가 불러 세웠다.


“어디가! 같이 먹고 가. (영어)”

“그래. 넌 이거 마셔. (영어)”

“맞아. 같이 놀자, 이리와! (영어)”


 나란히 키가 큰 세 명이 말했다. 한 명은 아직 새 병으로 보이는 맥주까지 내밀었다. 현수가 어색하게 코를 한 번 긁으며 다가와 마지못해 맥주를 받아들었다. 합류하는 듯 보이는 현수의 모습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각자 떠들어댔다.


“내가 저 사람은 한번 올 줄 알았어. (영어)”

“말했지? 그때 내기를 해야 했는데. (영어)”

“저 빌어먹을 빨간 면은 뭐야? 우리 엿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영어)”

“Hey, 어디서 왔어? (영어)”

“나 너 아침에 조깅할 때 본 적 있어! (영어)”


 관심을 표현하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시선뿐 아니라 질문과 관심까지 쏟아졌지만, 현수는 걱정과는 다르게 떨리던 손이 조금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항의를 던질 때 보았던 그 폭력에 가까운 소란이, 붉은 하늘을 뒤집어쓴 광기가, 미칠 듯이 싫어하던 이 소란이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를 배척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자신만이 대치를 만들고 항의를 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소리가 되어버린 소란을 잠시 주시하던 현수는, 이내 웃음을 되찾고 말했다.


“자자, 일단 먹고 얘기할게. 한 입씩 해. 이건 불닭볶음면이라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이걸 즐기려면 각오해야 할 거야 너네. 맥주 가득 채워 놓고 마셔! (영어)”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보고 웃으며 현수가 그들과 융화되는 무렵, 현관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현수와 사람들은 그 하얀 피부의 여자를 바라보았고, 그 여자는 현수와 사람들에게 항의를 표하듯 표정을 찡그린 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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