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어느 주말, 엘 빨마르 바다에서 위 파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 보드를 붙잡고 있던 우리 부부의 서프 강사, 호세 안테파스는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으로 쾌활하게 외쳤다. '우리 서프 트립 가자, 산타 까딸리나 파도가 유명해!' 여행을 제안하는 걸 보니 우리를 꽤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머리는 이성적으로 돌았다. 그의 가족 세명에 그들의 짐까지 우리 차에 다 들어갈 것인가부터 경비 부담의 문제, 언제나 문화적 차이로 어떤 상황에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일순간 종합돼 '다소 불편'할 거란 생각이 스쳤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행을 제안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두두와 나는 그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둘만의 여행을 해왔다. 우리의 여행 방식과 가치관이 굳어있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동행을 위해서는 이 여행의 법칙이 유연해져야 했다. 생활공간이기도 한 자동차에 적용되던 규칙들에도 예외가 필요할 것이다. 생활 언어와 문화에서 교집합이 없는 두 커플과 4살짜리 어린아이가 한 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면 어떨까?우리가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거야.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결론이었다.
한국인과 베네수엘라인의
공공의 적, 파나마 경찰?
도시에서 출발한 우리는 호세의 집 앞으로 가서 그들 짐을 실었다. 작은 SUV 은 뒷좌석 바닥에까지 다섯 사람의 짐으로 꽉 찼다. 그리고 우린 서프 스쿨에 잠깐 들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서프 스쿨에 들어가 디오고와 인사를 하고 호세와 우리의 서프보드를 꺼내왔다. 이번 여행을 위해 장만한 랙 위에 보드 두 개를 잘 고정시키고, 우린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좁은 공간의 다섯 사람. 파트리시아는 호세의 여자 친구이자 아내이자 동거인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서로를 연인으로 칭하지만 한국적 정서로는 아내인 셈이었다. 파트리시아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Kpop에 대해 알은척을 했다. 그녀의 시도에 동조하며 우린 생각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 몇 곡을 틀었다. 하지만 케이팝 쪽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던 우리는 금방 이어갈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다.
조용해진 분위기대로 안정적인 주행을 하는데, 반대 차로에 서있던 경찰이 난데없이 팔을 휘저으며 정차 신호를 보냈다. 대체 뭐야 과속하지도 않았는데. 한국말로 내뱉은 한 문장에 호세와 파트리시아도 금방 상황을 눈치챘다. 네 명의 성인들은 동시에 침묵에서 깨어났다. 경찰은 운전자에게 차를 갓길에 붙여 놓고, 내려라고 명령했다. 경찰의 설명은 1차선은 양보 차선인데, 너희는 1차선에서 주행을 했으니 교통법 위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 파나마의 2차선은 포트홀 천지로 대부분의 차량은 1차선 주행을 한다 - 설명을 길게 끄는 것으로 봐 결론적으로 레갈로 Regalo선물, 즉 뇌물을 바라는 눈치였다. 두두는 경찰에 선물을 줄 바에 파나마 정부에 세금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며 티켓이나 얼른 달라고 하고 차로 돌아왔다.
지금 상황을 인스타 라이브라도 할까?! 경찰의 등장으로 뜻밖의 일체를 겪었다. 앞 좌석과 뒷 좌석 간의 대화는 경찰 덕에(?) 한동안 풍성했다. 그리고 어느 쪽의 대답이 침묵이 되어 돌아오고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각자의 시간과 풍경을 즐기며 가는 걸로 가닥이 잡혔다. 갈 길이 멀었다. 나는 조용한 팝 음악으로 바꿔 틀었다. 샘은 강아지 캐릭터가 나오는 파우 패트롤Paw Patrol의 세상모르고 집중해 있었다. 가끔 넷플릭스의 영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떼를 썼지만, 파트리시아에게 금방 저지당했다.
산타 까딸리나 Santa Catalina는
파나마 시티에서 차로 7시간 거리에 있는 태평양에 면한 해안지역이다. 서핑과 스쿠버 다이빙 스폿으로 유명해서 서핑과 수상스포츠 관련 샵과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보트를 타고 코이바 해상 국립공원을 갈 수 있다. 여유롭게 자연을 탐사하고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유럽이나 북미의 젊은 층 관광객의 방문이 있다. 하지만 파나마에서 꼽히는 여행지임에도 교통편이 수월치 않아서 유명세에 비해 한적한 편이다. 그것이 매력.
Surfer's Paradise
언덕 끄트머리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이름하야 서퍼스 파라다이스 호스텔. 숙소 주인 이딸로씨가 우릴 맞아줬다. 그와는 이미 한번 인연이 있었다. 우린 엘빨마르의 서프 아카데미를 통해 우리의 첫 서핑보드를 주문했는데 그것을 싣고 온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때 산타 까딸리나에 대해, 자기가 운영하는 호스텔에 대해 소개했던 게 계기가 되어 숙박을 예약했다. 이딸로씨는 키도 크고 배는 통나무처럼 크고 둥근 오십 대 정도의 남성이다. 이딸로씨도 서핑해요? 라고 묻자, 파도 위에서 파도를 타는 사진을 보여줬다. 파도 위의 그는 역시 그 둥근 몸매 그대로였고, 그 모습이 아주 멋졌다.
우린 각자 방에 짐을 풀어놓고 해변으로 나갔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 오늘의 마지막 파도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서퍼의 천국'에서 보이는 완벽한 파도의 모양
해변에 남겨진 서퍼의 가족
바다로 가는 내리막 길 주변엔 소담한 규모의 호스텔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정원과 테라스엔 젖은 옷을 말리거나 해먹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전에만 해도 도시에 있었던 우리에겐 그들의 여유가 낯설게 보였다. 언덕이 끝나고, 작은 강줄기를 만났다. 강물은 얼마 흐리지 않아 바다로 이어졌다. 썰물 때라 바닥이 비치는 강을 찰박 찰박 걸었다. 에스떼로 해변은 그 끝점까지 걸어 볼 의욕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길고 넓었다. 파도가 부서져 만들어낸 습기 탓에 멀리 굴곡진 해변의 끝은 희뿌옇게 보였다. 바다엔 꽤 큰 파도가 쉴 새 없이 들이치고 있었다. 겹겹이 들이치는 파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거품은 풍성한 레이스 같았다. 해변은 파도의 진동소리로 밀도 있게 메워진 듯했다. 우거진 팜나무 숲 속에 터를 잡은 호스텔은 그 소리에 숨죽인 듯 보였다. 독특한 공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호세는 파도에 가까워지자 표정이 진지해졌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바다로 곧장 향했다. 두두도 그를 따라 서둘렀다. 몇 번의 파도를 넘은 두 사람의 모습은 곧 파도가 남긴 거품에 가려졌다. 가끔 바다 멀리에 그들이 수영복 바지색이 포착되긴 했지만 금방 사라졌다. 호세는 파도 위에 몇 번 섰지만, 두두는 시종 보드 위에 엎드린 모양이었다. 그들은 파도를 잘 잡지 못하고 있었다. 파도가 처피해 Choppy 파트리시아가 덧붙였다. 파도는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부서지고 있었다. 그들은 입수한 지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두 남자가 보이는 곳을 따라 이동하다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망부석처럼 그 방향을 향해 보고 서있었다. 망부석이 된 아내의 마음을 알겠네. 걱정이 되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기다릴 밖에. 해변으로 떠내려 온 죽은 나무기둥 앞에 자리 잡은 파트리시아와 샘은 베네수엘라 동요를 부르면서 엄마와 아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해변 저 멀리에서 보드를 들고 돌아오는 이들이 보였다. 하, 다행이다. 한껏 졸았던 마음이 놓였다. 두두는 날 보자마자, 죽~을 뻔했어. 라고 입을 뗐다. 파도를 타기는커녕 모양이 안 좋아서 그들은 파도와 실랑이를 했단다. 한참을 애만 쓰다가 보니 어느새 해류와 썰물에 밀려서 해안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더란다. 그래서 돌아가려고 패들링을 했지만 힘만 뺄 뿐 해안에서 계속 멀어졌다. 결국 나중엔 어깨 힘을 다 써버려서 헛 물질만 했단다. 결국 호세의 보드를 잡고 해안을 빙 둘러서 겨우 빠져나왔다고 했다. 역시 호세야. 내가 따라갔으면, 난 이미 태평양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었을 것 같았다.
에스떼로 해변
아이 샘은 멀리서 호세를 보자 그간 아빠를 기다려 왔던 것처럼 아빠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호세는 방금 경험한 파도에 대해 일언반구 할 틈 없이 샘의 손에 끌려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샘은 익숙한 듯 자기 아버지의 연두색 롱보드에 엎드려 파도를 탔다. 아빠가 밀어주는 서프보드만 한 놀이기구는 없다는 듯 한껏 신났다. 파도가 끝나면 다시 바닷속으로 아빠를 끌었다. 호세는 수백 번이라도 아들의 서프보드를 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그들 가족이 파나마에 모여 산 이후의 첫 여행이었을 것이다. 호세는 파나마에서 일하는 서프 강사 호세가 아닌 베네수엘라에서 가족들과 파나마로 여행 온 아빠이자 남편인 호세였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서프 트립이란 이름을 빌린 안테파스 가족의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