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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Apr 19. 2022

진실을 다루는 태도에 관하여

히가시노 게이고 - 『백조와 박쥐』

법과 무관한 정의 구현은 법체계를 흔들고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죽어 마땅해 보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가 그 죽음을 방관하거나 가담하는 건 마땅하지 않다. 그러니 진실을 확인하겠다는 집념과 진실을 마주했을 때 책임을 지니는 태도가 윤리의식의 토대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 진실이 나의 세계관을 무너뜨릴 때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설 수 있을까? 이 책은 죄를 묵과한 인물에게 엄정한 현실 인식으로 책임을 물음으로써 그 딜레마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몇십 년 전, 법학부 학생으로 장래가 밝았던 청년 시라이시는 악한인 하이타니에게 고통받고 있었다. 그 사정을 알고 있던 구라키는 시라이시가 하이타니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시라이시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이타니에게 악감정이 있기도 했지만, 그 나름의 '정의'를 발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하이타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준지가 감옥에서 죽고 만다. 준지의 유족은 준지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평생 살인자의 가족이란 질타로 고통받는다. 이를 알게 된 구라키는 죄책감에 휩싸여 준지의 유족을 찾아내 몰래 도움을 주지만 그 고통을 덜어주진 못한다.


그리고 몇십 년 뒤, 시라이시는 성인이 되어 동료에게 인정받는 변호사로 출세한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의문의 살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는데, 바로 사리이시가 살해당한 것이다. 소설은 과거의 살인사건과 현재의 살인사건을 교차하며 은폐된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소설 말미에서야 시라이시의 살인자가 밝혀지는데, 살인자는 바로 준지의 손자였다. 왜 시라이시를 죽였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손자는 자기 할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시라이시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고 답한다. 시라이시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죽이고, 몇십 년 뒤 '자신을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도모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살해당한 사람, 살인을 저지른 사람, 그리고 남겨진 유족들을 아무도 구제하지 못한 비극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 절대적 정의란 없다. 법 역시 인간이 만든 체계이니 분명한 허점이 있다. 다만 약속이니만큼 응당 따라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효력을 지닐 뿐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정의 역시 한 사람의 경험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지엽적이고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감정도 누군가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이 사건의 주범인 구라키와 시라이시의 문제점은 하이타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개인의 정의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법적 해석도, 개인적 판단도, 진실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안해낸 도구가 진실을 가리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개인의 융통성 역시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사용될 때만 그 의미를 다 할 수 있다. 진실을 가리고자 하면 언젠가 그 책임을 묻게 된다. 마치 구라키와 시라이시처럼.


이렇게 써놓고 보니 모든 비극이 구라키와 시라이시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의 원인을 오직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애초에 하이타니의 부당한 술법을 사법당국이 제재했더라면 시라이시는 억울함을 풀 수 있었을 테고, 그의 행동이 살인까지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준지에 대한 폭력적인 압박 수사가 없었다면 준지는 자살보단 누명을 풀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시스템의 모순과 과잉수사를 한 경찰, 그리고 구라키와 시라이시의 잘못된 법 감정에 따른 공모 사건이다. 한 개인의 범죄는 오직 그 범죄자만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 사회의 모순이 불러온 비극이다.


현대판 <죄와 벌>이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책이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냐는 물음부터 시작해 법원의 모순, 공소시효의 문제점, 살인자 가족에 대한 사회의 멸시, 개인의 정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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