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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08. 2021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이치를 점점 알게 된다. 만약 사람이 세상의 이치나 진리를 모르고 죽는다면, 과연 그런 존재나 세상이 필요할까? 타인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면, 그 사람도 나에게 잘해준다.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따뜻하게 해 주면, 나도 환대를 받는다. 원수에게도 축복을 해주면, 원수의 활이 나에게 날아오다가 휘어진다. 내 몸을 정성껏 관리하고 몸에 이로운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우리의 몸은 그만큼 나에게 건강을 가져다준다. 반대로 몸을 혹사하면, 몸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병들고 노쇠해진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보면, 세상에는 어떤 질서가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진실한 사랑을 당장에는 몰라도 나중에 알게 되면, 뭉클한 가슴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사람은 대단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의 섭리를 안다. 다만 모른 체할 뿐이다.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섭리가 진리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모르는 게 아니라 헛것을 좋아하고 아낀다. 이번만 모른 체 하자고 하다가 평생 모른 체 하게 된다. 주변의 지인이 힘들어함을 안다. 다만 모르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알 수 있는 진리를 모른 체 하면서 마치 엄청난 진리가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도를 닦는다. 관심을 가지면 인간에게는 우리의 삶이 진리이다. 나의 생각, 느낌, 행동이 바로 인간 존재의 증거이다. 삶 속의 진리를 무시하면, 왜곡된 가치관과 자아상이 형성된다. 근사한 서양 식당에서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서다가 길 모퉁이에 창자가 터져 나온 쥐를 보면 징그럽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한국인 아이에게는 쌀밥이 주식이지만, 에스키모 아이에게는 피가 나는 생선이나 고기가 주식이다. 사람들은 삶에 편재하는 진리를 상식이라고 치부하고,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다. 뭔가 색다르고 새로운 것에 더욱 고상한 진리가 있다고 여긴다. 번지 점프를 하지 않아도, 카레이스를 하지 않아도, 폭음을 하지 않아고 가슴이 뛰고 심장이 폭발할 수 있다. 나의 아픔과 상대의 아픔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손을 내밀어줄 때 닫혔던 눈물샘이 열리고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빙하기를 거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라고 자문해보면, 그냥 사람답게 인간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아프면 함께 울고, 기쁘면 함께 웃으면 된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감싸주면 된다. 자신의 잘남을 내세우지 말고  어미 새가 새끼 새를 돌보듯이 힘들어하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이끌어주면 된다. 바쁘다고 이러한 진리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우주에서 다른 진리를 찾고자 한다. 늘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과 같다. 너무나 가까이 있고, 사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지만 모른 체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돈이 없어도 좋은 말을 해주고, 축복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진리를 실천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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