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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l 18. 2023

단선적인 시간관념 버리기


사람은 태어날 때 초콜릿 한 상자가 선물로 주어진다. 잘 포장된 선물 박스 안에 80여 개의 초콜릿이 담겨 있다. 우리가 평균 80년을 살아간다면, 한 개의 초콜릿이 일 년에 해당된다. 우리가 살아온 일 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듯이, 우리가 하나씩 먹어버린 초콜릿도 더 이상 선물 박스에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초콜릿 박스 속에 있는 초콜릿을 하나씩 먹어 치우면서 점점 몇 개 남아 있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아쉬워한다. 인생도 그런 식으로 보낸다. 태어나서 대학 교육을 마칠 때까지 대략 20여 년을 보낸다. 그다음에는 먹고살고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거의 40여 년을 보낸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다. 어쨌든 인생의 초콜릿을 60개 정도 먹은 다음에는 소위 은퇴라는 절차를 거친다. 그 많던 초콜릿이 다 어디 가고 이제는 20여 개 정도만 남아 있다. 어려서 학교를 다니거나 성장해서 직장에 다닐 때까지는 정말 빠른 속도로 초콜릿을 먹었치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사회의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게 되면, 인생의 박스에 남아있는 20여 개의 초콜릿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막막하다. 몸도 약해지고, 특별히 갈 데도 없게 될 때, 남아있는 초콜릿을 까먹지 않아도 초콜릿 자체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초콜릿의 맛도 점점 식상해진다.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보내 건 상관없이, 20여 년이 지나고 나면 선물 박스마저 폐기 처분을 해야 한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닐 때는 인생의 초콜릿이 달콤하기도 했었다. 학생 놀이, 사장 놀이, 돈 따먹기 놀이가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였다. 60여 개 정도의 초콜릿을 먹고 나 보니, 어릴 때 놀이터에서 했던 장난감 놀이나 성장해서 맛본 어른놀이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모든 놀이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호르몬의 분비 때문에 흥분되었고 그럴듯했고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놀이가 주어져 있는 한, 인생의 의미나 존재의 목적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성가시다. 그러나 고정된 일이 없어지고, 인그룹 소속감이 사라지면 외롭기보다는 내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성찰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마저도 노화하는 것 같다. 모든 문제에 대해 둔감해지고 호기심도 사라진다. 나머지 20개의 인생 초콜릿을 힘없이 먹으면서 이제는 노인놀이와 자주 환자놀이를 해야 한다.

이 모든 일률적인 감정 변화는 인생을 너무나 단선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마음 자세에서 비롯한다. 하나를 먹으면 하나가 없어진다는 제로섬 게임, 살아간다는 것이 고정된 시간을 조금씩 잘라먹는다는 생각, 계단을 다오르면 더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확신, 은퇴하면 노인이 된다는 인식 등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이다. 매년 연말에 한 해가 감을 서운해하고, 생일을 맞을 때마다 또 한 살을 먹는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1+1은 2 이고, 1-1은 0 이라는 수학적인 마법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그러나 인생은 수학이 아니다. 수학이라는 것은 세상과 인생을 축소하여 표시된 질서이다. 실제 인생에는 1과 1 사이에 엄청난 복합적인 가능성이 놓여있다. 우리가 겪는 사건들도 단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십~수백 가지의 이유들이 얽혀서 일어난다.

인생을 바라볼 때는 수학적이고 단선적인 인식체계를 넘어서야 한다. 수학에서는 1에서 1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인생에서는 내가 남에게 1을 베풀면, 나중에 2가 되어 돌아온다. 어떤 사람이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보내는 1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공지능의 핵심 프로그램 설계도를 만드는데 쓰인다. 시간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사람에게는 하루가 천년일 수 있다. 만약 당신에게 20년이란 수학적인 시간이 남아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생일이 20번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음의 세상에서는 20년이 200년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인생을 주어진 곶감 빼먹는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과 육체적 변화는 착시현상이다. 왜 몸속에서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세포들이 계속해서 생기는데 몸이 노화할까? 인생의 초콜릿을 60개 이상 먹으면 남아있는 초콜릿 맛도 별로라는 수리적인 착각이 노화를 촉진한다. 100세 이상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80세에도 미녀대회에 출전하는 여인들을 보라. 인생을 그때그때 대상만 바뀌며 반복되는 놀이로 여기지 말고, 또한 고정된 시간이 흘러간다는 인식을 버리면, 향기로운 초콜릿이 기다린다. 게다가 새로운 박스가 추가로 주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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