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할 준비 되었나요?
어제는 7살에 접어든 큰 아들의 생일날이었다. 케이크를 자르고 기념사진이라도 찍어두자 싶어 두 아들을 불렀지만 첫째는 팬티만 입은 채 '바지 입으면 안 될까?'라는 내 물음에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고, 둘째는 '셔츠 좀 입고 찍으면 안 될까?'라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 대며 포토존에 섰다. 나는 예쁘게 아들 둘을 안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펄떡이는 미꾸라지라도 잡은 마냥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두 아들과 함께 간신히 찍은 사진에는 그 순간의 웃음과 포기만이 즐겁게 담겨있다.
아이들이 이만큼 크고 나니 참도 감사하다. 예쁘게 사진 찍는 것 하나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그 수많은 날들 무탈하게 건강하게 커 준 것만 해도 너희들 할 바는 다 했다 싶고,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아 주어야 할 텐데 싶고.. 무엇보다 그 깜깜하고 힘들었던 육아기는 어느 정도 통과한 것 같아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아이 낳기를 결심했을 때, 나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 시기적 적절성, 경제력만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어떤 세계의 문이 열리는지는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않은 채 막연히 이쯤 되면 '아이도 하나 있어야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더니 나는 매일이 멘붕이었고, 남편과 가족, 친구를 향한 내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 지 애 하나 낳아놓고 이리 힘들어해서야. 우리 때는 그런 생각도 없이 척척 애 키우며 다른 일도 잘만 했는데.. " 하시며 나의 어려움을 이해 못해하셨고..
남편은 " 내가 퇴근하고 오면 이미 지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여보의 표정 때문에 나도 덩달아 다운이 되었어요."라고 후 고백했다.
가끔씩 보는 절친은 " 내 주위에 애 낳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은 네가 제일이다."라고 말했으니 아마도 나는 썩 육아를 잘하는 체질(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은 아닌 듯하다.
늘 멘붕이었고, 지쳤고, 벅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를 도망가지 않았고 나름의 최선을 아이에게 주고자 최선을 다 했었다. 나는 '희생'했었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멘붕 되었던 것은 이제껏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던 나의 삶을 갑자기 엄마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채 웬 갓난쟁이에게 내어주어야 했는데 이 정도로 내어줄 줄 예상하지 못했던데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둘째를 낳았을 때는 훨씬 멘붕의 정도가 덜했고 훨씬 아이를 이쁘게 보았던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 희생하게 된다. 희생의 결단 없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처럼 속절없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희생은 값진 것이라 결국은 생명을 길러내고 그 생명과 함께 인생을 누리는 축복을 덤으로 얻게 된다.
그 희생이 버거울 때 희생의 짐을 수월하게 질 수 있도록 돕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육아 도우미를 얻기도 하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얻거나, 또래를 육아하는 분들과 교류,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을, 체력을 위한 운동,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시간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것은 중요하다.
내게는 그것이 아이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손이었고, 남편과 친정어머니였다.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내가 둘째 낳기를 결심했을지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내가 처절하게 썩은 표정과 저질 체력으로 아이를 길렀지만 그 사이사이 감사와 기쁨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오직 그 두 분의 덕이다.
그러니 이것도 한 번쯤 생각해보라. 내 희생의 짐을 가벼이 만드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두서없는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쓰련다.
희생할 줄 알고 낳으세요. 그리고 기꺼이 희생하세요.
자기가 선택한 희생은 가치를 알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