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란 것.. 해 본 적 있나요?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다시금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미래 학자들의 무거운 말을 빌리지 않아도 실제로 살아가며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나는 외식을 하지 않고 포장과 배달만 한다. 이전에 만나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을 이제는 모두 만나지 않고(언택트) 결정한다. 대면하여 누리던 일상이 비대면의 새로운 국면 속으로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이전의 그 일상이 너무나 그리워 가끔은 새로운 비대면 일상이 진짜 현실인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예전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 삶에 코로나처럼 더 큰 시각의 변화, 세계의 변화, 행동 양식의 변화를 준 사건이 있다. 출산과 육아!
내 개인으로 보자면 아이를 처음 낳고 길러가는 2년 동안 나는 코로나보다 더한 변화에 어리둥절하고 정신 못 차리고 나도 모르게 와버린 새로운 세계에서 가끔은 이전 세계를 그리워하며, 하지만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지고자 고군분투하며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새로운 이 세계에서 나는, 희생해야만 했다.
희생해 본 적 있는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내 한 몸 생각하던 '나'라는 나라에 살았다. 내 입에 맛있는 거 먹고 맛없으면 안 먹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공부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여행 가고 싶으면 여행 가고, 돈과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했다. 가끔은 내 돈과 시간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였지만 일회적이었고, 내 선택적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했고 내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보며 살았다.
아이를 낳았다. 나는 아이의 의, 식, 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딱히 원하기도 전에 나의 시간과 체력, 돈과 에너지, 차라리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추어져 갔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것을 아이와 얼마쯤 나누어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가야 할 것들을 오롯이 전부 아이에게 주어야지만 생물 같은 아이가 사람으로 성장하는 2년이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고, 몸이 더러우면 씻고, 화장실 가고 싶으면 가고, 이 간단하다 못해 너무도 당연한 본능적 욕구조차 아이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후순위가 되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거야? '
버겁다 여겼지만 또 신기하게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주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엉엉 울던 날엔 아이를 만나기 전 나의 세계가 그립기도 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성실히 그 일상을 살아내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자라 갔다. 젖꼭지도 못 빨던 아이가 밥을 씹어먹고, 누워서 등도 못 떼던 아이가 걸어 다니고, 옹알이만 해대던 아이가 말을 하고, 귀여운 생물체 같았던 아이가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사람으로 변화해 갔다.
아이 낳기 전 나는 희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는 처음으로 희생이라 이름할 만한 것을 해 본 것 같다. 나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희생의 유무로 나뉘는 큰 사건이다. 앞으로도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온전히 희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 같다. 다만 희생했던 그 시간의 인내와 믿음만치 다른 상황들을 보고 인내하고 이해하며 참아내는 역치가 조금 커지진 않았을까 기대할 뿐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희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아이를 낳기 전 '나'만의 세계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미자: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