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어쨌든 내 책임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고.. etc.

by 메이메이

아이를 기르며 말 그대로 심장이 아래로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울며 밤을 꼬박 새워 그 일이 해결되기를 기도한 적이 3번 있다.




첫째가 돌이 되기 3일 전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와 친정집에 갔다. 남편은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었고 나는 모처럼 친정에 와서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한참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연습하지만 걷지는 못하고 호기심이 폭발하여 이것저것 만져보던 시기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첫째를 친정 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나는 그만 낮잠에 빠져버렸다. 깜빡 잠이 드는가 했는데 갑자기 칼날과도 같은 아이의 울음소리에 본능적으로 잠에서 깼다. 첫째는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로 울고 있었고 친정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며 연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계셨다.


내가 잠에 빠진 사이 친정 엄마가 아이를 돌보고 계셨는데 마침 친정 엄마도 줄곧 아이를 따라다니시다가 잠시 거실에 앉아 계셨다. 친정 아빠가 아이 뒤를 따가 가며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부엌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부엌 바닥에 놓여 있던 밥솥을 잡고 일어서려고 힘을 주는 순간 밥솥의 스팀이 튀어나왔고 우리 아이는 오른손 바닥 전체와 엄지 손가락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충분히 응급처치를 했어야 했는데 그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혼이 나간 나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빨리 가자고 외쳤고 10분 만에 찾아간 화상 전문 병원에서도 열독을 빼야 정확한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있다며 아이 손바닥에 커다란 야구공처럼 솟아오른 물집을 터트리고 아이싱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처치를 해 주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오른손인데.. 손을 못 쓰면 어쩌나? 내가 그 시간에 왜 잤을까?
왜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의 부모에게 아이를 맡겼을까?
낮잠 자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담당의를 만났다. 우리 아이는 심재성 2도 화상을 입었고 수술로 탄 조직을 제거하고 새 살을 이식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상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아이의 손가락이 온전히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그 확신의 답변만을 간절히 바라며 의사 선생님께 재차 물었지만 만약을 담보할 수 없는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는 교과서적 답변만 하셨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자기의 첫 생일날 전신마취를 하고 손바닥에 새 살 이식 수술을 했다. 병원 입원실에서 자그마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초를 켜는데 어찌나 아이에게 미안한지 그 날의 기분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마취를 위해 밤마다 밤 수유를 하며 열 번씩 깨던 아이를 금식시키려고 밤새 아이를 안고 병원을 걸어 다니며 날밤을 새던 것, 아이가 수술 후 마취에서 깰 때 괴로워하며 경련하던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밖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1시간 동안 보며 아이에게 말을 걸던 것, 그 후 화상 치료를 위해 6개월간 매일매일 드레싱 할 때마다 기함을 하며 자지러지는 아이를 몸으로 제압하며 치료하고 재활치료를 하던 시간들은 아이의 손가락 기능이 무사하길 바라는 내 마음, 그 날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간절함,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고였다.




첫째 아이가 이제 막 걸으려고 할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 아이의 허벅지 주름이 비대칭이라며 상급 병원 소견서를 써주며 가서 검사를 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까지 아이의 허벅지 주름이 대칭이 되어야 하는 것도 몰랐을뿐더러 소견서를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가 뭔지 무지했기 때문이다.

소견서에는 '고관절 탈구 의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를 재우고 뒤늦게 고관절 탈구가 무엇인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무엇인지 알게 되자 가슴이 벌렁거리며 다시 한번 눈 앞이 깜깜해져 왔다. 고관절 탈구란 고관절이 정상적으로 물려 있지 않고 어긋나서 잘 치료하지 못하면 아이가 보행에 관해 장애를 가지게 되는 병이었다. 아이가 걸어 다니기 전에 진단한다면 여러 개의 기저귀를 채우거나 보조기를 차는 것으로도 쉽게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걸어 다닌 후에 발견 및 치료하게 된다면 치료의 기간도 늘어날 뿐 아니라 하반신 전체를 깁스를 하거나 보조기를 차고 다녀야 해서 치료방법도 어렵고 효과도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걸어 다니려는 아이에게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리고 깁스를 시켜놓아야 한다니? 아이의 토실토실한 다리살만 이뻐할 줄 알았지 허벅지 주름을 봐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나의 무지가 또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그저 누워만 있는 신생아 때 발견했더라면 훨씬 더 쉽게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오로지 모든 것이 엄마에게 달린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무지가 아이에게 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 날밤 무척 괴로웠다.

밤새 아이의 다리를 붙잡고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같이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았다. 진료를 봐주신 교수님께서는 고관절 탈구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의사 선생님께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자기 판독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 6개월간 추적해서 보자고 하셨다. 나는 깊은 확신을 얻기 위해 또 다른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다른 병원에서는 고관절 탈구끼가 있으니 2개월마다 추적해서 검사하되 2개월간 열심히 아이의 다리를 개구리 다리로 만들고 고관절 모양에 좋은 운동법을 가르쳐 주시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1시간씩 아이를 엎고 다니며 개구리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깁스를 하거나 보조기를 차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다 보니 그것 역시 그저 감사한 하루하루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일 년간의 추적 검사 끝에 고관절 탈구가 아니라는 확답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막 70일쯤에 접어들었을 무렵 어느 날 아침, 아이의 얼굴이 붉은 반점으로 뒤덮였다. 무엇을 잘못 먹었나, 온도가 안 맞았나, 접촉성 피부염인가, 온갖 추측을 하며 병원에 데리고 갔다. 다음 날은 붉은 반점이 온몸으로 퍼져 동전 같은 습진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스테로이드 약을 바르면 가라앉았다가 그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더 심하게 발진이 올라오고 아이는 가려워서 잠을 못 자고 긁어대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토피였다. 남동생이 아토피가 있다. 언제나 몸이 간지러워 긁다 자서 온몸 군데군데 붙어있던 피 딱지며 약과 간지럼으로 인해 약해진 피부들이 생각났다. 밤에 잘 때 장갑을 끼고 자기도 했었지만 여지없이 다음 날이면 피범벅으로 벅벅 긁으며 깨어나던 순간들이 나의 아이에게도 찾아왔다. 무엇인지 알기에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밥도 못 먹는 아기인데 제발 짧은 태열이나 치료되는 습진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밤새 아이의 양손을 대신해 아이 몸을 상처 나지 않게 긁어주며 모든 음식을 먹는 기쁨을 누리는 아이로 크기를, 간지러움 없이 자라기를 매일매일 기도했다.

갑자기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 더 심해지기도 했고 얼굴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에서 발진이 일어났다. 발진 때문에 단백질류 이유식을 하지 못했고 조심조심 발진의 정도를 테스트하며 이유식을 만들어 갔다.

살이 접히는 부분은 항상 긁어서 피가 났다. 먹이는 것과 바르는 것에 극도로 예민해지게 되었고 하루하루 거칠거칠하고 붉은 아이의 몸을 볼수록 애가 탔다.





세 가지 모두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 당황하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슬펐다. 흔히 하는 말로 그 일을 내가 대신 겪을 수만 있다면 대신 겪고 싶을 만큼 아이에게서 그 일들만은 걷어 내고 싶었다. 다행히 화상은 흉터는 있지만 운동 기능에 문제가 없고, 고관절 탈구는 아녔으며, 아토피는 최악의 지점부터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면 누구나 시간을 돌리고 싶을 만큼 부모의 실수로 일어나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과 마주하기도 하고 부모의 무지로 인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의 기회를 잃고 뒤늦게 깨닫기도 하며 어쩔 수 없는 일과 맞서서 그날그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무엇을 나름으로 찾는 일들이 매일 일어날 것이다.

모두에게 그렇고,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나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에서도 아이를 굳건히 지키고 키워내는 다른 부모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분들이 감당했던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운 것임을, 너무나 아픈 것임을, 너무나 어려운 것임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닮고 싶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 가르치고 성장시켜서 한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제 몫을 해 내는 사람으로 온전히 지지해 주며 믿어주며 키우는 것 나는 그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그 어떤 순간이 닦쳐 오더라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부모는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정답이 있는 무엇을 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당장 밥 세끼를 무엇으로 먹일까?부터 생각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잘 자라고 있는지? 등등 정말 생각도 못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꾸준히 돌봐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나도 모르는 일들이,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피하고 싶은 일들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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