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곧 인격인 육아의 세계. 그때 남편과 나의 체력은 바닥이었다.
나는 멋진 남편과 결혼했다. 우리 남편은 성실하고 다정다감했다. 언제나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를 배려해 주었다. 집 안에서는 청소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자기 몫의 집안일을 묵묵히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지 않고 울어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를 잠들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때, 나는 아이를 먹이고 남편은 아이를 안고 걸어 다니며 우리는 전쟁터의 전우처럼 함께 새로 맞는 육아의 세계에 적응해 나갔다.
순간순간 하나도 내 마음과 같지 않았던 아이 돌보기의 하루하루가 쌓여가자 서로를 먼저 위해주던 우리의 모습도 순간의 급박함과 일상의 피로에 좌초되어 조금씩 옅어졌다. 아이가 둘이 되었을 때, 나는 남편의 퇴근 시간 1시간 전부터 시계를 보며 카운트 다운을 했다.
'이제 1시간만 있으면 남편이 올 거야.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함께 놀자고 껌딱지처럼 졸라대는 첫째나, 시간 맞춰 먹이고 걸음마를 잡아줘야 하는 둘째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질러진 집안이나 셋 중에 무엇 하나라도 함께 나누어 할 수 있는 유일한 손이 남편이었기에 나는 목이 빠져라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오고 나면 우리 집의 저녁시간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각자 한 명의 아이를 맡아 케어했고, 내가 저녁을 차리고 뒷정리를 할 때면 남편은 아이와 놀아주고 함께 두 아이를 씻기고 정신없이 돌아갔다. 나는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를 마치고 얼른 모두가 잠든 밤이 되기를 그리고 나도 그 밤 속에 빨려 가기를 고대했다. 그래서 남편이 오면 '이것 좀 해줄래요? 저것 좀 해줄래요?' 하며 내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빨리 각자가 맡은 집안일과 육아를 끝내주길 청했다.
남편이 오는 시간은 언제나 일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5분, 10분이 지나도 남편이 퇴근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 중이었다. 남편은 평소보다 30분쯤 늦게 집에 도착했다. 나는 고작 남편이 30분쯤 늦게 퇴근했다고 그 날 남편과 싸웠다. 남편은 나에게 '악덕 기업주'같다고 말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해 직장 퇴근 후 집으로 육아 출근을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왔는데 다른 사람 전화받는다고 늦은 30분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속상해했다. 퇴근해서 온 사람 잠시 쉬지도 못하게 이것저것 할 일을 지시하는 내가 악덕 기업주 같다고 말했다.
기가 찼다. 가끔씩 깜깜한 밤, 티브이 리모컨을 들 힘도 없이 그저 침대로 꺼지고 싶은 날에도 안방에서 뻗어 자는 두 아들과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젖병을 삶고, 빨래를 널고, 먹고 어질러진 그릇들의 설거지를 혼자 하며 하루의 끝을 아직도 맺지 못해 이리저리 서성이는 나를 볼 때면 나는 이 집의 일해주는 사람인가? 싶어 화가 났던 수 없는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 던져버리고 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이 버젓이 '니 일이다!'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널브러진 엉망이 된 집안을 보며 '그렇게 잠들어버려서 좋겠다. 나도 잠이 안 와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자고 있는 남편에게 이를 앙다물고 속으로 외쳤던 나날들. 그저 나는 버거운 저녁 시간을 빨리 해치우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에 최소한의 쉼을 일찍 얻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나를 악덕 기업주에 비교하며 몰아세우는 남편이 못내 섭섭했다.
'많이 힘들지, 우리 가족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지. 내가 다 알아요. ' 내가 알던 남편은 이렇게 말해줄 것 같았는데 '악덕 기업주라니!'
그 시절 나는 휴일에 피곤에 치여 몸을 못 가누고 소파에 누워만 있는 남편이, 몸이 약해 자주 병치레를 하는 남편이 짜증이 났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내가 더 아프고 눕고 싶어도 누울 수도 없이 '내가' 해야만 했던 일들이 산재해 있던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희생을 알아주거나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몰아치는 못된 아내로 대하는 남편에게 나는 온갖 짜증을 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남편도 그 시절 참 고달팠다. 회사에서는 에너지를 쏟아 일을 하고 왔는데 집에서는 눈이 벌겋게 기다리는 아내가 이것저것을 시켜대며 그렇게 겨우겨우 아이를 키워내야 했으니 말이다. 늘 피곤한 아내를 위해서 아침밥은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그렇게 회사와 집에서 동분서주하게 뛰어다니던 남편은 결국 메니에르와 족저근막염이라는 병을 얻어 뻗어버렸다. 남편이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자 겁이 났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니 남편 없이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또 겁이 났다.
육아의 세계에서 체력은 곧 인격이다. 그 시절 남편과 나는 체력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인격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힘듦과 열심을 인정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수고를 고맙게 여겨달라고 서로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좀처럼 싸우지 않았던 우리였는데 그 시절 우리는 꽤 언성을 높이고 서러워하며 눈물로 고함으로 싸웠다. 그리고 냉랭하고 섭섭하고 화가 났던 시간들을 지나고 지나서 결국은 알게 되었다. 둘 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었다는 것을. 처음 되어보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헌신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다. 먹고 자고 입는 것도 제대로 안 되던 그때, 너무나 많은 것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가정에 헌신했지만 그 헌신에 대한 애정과 인정을 그 시절 서로에게서 받기엔 우리 둘 다 너무나 지쳐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 시절이 조금 지났다고 생각되자마자 그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전우,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수고와 어려움이 이제야 조금씩 수긍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의 어려움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보이지도 않았던 내 짝의 아픔이 말이다. 덩달아 그때가 지나자 나도 남편으로부터 나의 수고와 열심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리 똑같았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이렇게 육아를 함께 해 가는 괜찮은 남편과 결혼해도 지지고 볶고 하게 되는데 만약 육아를 함께 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면?
이런 상상이 될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힘주어 말한다.
" 여보,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아마 이혼했을 것 같아요. "
그러니 아이를 키우다가 왕자님, 공주님 같았던 나의 반쪽이 불현듯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괜찮다. 이때에는 누구나 다 그렇다. 그리고 이 시기를 함께 손잡고 헤쳐나간다면 분명하다! 머지않아 왕자님과 공주님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체력이 바닥이 될 때 가끔 우리는 인격이 바닥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지 :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