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와의 일상이 생각난다.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쯤이었을까. 할 일 없는 빈둥대는 시간이면 으레 나는 엄마 옆에 살포시 누웠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니 방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저 엄마 옆에 누워있고 싶은 나는 " 엄마랑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를 베고 눕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엄마 옆에 가만히만 누워있을게. " 그랬고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 네가 가만히만 있어도 엄마는 너를 보호해야 할 것 같고, 널 위해 꼭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니 방으로 가라. 엄마 쉬게. " 이리 말씀하셨다. 나는 "치,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 도대체 뭐가 어때서 쫓아내는 거야?" 라며 입을 삐쭉거리고는 내 방으로 갔던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껌딱지를 낳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나의 일상이 떠오르며 내 자식의 껌딱지 기질이 아마도 내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작은 의구심을 피어난다. 어릴 적 잠자리에 들 때 엄마에게 늘 손을 달라고 했던 내 모습, 엄마 손을 잡고 자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제야 비로소 편안히 잘 수 있었던 내가 껌딱지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주양육자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한 몸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아이의 먹고 자고 노는 것이 오직 주양육자에게 달렸으니 아이가 주양육자에게 큰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아이가 두 돌이 되어 불안하지 않게 걷게 되기까지 아이 곁은 사방팔방 위험 천지이다. 아이가 자라며 폭발적으로 자람과 동시에 아이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도 커지고 경험에 대한 욕구도 늘어난다. 엄마는 그 욕구의 분출을 아이의 안전이 보장되는 테두리 안에서 허락하며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을 탐색하도록 하루 종일 눈에서 피나도록 레이더를 돌려야 한다.
잠시라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면 아이는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니 정말로 아이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부모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모유수유를 했고 아이가 수면에 들어가는 중요한 고리는 내 가슴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나를 통해 먹고 나를 통해 잤다. 그러니 당연히 나에 대한 애착이 심해져 정말로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큰 맘먹고 집 앞에 산책을 나가 동네 언니라도 만나 잠시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돌밖에 안 된 것이 뭐가 그리 불편한지 동네가 떠나가라 울며 내 만남을 파투 내었다. 아이와 혼자만 집에 있는 것이 힘들어 또래를 키우는 아줌마들을 집에 초대하면 또래와 어울리기는커녕 내 바짓가랑이만 잡고 늘어져 나만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내가 손님들과 잠시 한 마디라도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참 낯을 가릴 때는 비단 남뿐만이 아니라 외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아빠가 자기를 만지는 것도 싫어해서 오직 엄마, 엄마, 엄마만 찾아 나는 이 아이를 안고 무엇이든 해야 했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포기했다.
낯선 사람과 환경을 싫어하고 나에게만 애착을 느끼는 아이의 성향 덕에 나는 다른 사람 집에 놀러 가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해졌고 나중에는 집에 있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아이와 놀아야 했으니 세수를 하고도 로션 한번 제대로 바를 수 없었고 내 옷은 늘 후줄근한 수유티와 무릎 나온 바지였다. 아이가 깨어있을 땐 씻지도 먹지도 못해 안 씻고 대충 먹었고, 아이가 낮잠에라도 들면 그제야 밀린 설거지를 하며 김에 밥을 싸 한 두 덩이 우적우적 씹어대고 있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놀이 시간이 많아졌는데 우리 아이는 나와 놀았다. 장난감이나 친구, 자연물과 노는 것이 아니라 나와 놀았다. 우리 아이는 태생적으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참 말을 배울 무렵에는 나에게 항상 이야기를 해 달라고 그랬다. 그때쯤 아이는 빨간색을 집착적으로 좋아해서 빨강이라는 별명을 아이에게 붙여주었는데 아이는 빨강이의 일상 이야기 듣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빨강이에 대입된 우리 아이의 일상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어야 했다.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았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아이가 나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가끔 깜깜한 밤에 집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그 짧은 찰나, 나는 자유를 느끼며 그 혼자만의 밤공기를 들이키며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아이가 밤잠에 들고나서 혼자 따뜻한 물에 목욕하는 시간, 혼자 마트에 잠시 장 보러 갔다 오는 시간, 가끔 남편이 아이를 봐주겠다고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 했던 시간은 아이에게 메여있던 그 시절 내게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야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내게 하신 말씀을 이해한다. 아마도 나도 엄마 껌딱지였나 보다. 엄마도 나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다 내어주고는 잠시 엄마 혼자만의 재충전의 시간이 그리도 필요하셨나 보다. 내가 잠시 쓰레기 버리러 가는 그 순간 느꼈던 오롯이 '혼자인 그 순간의 행복'을 엄마도 간절히 원하셨던 것일 게다.
왜 엄마들이 '자유부인'이라는 말에 그리 열광하며 설레어하는지, 용변을 보고 오는 그 순간을 못 기다려 화장실 문 앞에서 목놓아 울고 있는 아이를 덥석 안고 변기에 앉아야 했던 많은 날이 지나고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나도 그 자유부인을 무지무지 기다린다는 사실도.
그러니 그럴 수 있다고 염두에 두라.
엄마가 된다는 것은 화장실도 아이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자유부인이 되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