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나.
어느 날, 나를 제외한 우리 집 사람들 3명(남편, 아들 둘)이 곤히 잠든 모습을 보고 나는 첫 아이를 낳고 황망했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혼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지 않는 아이를 안고 젖을 물렸다 내 마음을 속삭였다, 노래를 부르다, 안고 토닥이다 삼십 분 남짓 혼자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지쳐갈 때쯤 스르륵 잠드는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 아~ 정말 힘들다. 나도 자고 싶다~"라고 뇌까렸던 그날 밤의 내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그냥 대충 휘리릭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것이 아이 기르기라고 아기 낳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육아에 관해 이야기해 주면 조금 더 마음을 단단히 먹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가장 멘붕 되었던 때를 떠올리며 글의 목차를 휘갈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를 기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먼저 물어봐주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이런 멘붕 되었던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살고 있으면서 뭔 소리야?' 할까 봐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 글을 쓰며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기를 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고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결의 어려움에서는 다소 빠져나왔다는 것을 안도하며 그리고 감사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절대로 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은 내 일생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로 인해 훨씬 행복하고 훨씬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귀하다. 너무나 소중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 어찌 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못 자고, 못 먹고, 못 입고, 나를 던져가며 지켜낸 아이인데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세상을 다시 산다. 나의 1살, 2살, 3살은 전혀 기억에 나지 않지만 나는 아이 덕분에 다시금 나를, 인간을,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아, 한 살이 되면 걷는구나. 내가 걸었던 날 우리 엄마 아빠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두 살이 되어 너와 처음으로 의사소통하던 날, 나의 두 살은 기억도 안 나는데 나는 너의 두 살을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대고, 네가 기억하지 못할 네두 살의 순간을 내가 대신 기억하여 전해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는 무엇을 해 주면 좋을까?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네 살쯤 되었으면 이 정도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역량 안에서 네 살이 받아들일 수 있음직한 경험을 살뜰히 찾아내어 네가 그 경험 속에서 자라기를, 행복해하기를 바란다. 내가 혼자였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수많은 장소, 내가 혼자였더라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수많은 물건들을 다 내 아이를 위해 선택하고 함께 경험한다. 이렇게 아이들 덕분에 내가 세상을 다시 살아간다. 처음부터 다시 말이다.
예순이 넘으신 친정엄마가 가끔씩 첫애였던 내가 국민학교 입학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기분 좋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씩 헤아려져서 코 끝이 함께 짠해온다. '맞아.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키웠나 봐. 내가 기억 못 하는 그 시절 엄마가 대신 기억하시면서 그 사랑으로 아직까지 나를 귀하다 하시네.' 싶다.
기대된다.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꾸려갈 미래의 인생이.
남편에게는 아이 키울 적 내 고달팠던 시간을 구비구비 알아달라고 때로 떼를 쓸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을 그저 묵묵히 하고 있다는 듯 그 속에서 부족한 내 모습이 내내 한구석 미안하고 혹여나 힘들었던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이 이상한 두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 아이들이 있어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말할 수 있다.
이미자: 픽사베이
나는 천방지축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축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