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비우기 후
이사 후 넓다 생각했던 집에서도 비워야겠다는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공간이 주는 쾌적함은 만족스러웠지만,
나는 더, 더 비우고 싶었다.
매일 몇 개, 많게는 하루에 20리터짜리 종량제봉투 2개를 꽉 채워 비워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더 할 수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정리수납', '미니멀라이프'를 검색해 관련 유튜브와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리업체 전문가의 것도, 미니멀라이프로 유명한 사람의 것도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우리 집에 적용할 것이 있을까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느 날은 '하루 1개 비우기' 실천을 얘기하는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우리 집 물건도 하나씩 비웠다.
(나는 그 책을 이틀 안에 다 읽었고, 그 이틀 안에 물건들을 비웠다.)
이사 전에 많이 정리해서 별로 비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순 내 착각이었다.
옷장, 옷 서랍에서는 여전히 사이즈 미련으로 비우지 못했던 옷들이 내 손에 걸려 나왔고, 몇 년째 쓰지 않은 소주잔 네 개가 상부장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어떻게든 쓰겠다며 보관했던 내 피부 톤과 맞지 않는 팩트 리필을 비웠고, 가죽 표지가 삭아 자리를 옮길 때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졌던 남편의 대학 졸업앨범을 비웠다.
그렇게 열심히 비워내는 시간 동안,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이 집에 있는 물건 중 내 눈을 벗어나는 물건은 없게 하자. 어딨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물건은 우리 가족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다.'
폭풍 같았던 비워내기 후, 우리 집은 유지기를 보내고 있다.
요즘도 종종 비워낼 물건이 하나씩 나오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정리수납 책 1권, 미니멀라이프 책 1권을 빌려왔다.
예전처럼 책을 읽으면서 얼른 실천하고 싶어 엉덩이가 움찔움찔하진 않지만, 이제는 정리된 공간에서 지난날 내가 겪었던 고민과 경험들을 떠올리며 책에 몰입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비워내기를 시작했던 지난날.
고군분투했던 내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