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을 비우다
어릴 적 나는 글쓰기가 좋았다.
주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일기장, 수첩, 원고지, 도화지에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그림도 노래도 실력이 없다는 걸 알고 난 뒤, 난 더더욱 열심히 글을 썼다.
그땐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독후감도 열심히, 일기도 열심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썼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부모님의 칭찬조차 한마디 듣지 못해도 나는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취미로 쓴 글 중엔 동화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조악스러운 전개였어도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다.
아마 그때의 가난함, 그 안의 내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바라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어린 내가 짠하다.
여하튼,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꼭 1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결과, 글과 관련된 상을 여러 번 받았다.
다독상, 과학글짓기 대회, 백일장, 도내 창작 시 대회 등등..
장려상, 동상, 우수상, 입선.. 원하던 1등은 못했지만, 나름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졌다.
하지만 나의 화려했던 과거는 몇 달 전 마지막으로 보고 다 비웠다.
상장, 임명장, 졸업앨범, 성적표, 대학교 졸업장까지 애지중지 모아 왔던 나는 최근 몇 년간 그것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마트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과감하게 처분하였다.
사진을 찍어놔도 굳이 찾아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중에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물으면
상 받은 적 있다 대답해 줄 수는 있지만, 증거를 요구하면 보여줄 게 없다.
그렇지만 그 많은 성장의 흔적을 비우고 내 마음엔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는다.
결국 그것들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함을.
나의 노력으로 빛났던 그 시절은, 내 마음속에 담아두면 그것으로 충분함을 알기에.
가난 속에 빛나던 나의 꿈들아,
이젠 추억이란 이름표로 남아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