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 그리고 '숏컷'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라 외칠 수 있을까. ‘김일성 만세’라 외쳐도 되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김일성 만세’는 틀린 말일까. 1960년 10월, 시인 김수영은 답한다.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외쳐도 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고. ‘김일성 만세’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김일성의 손자가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고, 피란민의 아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김일성 만세’라는 외침이 ‘숏컷’이라는 머리스타일로 바뀌었을 뿐, 변한 건 없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둘러싼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20대 남성의 대변인’으로 칭한다. 모든 현상의 원인을 ‘20대 남성의 분노’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그는, 분노의 근원을 페미니즘에서 찾는다. 해결책으로는 반페미니즘을 제시한다. 20대 남성들의 대변인이었던 이준석이, 이젠 20대 남성들의 메시아가 된 것이다. 지지를 넘어 추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안산 선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들은 이를 입증한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이준석의 말, 이를 믿는 20대 남성들, 선수에게 가해진 폭력과 폭언… 한국 사회는 60년 전, ‘김일성 만세’라 외치면 돌을 맞던 현실로부터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혐오와 맹신의 사회에 갇혀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이준석과 20대 남성들은 누구에게 분개하고 있는가. 왕궁의 음탕에 분개하고 있는가. 50원짜리 갈비에 분개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분개하고 있는가. 개인의 머리스타일에 분개하고 있는가.
이준석과 20대 남성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모래보다 작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가. 나무만큼 큰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가. ‘남과 같은 나’로 생각하고 있는가.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가.
확실한 건, 평생동안 자유와 평등을 갈구했던 김수영이 바랐던 세상은, 아직 오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