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내가 아내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by 최정환


공포에 질린 아내가 소리 질렀다. 새벽 2시 모두가 잠든 적막한 밤을 가르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두 손 모아 입을 가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내가 덜덜 대며 손짓했다. 깊은 잠에 취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아내가 가리킨 방향을 주시했다.


작은 머리에 긴 더듬이, 커피색 망토를 입은 녀석의 정체는 바로 왕 바퀴벌레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몸길이였으니 잠결에 기겁할 만도 했겠다. 화들짝 놀란 가슴을 잠시 쓸어내리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겹겹이 쌓아 녀석을 잡기 위해 다가섰다. 재빨리 녀석의 몸을 짓누르자 빠직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내는 벌레가 무섭단다. 밤낮을 불문하고 우연히 스치기라도 하면, 아연실색하며 방방 뛰어댄다. 나로 치자면 생쥐를 보았을 때가 그렇다. 온몸이 소름으로 뒤덮인 채, 가슴속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면 본능적으로 녀석의 반대방향으로 다급히 몸을 숨기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40대 중반.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가끔은 엉뚱한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네 가지 고통을 일컬어 ‘생로병사’라 했다. 사람의 삶은 유한하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뿐, 누구나 한 번은 생의 끝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엉뚱한 몽상 하나. 내게 죽음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아내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평생 경험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와의 사별이란다. 한평생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삶에 반려자를 떠나보내는 마음이야 오직 할까?


내 이기적인 마음은 아내보다 먼저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것 같다. 혹여나 아내가 먼저 떠나간다면 그 이별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까. 삶에 마지막 끝자락을 지켜주는 반려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숨을 멈추는 것 또한 행복이라 여긴다.


엉뚱한 생각이다. 아직은 먼 훗날에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내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다른 건 몰라도 제일 무서운 바퀴벌레를 잘 잡아내는 남편으로 아내를 지켜 주리라.

단 하루라도 좋다. 내가 아내보다 오래 살아야, 그래야 행복할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