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의 조건

미인의 조건

by 최정환

나는 당신의 지금 그대로가 좋다. 저녁 무렵 아내가 살포시 다가와 건넨 한마디가 내 귀에 날아들었다. 나 수술해. 뜬금없는 말에 가슴이 철렁거리고, 쿵쾅쿵쾅 심장은 요동쳤다. 멀쩡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이윽고 아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 쌍꺼풀 수술하려고. 아내는 갑자기 성형외과 의사로 빙의가 된 듯 의학전문용어를 쏟아냈다. 눈 처짐의 주요 원인과 방치 시 생기는 문제점. 40대와 노년의 신체적 수술 차이는 탄력성과 회복력의 차이라며 지금이 알맞은 때인 이유를 나열했다.

잠시 혼이 나간 듯 멍하니 바라보다 딱히 뭐라 할 말을 잃은 채. “나는 지금이 더 좋은데”라며 충분히 예쁘다는 말로 아내의 달궈진 성형욕구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움이라 할 수도 있겠다. 드라마나 방송에서 미를 과시하는 여인들의 삶과 일상이 그러하듯 말이다. 수없이 많은 얼굴을 마주하며 미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미인의 기준이 무엇 이길래. 문득 그 옛날 미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중국 송나라 때 시작된 전족. 작은 발을 얻으려면 한 항아리의 눈물을 흘려야 할 만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단다. 여자 아이가 세 살에서 다섯 살 무렵이면 엄지 외 발가락을 발바닥에 붙이고 단단히 동여맸다. 약 십 센티미터의 신발을 신었다니. 오그라든 근육과 부러진 뼈. 그렇게 발끝은 변형되고 손상됐다. 발이 작을수록 아름다운 여인의 여성상으로 인정되던 전족의 전통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청나라 시대에는 여인들의 긴 손톱이 고귀한 신분과 부를 상징했다. 수년 동안이나 자르지 않았으니 그 길이가 오직 했을까. 시대에 따라 눈썹의 모양과 색깔도 변화했다. 여인들의 청록색 눈썹은 고귀함을, 붉은 눈썹을 칠한 병사들은 강인함을 상징했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동서양 모두가 다르지 않았나 보다.

르네상스 시대 여인들은 이마가 넓을수록 미인이었다. 이마 주변 잔털뿐만 아니라 눈썹과 속눈썹까지 모두 뽑았다 하니. 그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할 수밖에.

17세기 신사에 나라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창백한 피부는 귀족의 상징이었다. 하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납과 식초가 섞인 분을 바르고

젊은 여성들은 쇄골 아래 하얀 피부를 드러내려 종종 어깨나 가슴에 청색 연필로 정맥을 그렸단다.

빅토리아 시대의 아름다움은 더욱 암울했다. 비정상적으로 가는 허리와 창백한 안색, 열에 휩싸인 듯한 눈과 붉은 입술. 마치 환자와 다름없는 모습이 당시의 이상적인 미녀 상이었단다.

상류계급 여성들을 괴롭혔던 코르셋은 호흡뿐만 아니라 장기의 모양까지 변형시킬 만큼 졸라맸다. 하얀 피부를 얻기 위해 쥐약에 사용되던 비소를 사용하거나 이를 녹인 물로 목욕을 하기도 했다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던 미인의 삶이 애처로울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도 아름다움의 욕구는 변치 않았다.

나는 지금 그대로의 아내가 좋다. 성형 후 새로운 미인이 된다 한들.

혹여나 모르는 이와 사는 느낌이 편하지 않을 듯싶다.

아름다움은 보임이 아닌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리라.

꽃이 시들어도 꽃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간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미인의 기준이 바뀐다 해도

언제나 그랬듯 나는 지금 그대로 당신의 모습이 제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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