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

잠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

by 최정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일행이 없었더라면 진작 택시기사 께 다른 채널로 돌려 달라 부탁드렸을 텐데. 며칠 전 안타까운 사연 속 아이는 긴 시간 여행용 가방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그 아이에 목숨을 앗아간 이는 다름 아닌 부모였다. 5년 간 132명의 아이가 짧은 생을 다하고, 연 2만 건이 넘는 아동학대와 폭력이 반복되는 일상은 영화가 아닌 우리 삶의 현실이다.


아동폭력의 이야기가 귓속에 스며들 때면, 내 아픈 기억이 틈새를 비집고 새어나온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무렵. 평소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절대 잘못했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아이와 맞서고 있을 때였다. 마음에 평정심을 되찾겠다며 긴 호흡을 거듭하던 나에 다짐은 오래지 않아 앙상한 바닥을 드러냈다. 마음에 분노 게이지가 서서히 정점에 다다를 무렵. 아이는 벌써 한 시간째 징징거리며, 울어댔다.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철부지 아이에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은 급기야 화약으로 가득 찬 나에 심기를 건드려 폭발하게 했다. 아이 행동이 부모에 대한 도전이자 권위를 넘어서는 일이라 여겼던 건지. 호모 사피엔스 조상의 DNA 유전자를 지닌 나는, 순간 터져 나온 동물적 반응으로 이성을 상실했다. 방안 구석에서 심통 부리던 아이를 향해 큰소리가 터져 나오고, 이내 아빠의 힘을 앞세워 순식간에 불편한 상황은 제압돼 버렸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건, 뇌리에 깊이 박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이의 눈빛이다.

아이에 눈 속에는 나와 다른 또 다른 분노가 있었다. 불공평한 힘에 크기와 현실에 눌려 자신의 의지를 굽히고 복종했던 억울함에 눈빛.


늘 뒤돌아 후회하는 것은 그때는 미처 잘 몰랐었다는 말 한마디 일뿐.

부모의 역할을 잘 몰랐고, 아이를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던 그 시절. 그 눈빛을 마주한 뒤로는 힘으로 굴복시키며 가장의 권위를 유지하는 행동을 멀리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 자기만의 유리구슬을 갖고 있단다. 뒤늦게 아이에 마음속에도 유리구슬이 있음을 깨달았다. 구슬에 물감을 덧칠하면 자연스레 채색이 될 줄로만 알았던 그때. 잠시 머물러 들여다보면 조금 전 덧칠의 흔적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서서히 투명했던 본래의 빛과 띠를 드러낸다. 구슬 안에 배어 있는 띠는 영원히 변치 않는 온전함을 담은 정체성과 본질의 그것. 바로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남극 황제펭귄 가족의 삶을 엿보았다. 혹한 추위와 극한의 상황을 견디며 새끼를 지켜내는 펭귄의 삶은 경이로웠다. 그 무엇도 얼어붙게 만드는 남극의 무서운 추위도 새 생명을 지켜내려는 부부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진 못했다. 알을 품어내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보듬어 주는 삶.


가족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부모의 몸을 빌어 생명의 몸을 받게 해 준 가족의 인연은

나에 소유가 아닌 잠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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