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생 김미해
경력단절로 우울감이 찾아온 아내에게 탈출구가 필요했다. 아이를 낳기 전 꿈꿨던 커리어우먼의 삶은 사라지고, 매일 반복된 육아는 아내를 무기력하게 했다.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돌보고, 밀린 빨래와 집안 청소,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일뿐. 언제부턴가 삶에 안식 처자 울타리인 집은 감옥이 됐다.
82년생 김지영, 영화 속 아내의 이야기를 보며 연애시절이 떠올랐다. “이쁜이 미해”는 아내의 애칭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핸드폰에는 애칭 그대로다. 애칭을 부르면 연애시절 사랑에 기억이 떠오른다. 에어로빅 강사인 아내는 건강 미인이다. 탄탄한 몸매와 운동으로 다져진 꿀벅지,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시원시원한 매력을 풍겼다. 내게는 세상을 구원하는 원더우먼처럼 빛났다.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두 아이에 출산과 양육으로 5년이 흘렀다. 천사를 보듯 아이를 돌보는 행복보다 거듭된 육아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일상에 지쳐 갔다. 아내의 기분은 롤러코스터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아내의 감정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때로는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것이 슬픔과 아픔인지. 무엇보다 아내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다.
시간의 양탄자에 올라 아이가 자라고, 부부의 마음도 자랐다. 모래 위에 쓴 글자가 바람에 흩날리듯 가슴에 새긴 아픔도 모래 알갱이에 담아 훌훌 흘려보냈다.
따뜻한 봄바람과 푸른 하늘을 비치는 햇살 좋은 날. 이른 아침부터 회사 출근과 학교 등교, 어린이집 등원으로 가족이 분주하다. 눈 깜짝할 사이 각자의 삶으로 사라지면 지금부터가 아내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에어로빅과 육아를 함께하는 ‘76년생 김미해’ 5년 차 워킹맘은 행복의 향기를 되찾았다. 아내의 행복은 벚꽃이 활짝 핀 꽃길을 만들고, 봄바람을 타듯 향기를 내뿜는다. 꽃향기로 가득한 아내에 행복은 이내 가족에 향기를 더한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가끔 기억해?
요즘 그때가 자꾸 생각나.
난 예뻤고. 당신은 멋졌고
우리, 아름다웠잖아
나. 아직 예뻐?
<내 아내의 모든 것> 영화의 대사처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어렴풋 떠올랐다. 내가 만약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주리라.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76년생 김미해’ 아내가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