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걸음은 세 가지다.
미래는 머뭇거리며 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프리드리히 쉴러-
35년 2개월. 앞으로 내게 주어진 남은 삶의 시간이다. 오랜 가뭄의 시간을 걸어온 뒤라 그랬을까 아침부터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방울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나무와 꽃에 새 생명을 불어넣듯 내 마음을 촉촉이 축였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꽃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처럼 내 생일을 축하하는 말들이 훨훨 나비가 되어 마음속 꽃밭으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35년 2개월의 내게 주어진 기대여명 숫자를 마주하는 순간 컨설턴트의 잠재된 DNA(유전자)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한국인의 하루 시간 활용 통계를 살폈다. 평소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하루 수면은, TV는 얼마나 보는지, 개인 여가 시간은 어떠한지를 살피고, 이렇게 내 인생에서 일상을 빼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남는다.
46세인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일하는 시간 10년 5개월, 잠자는 시간 11년 1개월, 식사시간 2년 3개월, 외모관리 2년 9개월, TV와 미디어기기 시청 3년 2개월, 그 외 혼자만의 시간 4년 2개월을 빼면 앞으로 남는 시간은 12개월. 그 시간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고작 365일만이 남은 삶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잠시 머물러 지나온 삶을 곰곰 되씹었다. 불나방처럼 빛을 따라 성공을 꿈꾸었던 지난날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어디에도 가족과 함께 나누었던 작은 행복의 흔적과 채취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위해 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던 지난날을 되돌릴 수는 없을 터.
어디선가 마주한 짧은 시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시집 『순간의 꽃』을 보며 지나온 삶을 돌아봤다.
지금껏 바쁜 일상 속 내일을 향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제는 쥐고 있던 노를 잠시 놓으련다.
노만 저으며 살기엔
인생은 짧고, 돌아볼 것은 많다.
어쩌면 인생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며 채워가는 삶이 아닐지.
내가 원하는 건 넓은 인생의 강물을 가로지르는 삶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겠다.
나와 아이들은 노를 젓고, 아내가 뱃머리를 움직이며 강물과 하나 되는 꿈
남은 35년 시간의 걸음은 그렇게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