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 윈징게르, 민음사, 2023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는 프랑스 콜마르에서 태어나 알자스 산지에 정착했다. ‘방부아’에서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자전적인 소설이라 여겨진다.
-소피
소피와 그리그는 높이가 낮고 자그마한 목골 연와조 건물에 살고 있다. 초원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방치되어 있는 건물을 수리해 거주지로 삼았다. 이곳에서 압도적인 침묵과 드넓은 밤을 즐기며 살게 된다.
둘은 유치원에 다니던 다섯 살 때 만났다.
‘분명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감동과 살아남으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원초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 진하면서도 미묘하며, 가벼우면서도 과묵한 충실함을 영원히 경험하려는 욕망, 최소한의 타자성도 없이 나를 둘러싼 환희에 찬 것이나 전율하는 것 안에 거하려는 욕망 말이다.’
열정적이고 자연을 사랑하는 소피는 자연을 모태 삼아 자연을 겁내지도 해치지도 않으며 살아간다. 이웃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소설가와의 대담에 초청받았다. 소피는 리옹에서 발언할 내용에 대해 생각한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숲과 함께 왔고 짐승들을 대변할 거라는 각오를 한다.
-그리그
‘식사를 해치우고 내빼는 것, 그것이 그가 필요로 하는 전부였다’
‘부아바니’에 있는 그들의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고 그리그의 방은 2층이다. 마치 우주캡슐처럼 여겨지는 이곳은 사방 벽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그는 하루에 소설 한 권으로도 부족할 만큼 책을 많이 읽는다.
2층에서 잠을 자던 그리그는 갑자기 소피와 함께 자야겠다고 제안한다. 키우는 개 ‘예스’도 함께 한다. 인간 두 명과 개 한 마리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다. 각자 자던 존재들이 함께 자기 시작한다.
‘그는 늙어가는 아이였다. 아이처럼 소란을 피우는 노인이었다’.
그리그는 방 정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소피가 집을 비운 사이 맘껏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런 그리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늙어가는 아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세속에 찌들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믿으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을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소피와 같은 영혼의 짝이 있으니 그리그는 얼마나 행복할까?
-예스
소피는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흘리며 나타난 개 ‘예스’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예스는 ‘난 너의 곁을 지키는 수호천사야’라고 말하는 듯 소피의 옆자리를 지킨다. 소파에 앉아 서류 더미 위에 턱을 올려놓고 소피가 글 쓰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다 책 말미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둘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예스’가 갑자기 사라진다. 이렇게 끝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책은 예스로 시작해 예스로 끝나는 책인 셈이다.
‘예스가 사라진 건 그다음 날이다. 내가 한눈을 팔았던가? 잠시 잠이 들었던가? 돌아누웠던가? 나는 예스를 불렀다. 그리고 온 사방으로 예스를 찾아다녔다. 예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연
소피가 본 자연의 모습 중 충격적인 몇 장면을 옮겨본다.
‘땅바닥에서 개미를 골라내는 딱따구리를 덮칠 때, 고양이는 그 위로 뛰어올라 딱따구리를 포박한 후 발톱으로 움켜쥐고 새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만 먹어 치운 다음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 총 네 개의 발가락이 달린 딱따구리의 검붉은 발을 먹는다.’
‘아침에 초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일종의 정신적 이명이, 아니, 꿀벌이 붕붕대는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작렬하는 소음. 세상의 흥분이 작렬하는 소리.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다’.
작가는 자연, 동물과 남편을 사랑하며 존재들의 어느 부분도 해치지 않고 귀하게 대한다.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셋은 함께 의지하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서로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늙어가며 몸은 말을 안 듣지만 자유와 자연을 즐긴다.
그 어느 건물주도, 유명인도 누리지 못한 마음의 부를 누린 작가의 삶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느 것을 소유한들 이렇게 풍요롭게 벅찰까? 도시의 소음 속에 부유하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요 없는 많은 것들을 만들고 쌓아놓고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동안 깊은 산 속 목조건물이 떠올랐다. 주인을 따라다니는 아픔을 지닌 귀여운 개 한 마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늘 함께 했던 ‘예스’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소피가 기꺼이 내어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할 예스가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걸까? 부디 다시 소피의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에도 꿋꿋이 글을 쓴다는 소피의 마지막 말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