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der than Bombs
종군사진작가 이사벨이 갑작스런 고통사고로 죽는다.
이사벨의 남편 진은 아내의 유고작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아내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것을 밝히겠다는 종군기자도 만난다. 엄마의 기일을 맞아 멀리서 온 큰 아들 조나.
둘째 아들 콘래드는 심한 사춘기 때문인지, 엄마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라이딩 하러 온 아빠에게 늘 거짓말을 한다. 미행하듯 따라다니는 아빠를 알게 되면서는 더욱 반항적이 되어간다.
예전에 배우였던 진은 이제 교사생활을 한다. 동료 교사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하필 그녀는 콘래드를 가르치게 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아빠는 말한다.
“이제 선생님 안 만나. 아빠가 실수했다. 미안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콘래드에게 아빠는 외친다. “모든 일에 의견이 같을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너와 내가 대화할 수 있다는 거야”.
-콘래드
아빠와 선생님의 사이를 눈치챈 콘래드는 시험지를 걷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는다. 그 일로 상담을 받는 와중에도 반성하는 눈치는 없다. 아이의 마음에 쌓여가는 상실감과 반항심. 늘 혼자 다니고 집에서는 게임만 한다.
오랜만에 온 형에게 자신의 일기를 보여준다. 내용은 독특하다. 각 지역별 시체의 부패속도, 좋아하는 영상의 종류, 어디에서나 자기를 쫓는 아빠에 대해 썼다. 9살 때 총알을 삼켰는데 지금도 뱃속에 있을 거라는 황당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런 내용을 어느 날 짝사랑하는 여자아이 집에 던져 놓고 온다. 아빠가 출연했던 예전 드라마를 보며 가끔 웃기도 한다.
파티에서 만난 여자애는 ‘정말 너가 쓴거야?’ 라며 믿지 않는 눈치다. 밤새도록 둘이 걸어 집에 도착한다. 밥을 먹자는 여자애는 정말 콘래드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콘래드는 그 순간을 즐긴다.
-이사벨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비통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피사체를 향해 열려있고 싶다’. 전쟁상황 속 피해자의 모습, 장례식을 카메라에 담는다. 남편은 이사벨을 공항에 데려다주며 고백한다. “당신이 떠날 때마다 안 돌아올 것 같아”.
진이 만난 아내의 동료는 담담하게 이사벨을 대변해준다.
“비행기를 4번 이상 갈아타며 신념과 열정을 따르는 거지.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분열되는거야”.
이사벨은 집에 돌아오면 가족에게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기분이 든다.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다. 식구들이 자신을 원치 않는 건 아니지만 필요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느낀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한 거라는 내용이 담긴 신문을 아들 콘래드가 본다. 아빠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나에게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둘은 눈물을 흘리며 안는다.
큰 아들 조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진, 동생도 함께 간다.
무엇이 폭탄보다 더 큰 소리라는 걸까? 그 큰 소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지는 걸까? 엄마의 죽음이 가족에게 미친 영향과 그 가족의 변화과정을 담담히 보여준 영화다. 남편은 힘들지만 또 다른 연인을 만난다. 큰아들은 갑자기 결혼해 아빠가 되지만 그 상황이 버거워 보인다. 작은아들 콘래드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가족과 소통하는 것을 꺼린다. 한 사람의 부재는 티 나지 않게 이 가족을 분열시킨다. 셋을 하나로 묶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가?
남자들은 얼핏 보면 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내, 엄마의 부재와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고, 알고 있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아내가 전쟁터로 촬영을 떠날 때마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남편, 왠지 모르는 불안감과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깊은 생각 없이 해버린 결혼과 아이의 탄생, 조나에게 아빠가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위태로워 보인다. 콘래드는 어릴 때 엄마를 잃어 그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
가족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가족이라면 대단할 것도 특별해 볼일 것도 없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이 사라져버리면 그 빈자리는 남은 가족들의 마음에 서서히 동굴을 만든다. 음울하게 매일 어두워지는 자기만의 방으로 그들을 밀어낸다. 일상이 무너지고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에 반사적인 행동들을 해 보지만 그마저도 의미 없다.
평범함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은 진리다. 자기만의 서사는 아름답고 문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고통을 발효시키기까지 개인이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는 만만치 않다.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때 부실한 뿌리를 가진 나뭇가지처럼 많이 흔들리고 위태롭게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다. 아마도 가족이 무너지는 소리가 폭탄보다도 큰 소리의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콘래드의 이유 있는 반항이 안쓰럽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