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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신비롭지 -벨파스트-

여자들은 신비롭지

by 글로

94회 아카데미 각본상 (2022)

케네스 브래너 감독, 주드힐 주연


천주교도를 몰아내려는 개신교도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배경은 1969년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어린 버디의 아빠는 이민을 생각하며 엄마에게 시드니,밴쿠버 팸플릿을 내민다. 2주에 한 번씩 오는 아빠는 할머니,할아버지를 방문한다.


정부에서 경찰을 투입하기도 한다. 동네주민들은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동네로 들어오는 자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고 통과시킨다.


버디의 초등학교에서는 성적대로 좌석을 배치한다. 1등은 맨 앞자리, 뒤에 앉은 점수가 낮은 학생들은 우등생들의 수업태도를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충격적이다. 학생인권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버디는 3등.

할아버지와 버디의 대화에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다. 같은 반 우등생 캐서린과 결혼하고 싶다는 버디에게 할아버지는 ‘여자는 신비로운 존재지. 할머니는 신비함이 많이 떨어졌어’. 수학시험에서 숫자를 애매하게 써서 맞게끔 하고 점수를 올리라고 알려주는 할아버지. 답이 하나인데 어떻게 그러냐고 하자 답이 하나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겠냐고 말하는 할아버지.


나눗셈에 익숙하지 않은 버디에게 할아버지는 ‘계산이든 여자애든 인내심이 필요하지’라고 말한다.

애매하게 쓴 숫자들이 맞게 처리되어 버디는 2등 자리로 간다.




개신교도들이 천주교도를 박해하는 폭동을 계속 일으키고 동네 개신교대장은 버디의 아빠에게 행동하라고 압박한다. 그럴 생각이 없는 버디의 아빠는 벨파스트를 떠나고 싶어한다. 강하게 반발하는 버디. 여기에 친구도 있고 캐서린과 공부해서 1등자리에 앉고 싶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는데 어딜 가냐고 울부짖는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언제나 자기의 수학숙제를 돌봐주고 말벗이 되어주며 조언을 진솔하게 해주는 할아버지, 묵묵히 옆에 앉아만 있어도 도움이 되는 할머니를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폭동을 일으키며 수퍼마켓을 털고 어린 버디까지 가담시킨다. 개신교도 폭도들과 경찰이 대치한 상황, 개신교 두목이 하필이면 어린 버디를 붙잡고 버디의 아빠를 협박한다. 총으로 위협하려는 개신교두목과 벽돌 한장으로 그 총을 정확히 맞춰 두목을 무력화시키는 아빠.


가족은 무엇인가? 위기 상황에서 숨어 있던 보석이 닦여 화려한 빛을 내듯 존재감을 드러낸다. 2주에 한 번씩 오고 아이들과 별말을 하지 않아도 가족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빠, 다소의 충돌은 있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그들은 결국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폐가 좋지 않은 버디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만 남는다. 버디 할머니는 멀리서 혼잣말을 한다.


Go, Go Now, Don’t look back. I love you.


버디의 가족을 자유롭게 가도록 두며 그들에게 전하는 말. 사랑한다. 홀로 남은 자신의 몸은 어찌하고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나 자신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이미 독립한 둘째 딸과 틈만 나면 독립을 외치는 큰딸을 생각하면 언젠가 혼자 남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남편과 둘만 남게 되겠지?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 평화롭던 벨파스트에 느닷없이 종교분쟁이 일어 전쟁 같은 나날들이 계속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정든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간다는 것이 보통 용기가 아니면 쉽지 않다. 영국도 우리처럼 지역이 바뀌면 사투리가 있고 출신을 중요시하나보다. 말을 못 알아들을까 걱정하는 버디의 엄마가 엄연한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생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것, 결국 엄마는 고백한다.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다 우연히 들여다본 쇼윈도 속 자신의 모습, ‘내가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나는 여기에 있나?’ 그리고 결심한 듯 얘기한다. 내일 짐을 쌀거라고. 버디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캐서린을 찾아간다. 꽃과 카드도 준비해서.

돌아와 아빠에게 묻는다. “쟤와 나 사이에 미래가 있을까요?” “안될 것도 없지” “쟤는 개신교일까요?” “쟤가 힌두교이든, 남침례교든 친절하고 착하잖아. 서로를 존중하면 언제든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오케이야.”


종교적인 신념은 각자 다르다. 기호가 다르듯. 중요도에 있어서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정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자신의 종교만이 위대하고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폭력을 사용하여 상대를 처단하는 행위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만을 키울뿐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자가 믿는 신이 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지하고 오랜 성찰이 없으며 이기적이라 시간을 들여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 인생이 너무 짧아서일까? 아니면 종교를 자기 세력확장을 위한 방편으로 삼고 싶어서일까? 종교에 앞선 도덕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색깔, 흑과백, 두 가지 색으로 화려함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벨파스트’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리스트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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