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2023)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주연: 알마 포이스티
핀란드 헬싱키
가라오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 홀라파와 안사
여자가 전화번호를 주지만 남자가 쪽지를 잃어버린다. 함께 영화를 보았던 극장에서 하염없이 여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밤늦게까지 기다리다 포기하고 간다. 뒤늦게 도착한 여자. 둘은 엇갈린다.
혈중 알콜지수가 높아 직장에서 쫓겨난 남자는 언제나 술을 휴대한다. 병째 술을 들이키고 늘 친구와 술집에서 만난다.
영화는 매우 심심한 평양냉면같다. 그 누구도 웃지 않으며 충격적인 사건도 없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단 한번도 서로를 보고 미소를 짓거나 웃지 않는다. 표정과 눈빛으로 표현한다.
여자는 마트에서 일하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가져가다 가방 검사를 받는다. 자존심이 상해 직장을 그만두고 금속기계를 다루는 공장에서 일한다. 돌아오는 버스 안 그녀의 표정은 공허하고 허무하다.
엇갈린 둘의 만남, 정처없이 떠도는 두 사람. 남자는 일용직으로 일하고 여전히 술을 휴대하고 마시며 일한다. 극장 앞에서 하염없이 여자를 기다려보지만 만날 수 없다가 극적으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남자가 전화를 안 한 것으로 오해하고 남자는 전화번호 적어준 쪽지를 잃어버렸다고 고백한다.
다음날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여자가 제안한다. 장을 보는 여자, 접시하나, 나이프와 포크 하나를 카트에 담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줄 꽃을 산다. 빨간색과 노란색 꽃. 여자는 빨간색깔 원피스를 입고 남자는 연한 노랑색 옷을 입고 있다. 색감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여자의 집 소파는 강렬한 빨간색이다. 램프등의 색깔이나 가구의 포인트 색도 붉은색이다. 금발여자와 빨간색은 묘하게 대비가 되어 강렬하고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
서로를 응시하고 조용히 교감하지만 남자가 몰래 술을 먹고 술만 찾는 걸 눈치챈 여자가 말한다.
“아빠와 오빠가 술 때문에 죽었어요. 엄마는 슬퍼서 죽었구요.”
“난 잔소리 꾼이 싫어요”
남자는 반항하며 바로 여자 집에서 나가 버린다.
계속 술만 마시는 홀라파, 일하면서 술을 마셔 또 해고당한다. 갈 곳도 없어 하숙에서 자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갑자기 일어나 술병을 들고 술을 모두 따라버린다.
여자에게 전화한다. “나 이제 술 끊었어요. 금주 센터에서 상도 받았어요. 가도 되요? ”
“당장 와요”
여자는 청소를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오지 않고 오래 기다리던 여자는 불을 끈다. 허무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자는 길에서 우연히 홀라파의 친구를 만나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러 오는 길에 기차에 치인 것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혼수상태다. 병원으로 가 책을 읽어주는 여자. 극적으로 남자는 깨어나고 여자는 처음으로 큰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퇴원하고 목발을 짚고 여자와 공원을 걷는다.
제목을 보고 낭만적인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둘의 사랑을 빼면 매우 우울하다. 가라오케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데 가사가 기괴할 정도로 슬프다. 웃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사랑에 어울릴만한 장소도 나오지 않는다. 둘의 노동현장과 누워 한숨 짓는 표정, 그리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피곤한 얼굴만이 반복될 뿐이다.
술을 끊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남자는 당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감동을 받은 여자는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고 옆집 남자에게 재킷을 빌려입은 남자는 급히 가다 목숨을 잃을뻔했다.
사귀고 헤어지고 싸우고 이별하는 것이 흔한 남녀관계다. 이들의 사랑은 특별하지도 그리 애틋해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선을 떨지 않는 이들의 사랑표현과 과정이 그래서 더 특별해보이는지도 모른다. 죽을 것 같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고 갈구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원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극장이 문을 닫고 불을 끌 때까지 기다리는 남자, 남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깊은 밤 방안의 불을 끄는 여자.
그들의 기다림은 길고 지루하다. 굴곡도 있고 단절도 있었지만 서로의 노력과 용서로 그 사랑은 기적같이 이어진다. 단조롭고 조용한 가운데 어떤 표현보다도 더 묵직한 그들만의 사랑이 흘러간다. 사랑한다면 술도 끊을 수 있고 혼수상태인 사람을 깨워낼 수도 있으며 가난해도 행복한 걸까?
잔잔한 사랑 영화가 오히려 강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