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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형제애
〓 램스 〓 Rams

by 글로

68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

감독: 그리머 해커나르손/ 주연: 시구르더 시거르존슨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너 뭐 돼?”


반항적이고 거친 형과 과묵하고 표현이 적은 동생

아이슬란드, 추운 자연과 농가의 풍경이 아름답다.


양을 키우며 서로 옆집에 살지만 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 왕래가 없고 말도 섞지 않는다. 급한 소식은 양몰이 개를 통해 편지로 전한다.


'훌륭한 양 대회'에서 형의 말이 1등을, 동생의 말이 2등을 한다. 대회 후 뒷풀이 자리에서 상받은 양들이 모여 있는데 동생 굽미는 형의 양이 수상하다는 의심을 한다.

알고 보니 전염병에 감염이 된 것이다. 전문 검역원들이 정밀검사를 하고 마을 전체, 수십 킬로미터 반경의 양을 도살해야한다는 결정이 내려진다. 2년 동안 양을 키울 수 없으니 보상을 해준다고 한다.


축사도 치워야하고 조금이라도 양과 접촉한 모든 것을 불태우거나 버려야 한다.

형은 어느 날 술을 먹고 동생에게 몰래 접근해 화풀이를 한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네가 이 마을 양을 전부 죽인거야. 지옥 같은 겨울을 보내게 될 거라구”


동생에게 건초를 입에 물리고 위에서 누른다.



형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며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가던 사람이 겨우 끌고 와 동생에게 살려주라고 한다.

동생 굽미는 아무도 모르게 지하 1층에 살려놓은 양 10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난다. 검역원이 잠시 화장실을 쓴다고 집안에 들어왔다가 지하에서 심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챈다. 다른 사람들을 더 데리고 와 양이 있는지 묻는다.


그 전에 동생은 급히 형 집으로 양을 피신시켰다. 양을 찾지 못한 검역원과 수의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마을 전체 집을 뒤질 기세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둘은 눈보라 치는 밤에 양을 산으로 몰고 간다.


형: “산에 풀어주면 겨울을 날 수 있을 거야”

동생: “거긴 너무 놓은 산이야”


둘은 오토바이를 끌고 양을 앞장세워 산으로 간다. 헤드랜턴으로 양들의 앞길을 비춰준다. 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추운 산으로 올라간다.


눈보라 치는 밤, 산, 둘은 앞으로 전진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방향도 잃고 서로의 행방도 모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주변이 조금 환해지자 형은 동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걸 발견한다. 형은 급히 삽으로 눈바닥을 판다. 구덩이를 깊게 안으로 만들어 둘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 형은 윗옷을 벗고 체온으로 동생을 감싼다.


“괜찮아질거야. 내 동생아” 마지막 대사다.




여자도 없이 두 형제는 홀로 각자 살아온 세월이 길다. 양에 의지해 모든 것을 양과 함께 해온 형제다. 건강한 양을 키워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에게 양이 없어졌으니 할 일이 없다. 땅도 모두 동생 앞으로 되어있다. 아버지가 형은 건실하지 않으니 동생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준 것이다. 무엇이 꼬인 건지, 기질인지 형은 동생을 미워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그러나 양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둘에게 공통분모를 제공한다.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동생은 1초의 망설임 없이 양을 급히 집에서 내몰아 형에게 간다. 형 또한 아무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인다.


가족은 평범한 상황에서는 존재가 빛나지 않는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손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존재들이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주는 고마운 품이다.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둘 다 누가 더한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추운 겨울에 양을 산으로 몰고 가는 두 사람은 양을 어떻게든 끝까지 존립하게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인다. 더 미래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양을 차마 죽일 수 없다. 자식 돌보듯 ‘내 새끼’라고 부르며 애정을 쏟아붓는다.


양에 대한 사랑, 형제에 대한 사랑, 여러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우직한 행동으로 사랑의 무게와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앞에서 웃고 장황한 말을 해도 어려운 일 앞에서 쉽게 돌아서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동안의 외면과 갈등이 무색하도록 어려움 앞에서 마음이 통하는 둘의 형제애가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그들의 인간애가 인적 없는 아이슬란드 겨울 풍경 속, 전등처럼 밝게 빛난다. 적어도 이 정도 빛이면 길을 잃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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