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ford park
74회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2002)
로버트 알트만 감독,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주연
돈이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당신은 돈과 총에만 관심 있잖아.” 남편에게 불만이 많은 부인
주인이 살해되었다. 칼에 찔렸지만 혈흔이 없다. 경찰의 부실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찔렸음이 밝혀진다. 죽기 직전 위스키를 마셨는데 맛이 이상하다고 인상도 썼다.
맥코들경의 집에서 사냥 파티가 열린다. 백작부인과 미국의 영화제작자들까지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류층 인사들이 빗속을 뚫고 저택에 도착한다.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아우라를 풍기는 부인은 저택의 안주인답게 표정이 없어 보인다. 누구의 애원에도 아랑곳 없다. 심지어 남편이 죽었는데도 다음날 승마를 하러 떠난다.
수 많은 인사들이 등장하고 그들을 보살피는 그만큼의 시중들이 나온다. 마치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처럼 그들의 하루 생활은 다르다. 한껏 차려입고 자신의 몸만 치장하면 되는 귀족들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보고 가꿔줘야 하는 하인들의 생활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숙소도, 생활구역도 나눠져 있지만 거기에도 인간적인, 혹은 동물적인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서로 위로도 하고 구애도 하며 고단한 밤이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밤 처제에 의해 주인 맥코들경의 죽음이 발견된다. 거들먹거리는 경찰 두 명은 수사를 하는지 마는지 온 사방을 쑤시고 다닌다. 아무 잘못 안 했지만 분위기는 흉흉하고 혹시 자신이 의심을 받을까 두려움에 휩싸여 다들 떠나고 싶어한다.
짙은 어둠 속 신발을 갈아신고 진흙이 묻은 다른 신발을 신고 과감히 주인의 서재로 들어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전에 살해되었다는데 무슨 이유로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휘몰아친다.
시중들 중 파커는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메리에게 고백한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굳이 따지자면 메리의 시선이다. 메리는 백작부인을 시중드는 하인으로 파커는 그녀에게 연정을 느낀다.
하인들 중 윌슨 부인은 부엌의 실권을 잡고 있다. 그녀가 주인의 마지막을 보았다. 차 대신 위스키를 달라는 주인의 시중을 든 것이다. 그녀는 파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주인 맥코들경이 공장을 운영할 때 그녀는 임신을 했다. 주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문란한 생활을 하고, 일이 터지면 아기들을 입양보낸다. 그 때 윌슨 부인의 아들 파커도 고아원에 보내진 것이다. 아버지는 예상했듯이 맥코들경이다.
윌슨 부인이 위스키로 독살하고 아들 파커가 두 번째로 살해한 것이다. 다들 놀라지도 않는다. 슬퍼하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부인조차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을까? 경찰이 돌아다니는 것이 다소 심란할 뿐이다.
범인은 밝혀지고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집사는 저택의 문을 닫는다. 떠나는 차들과 차분하고 아름다운 잔디밭 위로 크레딧이 올라간다. 평화롭고 우아하며 품위 있는 저택 안에서 인간들은 추악한 짓을 저지른다. 철저한 계급사회, 돈이 지배하는 조직, 그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인간들,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무너지는 조직.
부자들의 일상과 그들을 시중 들어야 하는 하인들의 삶이 극과 극을 이루며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생활을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무엇에 의해 운명이 갈렸을까?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으로, 부모에게 이어받은 환경으로 그들은 순응하며 살아간다. 귀족이라고 해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편하게 웃고 떠들며 서로를 챙기는 시중들의 삶이 따뜻하게 보이기도 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 문제지만 돈이 많은 것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냥을 나갔을 때도 주인에게 총알이 날아들어 귀가 한순간에 사라질 뻔 했다. 주인의 돈에 기대어 살려는 자들이 많다. 빌려달라, 투자해달라, 지원해달라고 징징대는 주변인들이 들끓는다.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이 가지고도 베풀지 않은 멕코들 경은 미움을 많이 받았다. 더구나 사생활까지 깨끗하지 않고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아무리 부자라한들 그를 존경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일회성 관계, 혹은 유희의 대상으로 여자들을 상대해온 그의 말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낳은 아들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돈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고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굳이 윤리의식을 들먹이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의 행태가 마뜩치 않음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귀족들의 거들먹거리거나 이기적인 행동들, 하인들의 뒷담화는 영화를 더욱 사실적으로 만든다. 야외에서까지 상을 차려 귀족들을 먹여야하는 하인들의 고단함에는 기가 막혔다.
어디나 대접받으려는 자와 대접하는 자가 있다. 그 간극은 언제나 존재한다.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고 없애려는 노력도 끝이 없다. 똑같이 태어난 평등한 존재가 왜 이렇게 다르게 생활하게 된 걸까? 살아볼 수 없는 귀족들의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영화인데 부럽지는 않다. 누구도 시중들지 않고 시중받지 않으며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가장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