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된 꿈

by 글로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사과 상자 위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골목길 담벼락 밑에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노래 부르기를 즐겨했다. 최헌의 ‘오동잎 한잎’이라는 노래로 기억된다. 대여섯명이 모여 나이도 상관없이 어울려 놀곤 했는데 자꾸 노래를 시킨다. 마다않고 불렀다. 잘한다고 어린 손들이 환호를 해 주었다. 소풍을 가면 꼭 노래를 시킨다. 왜 옛날에는 김씨묘, 이씨묘 이런곳으로 소풍을 갔는지 모르겠다. 너른 잔디밭 때문인가? 초등학교 6학년때 무덤 앞에서 노래를 하는 사진이 앨범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가 끝나고 수업 할 내용이 없을 때 선생님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하란다. 내성적이고 말하기에 소질이 없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누군가 뒤에서


“쟤 노래 잘해요”


하자 모두 우~~~를 외치며 박수를 쳐댄다.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불렀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 때 작곡을 하는 동아리 선배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 같아 보였다. 같은 과 친구는 나의 노래가 ‘뜨겁다’고 표현했다. 당시에는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라 방학 때 고향에 간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편지 말미에 ‘너의 뜨거운 노래를 듣고 싶어’라고 써있었다. 그 표현이 내내 잊히질 않아 노래를 뜨겁게 부르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다니는 대학교 가요제에 출전했다. 참가 번호는 10번.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해본 경험이 없으니 노래를 부르며 침이 마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가수들이 노래 부르다 입에 침을 바를 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떨리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긴장 했고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클라이막스가 있어 허공에 가사를 지르며 열심히 노래했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지만 금상을 받았다. 큰 전통 피리, 대금을 부상으로 받았다.


꿈은 거기서 절단되었고 연속되지 못했다. 임용고시를 보았고 교사생활을 30년간 했다. 꿈에 목말랐고 꿈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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