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다원’은 한옥마을 중심부 은행로에 있다. 대로를 걷다 표지판을 보고 조금 뒤 골목으로 들어가니 너른 마당이 나온다. 안을 들여다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실내 모습이 펼쳐진다. 감을 깎아 줄줄이 엮어 매달아 놓은 것이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먹는 것으로 만든 예술품이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먹는 것은 충분히 훌륭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다. 별관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있긴 하지만 좌식이 더 전통적이고 정감이 가 그곳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많을 때는 별관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기대를 가득 안고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잠을 잘 못 자니 음료를 고를 때 무조건 카페인이 없는 것을 우선한다. 물어보니 모든 차가 커피보다는 카페인이 덜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가장 카페인이 적은 ‘가바오룡’을 주문한다. 디저트류는 양갱과 설기가 있다.
고심 끝에 차 3인분에 단호박양갱, 흑임자양갱, 쑥설기를 시킨다. 우리 집 딸들은 메뉴 고를 때 제일 진지하다. 대충 보고 대표메뉴를 주로 주문하는 나와는 사뭇 다르다. 다시는 못 올 이곳에서의 메뉴를 최선을 다해 고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잠시 후 주문한 차와 디저트가 우리 앞에 놓였다. 눈을 의심했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고 코로 먹고 비로소 입으로 먹는다고 했던가?
‘이걸 먹으라고? 먹어도 될까?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두고 보기만 해야 하는 관상용 디저트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고 앙증맞으며 우아한 작품이 나왔다. 먹는다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태가 고왔다. 모양, 색깔, 올려진 그릇까지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맛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랴?
입안에 넣는 순간, 동공은 커지고 미소가 퍼지며 손으로 입을 가린다. ‘어머머’ 그 외에 감탄사는 더 필요하지 않다. 텍스처까지 완벽하다. 식감은 쫀득하다고 하기에는 거칠고 목이 매이지 않을 정도의 밀도로 알맞게 바란스를 맞춘 느낌이었다.
직원이 차를 마시는 것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선 큰 보온병이 나온다. 작은 다관 전체에 뜨거운 물을 충분히 부어준다. 그리고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10초 정도 기다렸다가 작은 잔에 따라 마신다. 쑥 설기는 그동안 수없이 먹어온, 백설기나 무지개 설기의 맛과 달랐다. 훨씬 밀도는 낮으면서 완성된 맛이다. 쑥 향이 은은히 풍긴다. 양갱은 미니 찻상과도 같은 접시 위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무너뜨리기 아까운 모양이다. 눈으로 먹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한다.
돔 모양의 두 양갱은 맛도 철저히 그 이름에 충실하다. 단호박과 흑임자 맛이 제대로다. 달지도 않고 담백하게 입에 감긴다.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분명히 조금 전에 떡갈비를 충분히 먹고 후식을 먹으러 온 것인데 온존한 후식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수가 없었다. ‘그래 전주는 이 맛이야. 이런 걸 느끼러 전주까지 온 거지. 제대로 왔어, 역시 전주에 오길 잘했어!’ 만장일치로 우리는 전주를 예찬하기 시작했다. 이 디저트 하나를 위해 내려온다고 해도 좋을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이곳에서 끼니보다 더 많은 양의 디저트를 먹었다. 하나로 끝낼 수가 없다. 맛있는 건 맛있어서, 안 먹어본 건 궁금해서 다른 디저트를 주문한다. 쑥 설기를 하나 추가한다. 약과를 포기할 수 없다. 밀가루를 되도록 멀리했었는데 ‘교동다원’에서 스르르 무너진다. 약과를 주문했다. 내가 알고 있는 맛을 넘어선다. ‘아! 내가 이런 맛을 원했나 보다’를 알게 해 준 맛이다. 맛을 보니 알겠다. 이상형이 없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아! 이 사람이 내 이상형인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숲속,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면 천국을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만족스러운 디저트를 실컷 즐기고 나오니 전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러한 우리의 아름답고 우아한 디저트 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특정한 장소에 가야만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 만나는 전통찻집이나 대형 카페에서 만나는 퓨전 메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깔끔하고 담백하며 우아한 맛을 내는 전통카페 다원. 어디를 가도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제대로 된 우리나라의 전통 디저트를 만나게 해 주었다. 다소 딱딱하다거나 달기만 한 것들과 달리 그곳의 디저트는 양도 만족스럽고 맛도 달지 않다. 담백해 꾸밈없이 완벽한 맛이었다.
전주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디저트가 아니라 전국 어딜 가도 만날 수 있고 외국에도 진출해 우리의 맛을 알리는 디저트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카페에 직접 가서 먹는 것뿐만 아니라 포장해서 가져오면 언제든 식사 후 음료와 함께 맛볼 수 있는 디저트이면 더 좋겠다.
일본에 가보면 각 지역별로 다양한 디저트 특산품이 있다. 포장부터 맛, 색깔, 무엇하나 빠짐이 없으니 맛보고 선물용으로 사오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지역을 다녀보았는데 특산품이 어찌나 다양한지 생각 없이 갔다가도 꼭 몇 박스를 사와 지인들에게 나누어준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는 원석으로 치면 빛나는 것이 많은데 가공을 해서 판매까지 이어지는 것이 조금 부족해 아쉬움이 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피나 음료, 그리고 디저트까지 먹어야 비로소 식사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구매할 의사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예술품과도 같은 디저트들이 소개되어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구매로 이어질 것이다.
한번 먹고 쉽게 잊혀질 수준의 디저트가 아니라, 계속 기억에 남고 전주하면 ‘교동다원’이 생각날 정도로 강렬하고 행복한 기억이었다.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디저트 문화가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 외국의 마트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음식은 주로 맛이 강하고 매운 것 위주로 알려져 있다. 김치나 매운 불닭 볶음면, 그리고 믹스커피 등이 대표적이다. 초코파이나 새우깡도 인기 있다고 한다.
영국에만 우아한 ‘에프터눈 티’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우아하고 멋스러운 디저트들이 있고 즐길 줄 아는 문화가 있다. 만들기가 다소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잘 계승해서 만든다면 더 특화되지 않을까?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섞인 발걸음을 돌리지 못해 한참을 교동다원 정원에서 머뭇거리다 빠져 나왔다. 입안에 감미로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