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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10. 2024

오래도록 은밀하게

Tokyo Travel

쓰키지 시장은 ‘도쿄의 부엌’이라고 불린다. 토요일에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인파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공짜로 할 수 있는 시장 구경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숙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가는 내내 후회했다. 택시를 타고 갈걸. 여행을 오면 괜히 마음이 분주하다. 정해놓고 꼭 이걸 봐야지 하는 것도 없는데 약간의 착오만 생기면 그 시간이 아깝다.  

   

한국에서 생각하고 생활하던 대로 여행 와서도 허투루 시간 쓰는 것이 아깝다. ‘얼마를 들여서 왔는데,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서 왔는데’ 하며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시장 찾기도 쉽지 않고 오래 걷다 보니 몸도 마음도 힘들다. 

    

여행의 묘미는 여러 가지 변수인데 틀에 박힌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새로운 것을 보고 맞닥뜨리러 가는 건데 안전한 곳만, 계획대로 되길 바라니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기기 쉽지 않다.      

도착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많이 걸었고 헤맸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해서 겨우 도착했다. 구글을 잘 못 보는 우리는 지도 앞에서 방향감각을 잃어 속수무책이다. 맨투맨으로 사람한테 물어보는 것이 확실하고 속이 편하다. 내가 판단해 마음대로 방향 잡고 갔다가 다시 거꾸로 돌아올 때는 남편 눈치가 어찌나 보이던지. 여행을 가면 평소보다 자주 허기가 진다. 허탕을 치거나 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 동행자의 눈치가 보인다. 




어렵게 도착한 시장의 입구부터 각 식당에는 줄이 길게 서 있다. 뭉근히 오래 끓인 쇠고기 장조림 덮밥을 서서 먹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리니 뒷골목 작은 식당마다 칸칸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온 사람, 커플로 온 사람, 가족 단위로 온 사람. 구성원은 달라도 잠시 로컬이 되어 일본의 식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스시집도 있다. 들어갈 자리가 없고 밖에는 긴 줄이 서 있다. 밀려다니기를 여러 번 하며 그 복잡한 곳을 비집고 들어가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아 간단히 계란말이를 샀다. 특이한 점은 두껍고 고운 계란말이를 큐브 모양으로 잘라서 판다는 거다. 종이에 담아 주니 들고 다니면서 먹기 좋다. 자극적인 맛은 아니다. 꼬치에 찍어 먹기 편했는데 특별한 맛은 없었다.

     

그 많은 상점 중 우리의 눈길을 끈 곳은 사케를 파는 가게였다.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셔볼 수 있다. 500엔을 내면 뜨거운 사케 한잔을 유리잔에 준다. 뜨거운 알코올. 두 모금 마셨는데 취기가 위장으로 쏴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일본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오래도록 은밀하게 사케의 맛을 즐겼다. 

     

좁은 매장 안은 각종 사케로 가득하고, 뜨거운 사케를 맛보겠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리도 없이 서서 마셔야하는데 특히 서양인들이 많았다. 식당에 편히 앉아 먹는 사케도 좋겠지만 넓지 않은 매장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음미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이 들끓어 옴짝달싹도 못해서 구경을 마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즐거운 체험이었다. 사케를 오래도록 음미하며 먹듯 그렇게 여행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항상 익스프레스로 엑기스만 보고 오는 여행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천천히 하는 여행을 가보고 싶다. 오늘은 여기 여기를 가야 하고 몇 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어디 어디를 보아야 한다는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여행을 가보고 싶다.      



    

현지인처럼 도시를, 멋진 풍경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까탈스러운 나는 쉽게 되지 않을 듯하다. 추구하는 바는 그렇지만 현실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우선 비용이 걱정된다. 둘이 가야 하니 비용은 갑절이다.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각방을 써야 하니 숙박비도 두 배다. 남편은 서양국가로 가는 건 두렵다고 하니 내가 앞장서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려운 영어를 줄 땀을 흘려가며 알아듣기 위해 애써야 하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      

남편은 우리와 외모가 비슷한 동양의 나라들, 예를 들면 일본이나 대만을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 나라를 가고 싶어 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멀리멀리 떠나보고 싶다. 가까운 나라는 언제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고 보니 아파서가 아니라 갑자기 아플까 봐 멀리 떠나기가 두렵다. 오랫동안 은밀하게 즐기고 싶어도 유사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겁나서 떠나지 못한다.  

    

여행에서 오는 피로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비행기 매표해놓으면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방법도 모른다. 그러니 돌아오는 날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여행이 혹시 만족스럽지 않다면 어쩌지? 둘 중 누가 하나 갑자기 탈이라도 나면 병원에 가는 것부터 모든 것이 곤혹스럽다. 

    

젊은 날에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장소가 바뀌면 예민해서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잘 못가지만 어떻게든 체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이제 50대 중반이 되고 보니 겁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아파도 싫은데 외국에서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감당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못가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니 건강이 허락지 않아 못 간다. 오래도록 은밀하게 즐기는 여행은 이리도 요원한 것일까? 몇 년 전에 중학교 1학년 딸과 자유여행으로 영국을 갔을 때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현지에서 비상상황이라도 생길까 염려되어 즐겁지 않았다. 그때 당시 건강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악화한 지금의 건강상태. 그러면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이 제일 건강하고 젊은 날이다. 그렇게 따지면 매일 젊은 호시절이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할까? 

    

시간과 마찬가지로 여행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역사도 누군가의 반란과 혁명과 도모로 이루어지듯이 개인의 역사도 용기를 내어 과감히 마음먹어야 만들어진다. 점점 즐길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가장 휘황한 오늘, 계획을 세워야겠다. 로컬처럼 브런치를 즐기며 강가를 산책하고 공원에서 반나절을 보내도 좋은 ‘오래도록 은밀하게’ 즐기는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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