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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03. 2024

다시 없을 오므라이스

도쿄의 ‘오모테산도’를 가보기로 했다. 오모테산도는 우리나라 신사역의 가로수길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다른 세상, 우와!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비주얼이다. 거리가 넓고 깨끗하고 반듯했다. 대로 옆 사이사이 난 길로 힙한 상점들이 눈에 띈다.       


시원하게 늘어선 가로수들, 붐비지 않는 거리,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명품숍등, 왜 그렇게 오모테산도 거리가 유명한지 이해가 되었다.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많이 다르고 도로가 넓어 거칠 것 없이 걸어갈 수 있다. 역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는 경사가 조금 있는 길이다. 올라올 때 힘든 정도는 아니고, 그래서일까 거리가 더 잘 보인다.      


한참을 목적 없이 걸었다.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 없이 오모테산도 자체를 즐겼다. 저녁 때가 되어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오므라이스 사진이 눈에 띄었다. 나이 들면서 밀가루보다는 밥으로 된 식사를 원했다. 이 지역에 유명한 오므라이스 식당이 많다는 건 다녀온 후 알았다. 여행가기 전에는 검색하고 알아보아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여행 한 후 찾아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     

 

‘오므라이스가 다 오므라이스지, 뭐 특별한 게 있겠어?’ 한국에서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어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식당은 2층이었고 이미 5팀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았다. 앞 팀이 입장을 하면 한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맛이 있을지, 식당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채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약 30여 분을 기다렸을까? 우리 부부는 기다리는 걸 잘 못한다. 기다리느니 다른 걸 먹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다리도 아프고 특별히 먹을 것이 생각나지 않아 우직하게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들어가니 꽤 넓고 좌석도 많았다. 기본 오므라이스를 주문했고 별 기대없이 기다렸다. 잠시 후 나온 오므라이스. 둘 다 눈이 동그래졌다. 비주얼에 먼저 놀란다. 계란을 터뜨리다시피 해서 숟가락으로 밥과 함께 먹은 우리는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둘의 느낌이 같아서였을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다. 밥 위에 얹어진 오믈렛이 구름을 연상시키듯 폭신한 맛이다. 부드러우면서 탱글탱글했다.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식감이고 크기도 했고 부드럽기도 했으며 맛있었다. 밥과 함께 먹으니 입안이 천국이다.   

   

일본은 메뉴 하나를 시키면 양이 적은 편이라 먹어보고 추가 메뉴를 시키곤 했다. 둘이서 3,4개의 메뉴를 시켰는데 이번엔 달랐다. 남편과 연신 ‘오이시’를 외치며 입은 먹느라 웃느라 바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더 구경하다 돌아왔다. ‘오모테산도는 오므라이스’ 우리 뇌에는 이렇게 각인이 되었다. 화려한 거리도 명품도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이길 수는 없다.      


일본에서 먹어야 할 음식으로 오므라이스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고 여러 번 먹는다고 해도 경이로울 맛이다. 맛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남편과 나는 둘 다 오므라이스의 맛에 푹 빠져버렸다. 




일식은 정교함과 부드러움으로 맛의 경지를 이룬다. 한국에서 일식 오마카세를 맛보았을 때도 놀랐다. 주변에서 오마카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니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한번 가보자. 남편과 마음을 먹고 8만 원 중반대의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식당 문을 열고 입장한 순간 우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다찌라고 불리는 자리 만석, 뒤에 테이블석도 거의 손님으로 차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비싼 식사를 젊은이들이 즐긴다는 것이 의아했다. 우리도 꽤 큰 마음 먹고 먹으러 온 것인데 대부분의 손님들이 우리보다 한참 나이 어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술까지 주문하고 잔뜩 기대하고 앉았다. 처음 듣는 쥰마이로 끝나는 시원한 사케를 주문했다.   

   

주방에 초밥을 직접 만드시는 분과 옆에서 서브하는 분들까지 4명가량 있었다. 한 분이 주로 설명을 해주셨다. 이것은 무슨 생선이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간략히 얘기해주셨다. ‘차완무시’를 먹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부드럽고 여린 계란찜이었다.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그 식당만의 특별한 초밥, 마끼, 덮밥, 우동,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감동에 감동을 주는 한입 음식들이 내 앞에 놓였다. 옆에 있는 젊은 커플은 세프와 얘기도 나눴다. 전에 갔던 오마카세 식당의 특징을 얘기하며 오마카세 순례자처럼 대화를 한다.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속초에 여행갔을 때 횟집에서 스끼다시와 사시미만 열심히 먹던 우리 부부에게 오마카세는 완전히 다른 맛의 세상으로 다가왔다. 하나 하나, 한 피스 한 피스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을 맛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기본 코스는 대부분 비슷했지만 변주가 다양했고 집집마다 특징이 있었다. 제철 생선이 다르고 요리법도 약간씩 달랐다.      


음식이긴 한데 보는 재미도 있고 기대하는 맛도 있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앞에 놓일까? 행복한 기다림이다. 씹을 것도 없이 음식이 목젖을 넘어가고 옆에서 사케와 음식을 먹는 남편도 오랜만에(?) 행복해 보였다.  이 여세를 몰아 속초에 갔을 때도,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도 오마카세 식사 한끼는 우리부부의 여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세 집을 비교해가며 얘기하는 재미도 있었다. ‘아, 그 집은 세프가 친절했지. 식당 분위기가 좋았어. 맛도 맛이지만 양이 많고 끝도 없이 나오는 스시 덕에 행복했지’ 추억을 씹으며 회상하며 행복해하는 우리는 그때만큼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맛있는 음식 앞에 장사 없다. 일반인이 누리는 작은 식도락은 누구도 무어라 탓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이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작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듯한 오마카세 피스들을 앞에 놓고 있으면 작은 것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모테산도 오므라이스’만 있으면 거칠고 메마른 마음도 금세 말랑말랑해질 것 같은 기분은 그냥 기분이겠지? 현실도 그렇게 말랑말랑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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