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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Oct 27. 2024

달라진 도쿄

도쿄는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갔었다. 초등학생을 데리고 8월 땡볕에 여행을 하자니 여행인지 고생인지 모를 험난한 여정이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셔츠가 젖는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날씨에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기에 오긴 했지만 막상 다니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주쿠를 중심으로 밤까지 돌아다녔다. 낮에도 호텔에만 있을 수 없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온전한 구경을 했다고 할 수 없다. 워낙 더워서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어린 딸은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자판기만 붙들고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5층 건물이 모두 캐릭터관련 상품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딸이 구경할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더운 날씨에 하염없이 딸을 기다리고 있자니 ‘이러려고 힘들게 일본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딸이 만족스러워하며 나오니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지진도 겪었는데 아침에 머리가 어지럽고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 와서 불안정한 상태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뭔가 문의할 것이 있어 호텔 프론트에 들렀는데 신문이 놓여있었다. 놀라운 건 대문짝만하게 쓰인 문구. ‘6.5 강진’   

   

‘아! 내가 느낀 것이 지진이었구나’ 생전 처음 지진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진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필이면 내가 여행 왔을 때 지진이 나다니, 그것도 첫날에. 매우 불안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이 고민을 함께 나눌 수도 없고 남편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카톡이 되지 않았고 로밍도 신청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거기다가 아이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여행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중 최악의 상황이 겹쳐 일어난 것이다.    

 

‘오다이바’에 갔을 때 일이다. 도쿄 시내에서는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있고 그곳에서만 운행하는 모노레일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3대 테마파크를 모두 합쳐 놓은 크기라고 해야 하나? 그당시 처음 발을 들여놓은 우리로서는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시기는 8월이었고 휴가철이니 사람들의 수는 상상불가이다. 단체로 실어서 쏟아 부은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개미처럼 이곳저곳에서 움직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다이바역에서 내렸는데 딸이 내리지마자 하는 말, “엄마, 나 가방 두고 내렸어”. 그 당시 딸이 매고 다니는 크로스백 안에는 핸드폰과 현금이 들어 있었다. 단순히 소지품만 넣어둔 게 아니었다. 딸은 나에게 “가져올까? 말까?” 라는 질문도 없이 모노레일에 폴짝 올라탔고 모노레일은 스-윽 출발해버렸다.    

  

나는 플랫폼에 서 있고 딸아이는 모노레일 안에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냥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 상황을 파악하고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머릿속이 하얘지고 상황에 대한 인지가 잘 되지 않았다. 딸아이나 나나 아는 일본어 문장이 3개 정도. 한, 두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밖에 모르는 딸아이와 내가 일본에서 헤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딸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이런 걸 그야말로 ‘패닉 상태’라고 하는구나.      


어떻게든, 뭐든 해야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딸아이에게 있던 핸드폰은 내것이고 나에게는 핸드폰이 없었다. 우선 개찰구에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핸드폰을 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나 발에 걸리게 많던 한국 사람들이 그때는 보이질 않았다.      


아무나 붙들고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자니 부끄러웠다. 그래도 상황이 급박하니 계속 한국 사람을 찾았다. 한참을 “한국 사람이냐?”고 묻던 긴 시간이 지나고 어떤 중년 남자분이 남자 아이 한 명과 개찰구를 막 통과할 때쯤 “한국분이세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딸을 잃어버렸고 핸드폰이 없어서 연락이 안 된다’. 그러자 그 남자분이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 전화를 했고 내가 여행사 직원과 통화를 했다. 그 여행사에서 우리 딸에게 어느 역으로 가라고 전화를 해주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익숙하니 영어로 얘기했다. 도움을 요청해도 일본 직원은 전혀 못 알아듣고 “에? 에?” 소리만 연발했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얼굴이 하얘져서 외국인 아줌마가 계속 도움을 요청하니 이 역무원도 내가 불쌍했는지 어느 센터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연결해주었다. 그래서 영어로 상황 설명을 하고 아이의 인상착의와 무엇을 입었는지 등을 말해주었다. 40분 후 우리는 재회했다. 딸이 40분 전에 내린 곳으로 돌아 온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아이를 찾기는 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이를 못 찾았으면 아마 이혼당했으리라.      

숙박 시설의 직원들은 어찌나 대화가 안 통하는지 요청사항을 아무리 영어로 얘기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는 파파고도 없어서 의사소통에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일본은 달랐다. 백화점 직원들까지도 영어가 술술. 영어를 몇 마디만 던져도 저쪽에서 다 알아듣고 응대를 하니 물건 사기도 수월했다. 몇몇 표현은 번역기를 이용해 물어보기도 했다.  

    

번역앱이 있으니 입력해서 목전에 들이대면 그들도 바로 알아듣고 대답을 한다. 돌아다니고 물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식당이나 카페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잘한다. 내가 알던 일본이 맞나 싶을 정도다.  딸과 갔을 때는 더운 여름에 번잡한 신주쿠만 돌아다니느라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도쿄가 다르게 다가왔다. 


알맞은 날씨에 든든한 남편이 옆에 있고 어딜 가나 큰 불편 없이 영어로 소통되니 어려움이 없었다. 도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다시 찾은 도쿄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동행자도 달라졌으니 또 다른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다음에 가면 또 어떤 일들이 생길까? 여행은 항상 사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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