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Oct 13. 2024

환상적인 사진

점프샷

‘신주쿠교엔’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주말을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금요일에 방문했는데 날씨는 맑지 않았고 중간에 비도 내렸다. ‘말로만 듣던 일본의 사쿠라, 벚꽃을 드디어 보는구나’. 나무와 꽃을 좋아해 기분이 한껏 들떴다. 나무는 나무, 꽃은 꽃, 좋은 걸 봐도 별 감흥이 없는 남편은 기대가 없는 눈치다.     

 

긴자역에서 마루노우치선을 타고 ‘신주쿠 교엔마에역’에서 내렸다. 조금 걸으니 게이트가 나온다. 신주쿠역, 신주쿠산초메역에서 내려도 상관없다. 입구부터 장대한 나무들이 우리를 맞는다. 입장료는 5,000원이다. 드넓은 잔디밭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들, 군데군데 연못과 다리가 놓여있다. 중간에는 쉬어갈 수 있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휴게소가 있다.  

    



이곳은 일본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배경지이다. 과연 그만큼 찬란하고 빛났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벚꽃나무 아래다. 땅에 닿을 듯 휘어져 내려온 벚꽃나무 가지를 붙들고 사진을 찍는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벚꽃과 찍는 사진은 화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의 부드러움과 여림은 다 모아 놓은 듯 분홍빛의 벚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그 앞에서 찡그릴 수는 없을 듯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벚꽃 한번 제대로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벚꽃과 다니는 교회 입구 길에 늘어져 있는 벚꽃이 전부였다. 가끔 양재천 벚꽃길을 걷기는 했다. 그러나 머리는 항상 일 생각으로 가득 차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해마다 피는 벚꽃, 떨어질 때 처연한 꽃, 며칠 피어 있다가 지는 가련한 꽃. ‘벚꽃이 필 때 쯤이면 학교에서 이런 일들을 하겠구나’로 생각할 정도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바라보고 충분히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에 내 시간이 많아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아기들이, 어린이들이 이런 기분인가? 모든 것이 새롭고 다르게 보였다. 흔한 꽃들도, 나무도, 길거리 카페도 다르게 다가왔다. 나의 상황이 바뀌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라진 듯 긍정적인 의미로 생경했다.  

    

평일에 갈 수 없었던 식당에 예약해 지인들과 모임을 할 수도 있고 주말 아닌 날 여유롭게 영화도 볼 수 있었다. 한강에 가서 한가롭게 산책을 할 수도 있고 대형서점에 가서 몇 시간을 책만 고르고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파트 주변에 흔한 나무에 눈길이 가고 철철이 피는 꽃의 색깔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니 사물이 분명하게 보였다. 이런 상태에서 본 벚꽃은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부부 둘이 온 여행이라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동심으로 돌아갔다. 내가 먼저 폴짝 뛰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그러고 싶었다. 뛰는 모습을 순간 포착해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일까? 주로 여행프로그램 홍보용 포스터에서 본 듯한 포즈. 공중을 향해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내가 뛰어보는 건 어떨까? 높이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힘껏 점프를 했다.   

   



독서모임회원들과 한강에 가서도 제안했었다. ‘점프샷이 뭐 대단한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제안 하나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점프샷 해서 뭐해?’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의미? 의미는 없다. 그 순간을 즐기고 싶고 ‘점프샷을 단체로 찍으면 우리는 어떻게 찍힐까?’가 궁금했다. 궁금하면 시도해보는 것이다. 제안하니 모두 ‘뭐하러 그런 사진을 찍느냐?’ 하는 사람 한 명 없이 힘껏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겨우 땅에서 30센티 남짓 뛰었는데 사진에는 높이뛰기 선수라도 된 마냥 머리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줌마 8명이 단체로 점프샷을 스스럼 없이 하게 만드는 곳 한강. 그 장소가 주는 힘이다. 그리고 누군가 제안을 했을 때 받아주는 여유가 있어야한다. 장소의 변화는 마음이 변하게 하는 신비함을 발휘한다. 점프샷을 찍고 확인하며 모두 ‘하하’대고 즐겁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뛰고 싶어 뛰었는데 특별한 의미부여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즐기러 왔다. 즐기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놀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뛴 거네’ 그렇게 생각하고 한 번 더 웃는다.      


이곳 신주쿠교엔, 벚꽃이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쉬고 싶어하는 듯 가지가 휘어진 모습. 못할 줄 알았는데 남편이 용케도 그 점프샷 촬영에 성공했다. 피사체가 뛰고 나서 셔터를 누르면 내려오는 장면만 찍힌다. 뛰기 전에 눌러야 뛴 모습이 정확히 찍힌다.      


사진을 보고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남편한테도 재미있으니 해보라고 시켰다. 남편도 흔쾌히 응했다. 움직이는 모습을 계속 찍으니 화면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스틸사진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여 영상이 되듯, 남편의 사진이 짧은 영상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장소는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는구나. 드넓은 곳에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곳을 찾으니 새로운 생각과 포즈, 움직임이 나온다. 

     

환상적인 사진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다. 정색하고 찍힌 사진이나 의식하고 잡힌 화면은 재미가 덜하다. 보고 바로 웃을 수 있는 사진은 대부분 망가진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두고 두고 웃게 된다.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아?’ ‘어? 여기에 갔었네’ ‘그때 참 좋았는데’ 하는 사진들. 과감하게 평소 짓지 않던 표정을 지어본다. 여행가서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본다. 분명 내 모습인데 낯선 과거의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과거로 흘러가버린 어느 시점을 갑자기 불러주는 사진 한 장, 사진에 집착하고 열심인 이유다. 유한한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우리의 소박한 바램이 사진 한 장에는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다시 못 올 시간을 순간 정지시켜주는 매직을 가진 사진은 환상적이다. 

    

미래로 미래로 달려가기만 하는 시간이 야속해 우리는 자꾸만 사진을 찍는다. ‘환상적인 사진 찍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본다.

이전 12화 최악의 경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