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는 예상 밖이었다. 어쩐 일인지 남편도 나랑 똑같은 마음이었다. 깨끗하고 넓고 쾌적하고 세련된 거리가 마음을 끌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지저분한 곳이 없고 은은한 불빛의 많은 식당과 카페, 상점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인도가 넓어 도보로 이동하기 편해 이 거리, 저 거리, 정신없이 걸었다. 여기도 보고 싶고 저기도 궁금하고 온갖 식당을 다 들어가 보고 싶었다.
도착하고 이튿날 저녁에는 긴자 코리더(Ginza corridor)라는 거리를 발견했다. 직역하면 긴자의 복도? 상점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온갖 종류의 음식들이 사람을 유혹한다. 금요일 밤, 어디를 둘러봐도 유쾌하게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람들뿐이다. 런던에 여행 갔을 때 시장 주변의 바에서 와인 숙성통 모양의 테이블에 맥주를 놓고 마시는 하얀 셔츠 부대를 많이 보긴 했다. 그런 모습을 긴자에 와서도 보게 될 줄이야.
앉아서 먹는 식당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스탠딩 바도 여럿 있었다. 이자카야가 대부분이고 고기 요리 전문점, 오뎅 전문점 등 취향껏 음식점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거리였다. 안 먹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참을 수가 없어서 간판에 맛있는 어묵이 그려져 있는 곳으로 이끌리듯 올라갔다. 와! 바라던 바로 그 분위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주방이 훤히 보이는 바 형식의 이자카야다. 우리가 들어간 이후 몇 분 지나지 않아 퇴근한 직장인들이 몰려든다. 주방에서는 쉴새 없이 하이볼이 만들어지고 배달되어진다.
정중앙 바에 앉았다. 꽤 이른 시간이었다. 다행히 일본어 밑에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어 원하는 메뉴를 시킬 수 있었다. ‘폭탄밥’이라고 쓰여진 음식이 있어 궁금해 시켜보았고 어묵5종류와 게살크로켓등을 시켰다. 음식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어찌나 기대가 되던지.
제일 의외의 요리는 게살크로켓이었다. 게살딱지안에 크로켓이 들어가 있다. 게 모양을 그대로 살린채로. 옆에는 누룽지가 튀겨져 나왔다. 게살 안에 있는 크림크로켓을 튀긴 누룽지위에 얹어 먹는 요리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한 메뉴였다. 입안에 감탄이 터진다. 크림이 부드러워서, 튀긴 누룽지가 바삭해서 행복감이 밀려온다. 어묵은 아는 맛이지만 쫄깃함이 남다르긴 했다. 폭탄밥은 알밥처럼 여러 가지 생선알이 입안에서 터진다. 이름이 재미있다.
바로 눈 앞에서 생선회를 뜨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기에는 잔인한 장면을 목도하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먹기는 해야겠고 막상 보자니 불쌍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요리로 배를 채우고 들뜬 금요일 긴자거리로 다시 나왔다. 점입가경이란 말이 이런 상황에 어울리려나? 그곳을 벗어나 다른 환한 불빛의 거리로 걸어가 보니 여기는 더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위로는 지하철이 다녀 시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 밑에 식당들이 있다. 어느 테이블 하나 비어 있지 않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시골 막걸리 주점들이 줄을 이어져 있다고 하면 정확하려나? 서민적이고 인간미 풍기는 가게들이 양쪽으로 도열해있고 동서양 사람들이 가득 앉아 먹고 마시며 웃고 있었다. 먹지 않아도, 앉지 않아도 행복한 분위기였다.
더 이상 뭘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기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시 이곳을 오리라 두 눈으로 남편과 약속하고 발길을 돌렸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남편의 표정이 어찌나 비장하던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여행 가기 전에는 그렇게 내 속을 태우더니 오면 본인이 더 좋아한다.
긴자에는 우리의 눈에 신선하게 비친 장면들이 있다. 긴자의 중심 한복판에 저녁 어스름에 찾아가면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주차되어있다. 도로에 서 있는 차들 옆에는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다. 꽤 긴 거리에 꽤 많은 차들이 기사와 함께 서 있다. 이건 어디서 정보를 찾아볼 수 없으니 현지인들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남편과 나의 추측일 뿐이다. 우리가 두 눈으로 본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나 강렬한지 남편은 긴자에서 본 많은 것들 중 이 장면만을 수십 번 반복해서 얘기한다. 기모노를 입은 미모의 여성들이 90°로 인사를 한다.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오른다. 그 차들은 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차들이 아니었다. 매우 고급스러운 차들이었고 일반인들은 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차들이었다. 고급요정에서 술을 마시고, 기다리는 기사들과 차로 오는 것일까?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긴자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멋쟁이 중년 신사들이 많이 보인다. 뭘 봐도 크게 감정의 동요가 없는 남편이 왠 일로 큰 감동을 받았는지 반복해서 얘기한다. 그 어느 다른 지역을 가도 크게 재미있어하지 않았는데 긴자가 맘에 드나보다.
‘긴자식스’는 유명한 쇼핑몰이다. 6층에 츠타야 서점과 함께 ‘테판야키10’이 있다. 당일에는 자리가 없어 예약만 하고 다음 날 찾아갔다. 바에 앉게 되었는데 약 30미터는 되어보이는 철판이 앞에 있고 그 앞에는 10명 가량의 세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부터가 구경거리였다. 전채요리부터 순서대로 철판 코스요리가 서브되었다. 메인요리는 랍스터였다. 살아있는 랍스터를 불판에 얹고 뚜껑을 덮는다. 더듬이가 움직이다가 움직임이 둔해진다.
신선함을 증명하는 랍스터의 움직임. 그 후로 음식이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대단한 볼거리지만 씁쓸했다. 고기 요리는 화려한 불쇼와 함께 철판 위에 구워졌다. 디저트도 정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었다. 에프터눈티를 시키면 나오는 3단 접시에서 여러 가지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게 해놓았다. 원하는 것을 집을 수 있도록 해주니 이또한 새롭고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라 재미있었다.
평소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고가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자 과감히 시도해보았다. 여행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여행 왔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치 않을까?’ 마음의 빗장을 풀어본다. 하던 대로 먹고 늘 보던 것만 보려면 무엇 하러 여행을 가겠는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새로운 것도 먹어보고 특이한 것도 보고 체험하러 가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돈만 따지려면 무엇 하러 여행을 가는가? 집에서 조용히 TV나 보고 있어야지.
여행은 새로운 장소, 음식, 체험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려고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