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음날 점심에 주점을 찾았다. 밤의 화려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일본의 서민적인 모습 그대로의 음식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었다. 둘이 가서 메뉴를 4개나 주문했다. 메뉴의 양을 짐작할 수 없으니 2개를 더 주문한 셈이다. 식당마다 메뉴마다 양이 다르니 주의해야한다. 막상 들어와 보니 청결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게살 두부 요리, 교자, 볶음밥, 닭고기 요리. 두 개는 성공, 두 개는 실패다. 양은 적고 맛은 어설펐다.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이 먹었다. 겉모습과는 다른 실체에 적잖이 실망했다. 다른 일행과 저녁에 와서 반주라도 곁들였다면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신이라도 났을 텐데. 둘이 낮에 술 없이 음식을 먹는 거라 액면 그대로의 맛과 서비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래서 ‘무엇이든 체험을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겨우겨우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여자 손님이 담배를 맛있게 태우고 있다. 식후담배. 기가 막혔지만 여기는 일본이다. 실내에서 흡연을 하다니, 일본은 담배에 참으로 관대하다. ‘어떻게 이렇게 무신경할 수가 있을까?’ 의아스럽다. 오키나와에 여행갔을 때에도 꼬치구이 집에서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여자 손님이 담배를 피웠다. 바에서 꼬치를 먹는 거라 다닥다닥 붙어 앉게 되어 있었다. 연기 때문에 숨이 쉬어지질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딸 둘은 어려서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여기서도 가까운 곳에서 담배를 피니 냄새가 심하게 느껴졌다. 테이블을 보니 재떨이가 아예 끼워져 있다. 맛없는 음식에 담배 냄새. 최악의 경험을 하고 그곳을 얼른 빠져나왔다. 일본은 카페도 마찬가지다. 겉에서 봤을 때 분위기도 좋고 고상한 느낌이 들어 문을 열어보면 담배 냄새가 가득한 카페가 있다. 금연이라고 표시하지 않은 곳은 담배 냄새가 나는 카페들이 많다. 실내에서 담배에 찌든 냄새가 난다.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또 다시 놀란다.
오키나와에는 규모가 대단히 큰 수산시장이 있다. 1층은 원하는 생물을 골라 사는 곳이고 산 것들을 2층으로 올라가면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곳이다. 분위기가 어떤지 몰라 우선 2층을 올라가보았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1층 만큼 넓은 공간에 끝도 없이 놓여진 테이블, 그리고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을 휘돌아 감싸고 있는 담배연기였다. 식사와 담배를 같이 먹고 있는 느낌이랄까? 올라가자마자 목이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도 안되는데 식사를 하며 웃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광경이라고 해야하나?
‘이들은 이것이 익숙하니 괜찮은가보다’고 생각하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담배는 몸에 해로운 것이지만 선택권이 있다. 나라에서 전체적으로 홍보하고 금연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한 우리나라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게 따지면 디저트도 다 금지되어야 한다. 달고 단 빵과 과자, 아이스크림도 모두 몸에 크게 좋을 리 없다. 그러면 다 나라에서 금지시켜야 하는거 아닌가?
담배와 디저트의 차이는 확연하다. 담배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 연기는 참 멀리도 간다. 아파트 12층에 거주하는데 1층에서 피는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러니 얼마나 민폐인가? 그러나 디저트는 자기 몸은 망가질지 몰라도 남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다. 금지시킬 이유가 없다.
왜 일본은 담배에 관대할까? 일본은 후진국이 아니며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다. 남한테 피해를 입힐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나라다. 왜 유독 담배에만 무신경한걸까? 이유가 대단히 궁금하다. 점점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흡연자들이 대우받는 나라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흡연을 선택한 권리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어렸을 때 아빠가 방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좁은 방이니 그 담배 연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하루에 한 갑 넘게 피우셨으니 그 연기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는 그것에 대한 역겨움이나 위험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금연이 일반화되어있다.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워 식당 안으로 연기가 들어와도 욕을 먹는 상황이다.
도쿄에 그렇게 식당이 많지만 막상 먹을 만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터부가 심해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가서도 먹는 것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늘 일본에 가면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 로손편의점의 타마고샌드위치, 콩모찌, 그리고 푸딩이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일본을 방문한다고 하면 심한 과장이려나?
타마고 샌드위치는 씹을 필요가 없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의 기술에 감탄과 경의를 보낸다. 콩 모찌는 가격이 싸고 맛있다. 부드러운 모찌 안에 고소한 콩이 들어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만든 콩모찌가 더 맛있긴 하지만 편의점 것도 실망스럽지 않다. 푸딩. 한 스푼을 떠 입안에 넣으면 세상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내가 착해지는 것 같고 누구의 잘못도 용서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부드럽고 강렬하고 평화롭고 달콤한 맛이다.
식당을 둘러보다 겨우 들어간 곳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맛있는 곳은 줄을 서야한다. 줄 서는 것도 싫어하니 기다리지는 않는다. 겨우 들어간 곳은 가격 대비 맛이 좋지 않다. 그마저도 서서 먹어야한다. 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비싼 땅 도쿄에서 가성비는 통하지 않는 단어다. 그러러면 편의점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해야한다. 제대로 된 요리를 먹겠다면 줄을 서고 많은 돈을 지출해야한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깨끗하고 비싼 집으로 찾아가야하고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돈도 많이 들이지 않고 예약도 없이 간 곳이 맛있을 확률은 낮다. 결정장애가 있는 남편과 나는 그나마 백화점 식품매장이 선택권도 제일 많아 좋다고 찾아간다. 마음에 드는 스시를 골라 결재했지만 앉을 자리가 없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행 가서도 ‘내가 이 나이에 서서 먹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면 여행하기 힘들다. 당황스럽고 다소 불편한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도 여행의 한 페이지다. 이런 것이 싫다면 떠나지 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