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가야하는 이유
6번의 일본 여행을 경험하며 ‘여행은 날씨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날씨가 좋으면 어딜 가서 뭘 해도 즐겁다. 그동안 5번의 일본 여행은 너무 덥거나 지나치게 춥거나였다. 여름이나 겨울방학 때만 여행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공항에 내리면 숨막히게 덥거나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추웠다.
남편은 후쿠오카에 있는 ‘오호리 공원’의 호수 앞에서 오들오들 떨던 기억을 아직도 얘기한다. 아랫지방이라 춥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두꺼운 방한복을 준비하지 않았다. 된서리 맞듯 추운 바람을 맞아가며 돌아본 오호리 공원의 기억이 머릿속에 그대로 얼어있다. 강풍과 눈발로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호텔 방에서 마음 졸이던 기억도 있다. 그런 곳을 ‘지금 이 날씨에 갔더라면 얼마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본다.
더워도 여행은 맛이 안 난다. 그늘만 찾게 되고 음료수만 들이켜고 카페에 앉아 더위 식히느라 바쁘다. 아름답지 못한 기억만 있던 내게 이번 도쿄여행은 일본을 처음 가본 듯 신선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과 맑았던 날씨 덕분이다. 흩뿌리는 옅은 보슬비는 연둣빛 나뭇잎들을 푸르게 보이도록 했다. 다니기 편하니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우리나라와 다른 풍경, 색다른 글씨의 간판, 분위기가 다른 현지인들만 봐도 신기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 하나는 누구와 가느냐이다. 동행자가 중요하다. 남편이 그렇게 좋은 동행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편하긴 하다. 같이 산 세월은 무시 못 한다. 편할 뿐만 아니라 든든하기도 하다. 체크인과 체크아웃, 공항에서의 모든 절차, 음식 주문, 유사시의 자질구레한 일 처리까지 나에게 떠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이지만, 존재 자체로 든든하다. 제일 좋은 건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남편은 뭘 해도, 뭘 먹어도 괜찮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시하는 선심을 쓰는 남편이 있어 여행이 즐거웠다.
평소의 냉소적인 컨셉을 버리고 착한 남편 코스프레 하기로 작정을 했는지 모든 선택권을 나에게 양보했다. 사소한 거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해외여행이 쉽게 올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생각을 했을 때 왜 일본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로 자리매김했을까?
첫 번째로 가깝다는 것이 장점이다. 후쿠오카는 비행시간이 1시간 반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로 25분 걸린다.
두 번째로 교통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지하철 시스템이 잘 조성되어 있지만, 일본만큼 촘촘한 곳이 있을까? 일본의 철도와 지하철 지도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핑핑 돈다. JR은 기본에, 민영 지하철 노선도 조밀하다. 노선이 많고 심지어 갈아타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버스나 택시보다는 지하철이 접근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좋다 보니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지하철만 타면 못 갈 곳이 없다.
셋째로 깨끗하다. 어딜 가나 위생적이고 깔끔하니 믿음이 간다. 물만 갈아먹어도 배탈이 나는 까다로운 사람에게 여행은 위험하고 모험의 요소가 많은데 일본은 어디를 가나 비교적 깨끗하니 마음이 놓인다.
넷째로 안전하다. 외모도 비슷하고 동양권이다 보니 한국 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구별이 안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긴 하지만 말이다. 멀리서 움직이는 걸 봤을 때 서양인과 동양인 같은 뚜렷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튀고 싶지 않은 성향상 그들에게 묻혀서 다닐 수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다섯째로 음식을 들 수 있다. 여행은 새로운 음식을 체험하기 위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는 것은 중요하다. 일본은 쌀이 주식이다 보니 걱정이 없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느끼한 음식이 아니니 언제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다양한 가격대의 도시락은 물론이고 한국 음식도 판다. 김치는 기본에 잡채, 비빔밥, 불고기, 김치전까지 다 있다.
음식에 관한 강점은 편의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디에서나 접근 가능한 다양한 브랜드의 편의점은 여행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준다.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나 간식으로도 한 끼가 충분히 해결된다. 딸들은 편의점 때문에 일본을 가고 싶다고 할 정도다. 한번 들어가면 샅샅이 훑어보고 구경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니 억지로 끌고 나와야 한다. 대충 보고 필요한 것만 골라 사 오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일본어도 모르면서 꼼꼼히 패키지를 보고 보고 또 본다.
여섯째로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다. 그들의 내면세계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속은 따뜻한데 겉으로 불친절한 사람들보다 낫다. 일본에서 불친절 때문에 힘들거나 불쾌했던 기억은 아직 없다.
이 외에도 녹지가 많고 지역 특산품이 다채로워 보는 재미가 있다. 완벽한 곳은 이 세상 어디를 뒤져도 없다. 여행하기 좋은 나라를 손에 꼽았을 때 Top 5안에 들지 않을까?
나라마다 장단점, 개성과 특이점이 각각 다를 것이다. 누구는 도시 여행을 선호할 것이고 누구는 영혼의 안식을 위해 요가를 하러 떠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연을 찾아 트레킹, 번지점프, 스킨스쿠버 여행을 하러 갈 것이다. 여행에서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잊고 내려놓기 위해 간다.
거기에다 맛있고 뜨끈한 우동 한 그릇, 입안을 촉촉이 채우는 초밥 한 접시 있으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다니기에 안전하고 밤에도 유유히 불빛을 즐길 수 있다면 여행객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 되리라. ‘100% 좋았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재방문 의사 100%’라고 하면 믿어지려나? 다음의 일본 여행이 기대된다. 좋은 계절에 남편과의 도쿄 재방문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