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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24. 2024

산.책.빵.

계획만 10년째

더 나이 들어 모험을 떠날 수 없으면 책방을 하나 열어 책으로 여행하자고 남편과 얘기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니 산과 책과 빵이었다. 책방 이름을 ‘산책빵’이라고 지으면 어떠냐고 말하니 남편이 어이없어하다가 박장대소한다. ‘말이 되잖아? 산 밑에서 책과 빵을 파는 책방’ 장소는 산이 보이거나 산과 가까워야한다. 산 앞에서 책과 빵을 팔면 어떨까? 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보고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할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즐겁다.      


내가 사는 지역에 ‘뜻밖의 여행’이라는 책방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옆 좁다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책방. 이곳에 책방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가 만나 더 반갑다. 그림책, 사람, 음악 그리고 다양한 책이 있다. 언제나 환하게 맞아주는 대표님과 바깥 놀이터는 우리를 책에만 갇히게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이야기를, 노래를, 미지로의 여행을 꿈꾸게 해준다.      


‘연애’를 쓴 ‘서민선’ 작가님의 북 콘서트에서 노래를 했다. 떨리고 긴장돼 가사를 잊어버릴까봐 마음을 졸였다. 노래하는 때 만큼은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앞에 앉은 관객 한명 한명을 또렷이 보면서 가사를 음미하면서 노래를 했다.   

   

중년의 나이에 오붓한 장소에서 육성으로 노래하니 20대의 대학 시절이 오버랩되어 생각났다. 예나 지금이나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나의 노래가 특별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충만해 노래했다.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분필과 교실이 익숙하던 내가 책방에서 노래하게 될 줄. 남들이 감동을 하든 어떻든 혼자 마음속에 무지개 하나 띄우며 노래를 부른다.  

   

불가능한 현실이라 생각하며 꿈만 꾸었었다. 오래도록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지는구나. 나의 무모함에 기름이 부어지는 순간이다. 이제 희망하던 것들을 하나둘씩 완성해가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누군가가 내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쳐주는 일.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즐거워하는 소리. 살아있다고,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응원하는 소리를 듣는다.    

  



책방은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다. 무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와인강의를 하든, 언어교습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악기를 연주하든, 시를 낭송하든, 공부를하든 그 무엇을 해도 다 빨아들일 수 있다. 책을 매개로, 책을 베이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모든 것으로의 여행이 가능한 곳, 책방이다.    

  

전직 대통령의 새로운 직업이 책방대표이니 책방사장님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도 서촌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양재동에 있을 때 여러번 들렀던 그곳이 한강 작가의 책방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때도 예사롭지 않은 책방이라 여겼었는데...  

   

공원과 책방은 도시를 숨쉬게 한다. 늘어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고기집, 4컷 사진관, 핸드폰대리점과 화장품 가게등 어디를 가나 비슷한 것들만 경험하는 시민들에게 책방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책방은 비슷한 듯 많이 다르다. 사장님의 취향대로 꾸며져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음료를 함께 파는 곳도 있고 오로지 책만 다루는 곳도 있다. 때로는 소량의 굿즈도 판매하는 곳을 볼 수 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책방을 꼭 들른다. 그러면 더 여행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책방을 들어설 때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한다. 이곳은 어떤 사장님이 무슨 책을 어떻게 진열해놓았을까? 좋아하는 성향의 책들이 많이 있을지, 인테리어는 무슨 분위기를 자아낼지 궁금해진다.     

 



슬렁슬렁 태평하게 책방안에서 책꽂이에 꽂힌 책등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나른하고 평화롭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책방 주인이 추천해주는 책을 사고 나오는 발걸음은 내가 책방이 존재하도록 조금의 힘을 보탰구나 하는 마음으로 왠지 더 뿌듯하다. 없어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에 별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책방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언제든 가서 반갑게 책과 조우하리라. 비가 오는 추적한 날씨여도 좋고 눈이 살포시 땅을 덮은 날이어도 좋다.   

   

서울대 앞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살롱 드 북' 책방에서는 겨울이면 손님에게 군고구마를 내어준다. 물론 운이 좋으면 얻어 먹을 수 있다. 술과 책을 함께 파는 곳인데 겨울에 가서 계피를 넣고 끓인 뱅쇼를 마신 적이 있다. 책도 책이지만 그 뱅쇼맛을 잊을 수가 없다. 뱅쇼를 파는 곳이야 찾으면 많겠지만 책방에서 마신 뱅쇼라 더 맛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작은 책방이었지만 의미만큼은 거대한 책방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나와버리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곳, 책방, 무한한 상상력과 위로와 나눔이 가능한 곳, 말과 글과 대화와 문장이 떠다니는 공간, 책방, 더 많아지면 좋겠다. 운영할 자신은 없지만 어디든 찾아가 문을 열 자신은 있다. 더 아늑하고 더 지적이고 더 풍성한 책방이 주변에 오픈하면 좋겠다. 작은 꽃다발 수줍게 들고 들어가 오픈을 축하하고 싶어 왔다고 하면 주인이 놀라겠지? 당신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어렵더라도 우리를 위해 존재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산책빵’ 오픈은 요원하지만 가까운 ‘뜻밖의 여행’을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 할 수 있길 바래본다.  ‘북 콘서트’ 하게 될 날을. 나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고 나누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예술의 가장 심층적인 본능은 예술을 향하고 있지 않다. 예술의 유일한 의미는 삶이다. 삶이 소망하는 것들을 예술이 드러냈다.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예술이란 결국 삶의 문제다. 예술은 삶을 고양시키는 것을 찬미하고 삶을 약화시키는 것들에 반대해왔다. 예술이 예술로만 존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예술은 오직 삶을 위해서만, 삶에 근거해서만 존재해왔다.     


*출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프레드리히 니체, 김욱 번역, 포레스트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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