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미룰 수 없다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뿌릉 뿌릉 뿌르르릉"
둘째가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이끝에서 저끝으로
온 집안을 휘젓는다. 신난 게다.
잘 잤고 아침밥도 잘 먹었고 기분 최고인 거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복잡한 싱크대 위는
이미 한바탕 참견한 뒤다.
"엄마~~"
말을 배운 첫째가 목청을 높인다.
화장실에 가려는 모양이다.
"아라, 화장실 갈 거야? 얼른 가. "
"엄마~~~~"
쩌렁쩌렁 소리가 더 커졌다.
이쯤 되면 화장실 앞으로 가 주어야 한다.
"어이구 질 했네. 잘했어. 기특해!"
볼 일 보고 나오는 아라에게 한바탕 칭찬을 쏟아붓는다.
잠시 후 "끼룩끼룩" 물개 한 마리가 나를 부른다.
둘째 깨비가 화장실 가겠다고 부르는 소리다.
"응, 얼른 가. 아이구 이뻐~ 이뻐, 내 새끼"
사랑 담뿍 담은 목소리로 칭찬을 날리고
다시 주방으로 가 아침밥을 준비한다.
언제 적 더위였나 싶게 제법 선선함이 느껴지는
이른 아침이지만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반복되는 탈락으로 주눅 들 법도 하건만 외려
뛰어 봐도 손이 닿지 않는 포도를 바라보는
이솝우화의 여우 마냥
"어차피 저건 시어서 못 먹어." 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었다.
대신 그 시점에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어쩌면 내가 본 그것 때문에 '신포도가 분명해' 하고
쉬이 마음을 접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팔로워 0명인 인스타그램이 보여주는 세계는 놀라웠다. 이모티콘 제출할 때 적어야 해서 더듬더듬 만들었던 계정이다. 세상이 이제 막 열린 것 마냥 아무것도 없었다. 나 혼자인 것처럼 고요하고 쓸쓸했다.
그저 하얀 세상...
드물게 광고 피드가 올라왔다.
'뭐야, 암 껏도 없네?' 투덜투덜 한참을 헤매다가 이모티콘 그림 한 장을 올렸다. 그제야 희미하게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장 더 올렸을 때는 조금 더 보였다.
낯 선 세상이 느리게 느리게 채워졌다.
서투름에서 비롯한 생경함이 누그러질 무렵,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어머나, 세상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그림은 미대 나온 사람들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였다.
"그래도 되는 거야?" 솔깃했다.
그리고 나는 그 꾐에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그림 그릴 거야." 했다.
"개나 소나 다 그려" 하는 조롱의 대상에
합류하기로 작정한 거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다짐했다.
"2000장 그려보자. 되나 안 되나."
막무가내식 다짐을 했다.
물감 사용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 테이블의 일부가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의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거실 테이블은 식탁으로도 쓰인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우리 집의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소파에 드러누워
TV나 보는 곳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파를 치우고 6인용 테이블을 들였다.
수시로 조임이 풀려 다리가 흔들거리는 주방 식탁도
그 참에 치웠다.
넓은 거실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는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다가도 때가 되면 싹 치우고
그 자리에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내게 딱 맞는 그림 도구는 물감이 아니라
노트북이었다. 남편이 오래되었다고 밀쳐 둔 아이패드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려니 목이며 눈이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래서 고심 끝에 아주 괜찮은 값비싼 노트북을 장만했다. 그러느라 고양이들 일 년치 밥값이 나갔다.
하지만 괜찮았다. 곧 벌 수 있을 테니까.
컴퓨터로 그린 그림도 판매할 수 있겠더라.
새록새록 꿈이 자랐다. 몽글몽글 희망이 솟구쳤다.
마음먹으면 독하게 하는 축에 속한다.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악착같이 끌어 모으니 일상을 살고도 하루 4~5시간은 그릴 수 있겠더라.
매일 그렸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와콤 태블릿이 닳아서 반질반질 해졌다. 여전히 그림은 돈벌이가 되지 못한 채다. 아니,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팔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욕심이 났다.
컴퓨터가 아니라 진짜 물감으로 그리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수채화 물감처럼, 아크릴 물감처럼, 연필처럼이 아니라 진짜 물감, 진짜 연필로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될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늘어놓은 것들을 치워야 한다.
게다가 고양이가 만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꼴깍, 마른침만 삼켰다.
'나중에... 그래 나중에...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2023년 2월 5일.
그럴 계획은 아예 없었는데, 엄마가 죽었다.
그날의 기막힘과 슬픔은 곧 3주기를 맞는 지금도
그저 눈물이다.
그때 알았다.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는 것을...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장례 치르고 수개월 동안
캄캄한 새벽에 절로 눈이 떠졌다.
엄마 죽기 전 날로 돌아가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무엇을 놓쳤을까? 언제 엄마 손을 놓쳤을까?'
살피고 또 살폈지만 돌이킬 수 없었고
그러느라 새벽잠마저 아예 달아났다.
엄마는 영원히 시간 밖으로 간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고된 하루를 살고 다시 잠을 자는
흡사 굴레처럼 느껴졌던 시간을 더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엄마가 쓴 일기와 흔적들을 살피며 알았다.
늙고 아팠지만 살고 싶었다는 것을.
곧 봄이 되면 필, 꽃도 보고 싶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 되었다.
헛된 꿈이었나 보다 싶게 되었다.
'나중에... 그래 나중에...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야.'
그 '나중에'가, 그 '언젠가'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할 만한 때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재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진짜 색연필, 진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지 않을 언젠가를 기다리느라
마지막 눈을 감는 그때
"해 볼 걸. 그때 해 볼걸 그랬어."
하는 후회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딱 한 번뿐인 삶이다.
이미 쉰을 지나,
남은 시간이 살아 낸 시간의 절반이나 될까 싶은 지금,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