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의 시작
내가 챙겨주는 물과 밥 그리고, 안전한 곳에 마련된 겨울집은 어떻게든 사람들 곁에 빌붙어 살고픈 -설령 그들이 반기지 않을지라도- 서러운 운명의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에 가느다란 희망을 비끄러매고 진종일 앉아 닫힌 배출함이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추위를 피해 숨어 들어간 지하주차장에서 쫓기듯 도망치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처음에는 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느냐 성을 내는 주민들도 있었다. 고양이는 산에 내다 버려라 하면서 자신의 개를 예뻐라 하며 산책시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자기 개에게 물어라 명령하는 기막힌 아저씨도 있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돌을 던졌다. 마침 그 모습을 내가 목격했고 또다시 돌을 집어 든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강하게 항의하는 내게 그는 잠시 뭐라 중얼거리더니 개와 함께 물러섰다. 아주 큰 개였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사람들 없다. 고맙게도 모두들 이쁘단다. 동네 꼬맹이들은 이름까지 불러가며 사진을 찍 는다. 깨끗하고 좋은 것을 먹인 탓에 음식물 배출함 근처에 얘들이 서성이는 일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 인적 드문 곳에 겨울 집을 마련해 주었기에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성가신 일을 만들지도 않는다.
일정하게 밥을 챙기는 이가 있어야 중성화 수술을 시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개체수 조절도 가능하다.
아예 아파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야무진 꿈일 뿐이다. 녀석들이 사라지더라도 곧 다른 녀석들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겁에 질린 고양이들로 말이다.
그러니 고양이 없는 아파트 단지는 헛된 희망이다.
얼마 전 창문밖 나무 위에서 난리가 났었다. 마치, 온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것 마냥 요만조만 사나운 것이 아니어서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물까치들이 뭔가에 놀란 듯 혼비백산하여 나무 주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 소란에 물까치보다 두 배는 족히 커 보이는 까마귀 한 마리가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풉하고 나왔다. "저 녀석이 왜 왔지?" 내가 아는 까마귀다.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늘어진 장미덩굴 근처의 키 큰 나무에서 본 적 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녀석이 제 나무에서 40m 정도 떨어진 물까치 가족이 둥지를 튼 나무에 앉았다가 봉변을 당하는 중이다. 며칠 뒤 이번에는 반대쪽 창문 밖이 요란하길래 나가봤더니 역시나 그 녀석이 불청객이 되어 또 다른 물까치들에게 혼나고 있더라.
나무도 하늘도 땅도 모두 제 영역인 것처럼 으름장을 놓는 기세에 눌리는 것은 까마귀뿐이 아니다. 제 갈 길 가는 고양이도 사람도 일단 후들겨 패고 본다. 끝없을 하늘을 나는 까치도 자기 영역을 주장하는데, 땅을 딛고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고양이는 오죽할까 싶다.
내가 녀석들의 급식소를 챙기기 전에는 고양이들 싸우는 소리에 종종 새벽잠을 뒤척이고는 했다. 지금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드물다. 아파트 안에 급식소는 두 곳 더 있다. 내가 챙기는 곳은 아파트에 정주하는 녀석들의 급식소다. 다른 이들이 챙기는 두 곳은 불규칙적으로 오가는 고양이들을 위한 곳이다. 이렇게 거리를 두어 물과 사료를 챙겨주면 다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객이 주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랜 시간 주인으로 살아온 고양이들이 영역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할 테니 말이다.
고양이들 챙기는 사료값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내 마음이 움직여 스스로 시작한 일이다.
마음만이었다면 낭만이었겠지만 행했기에 현실이 되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 말이다.
어느 날엔가는 낯선 대학생이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와서 고양이들을 챙겼다. 그런 날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예뻐서 챙겨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학생, 아주 가끔은 괜찮은데 자주는 그러지 마요. 반복되면 얘들이 기다리거든. 아직 학생은 즐겨야 할 것도 할 일도 많은데 얘들에게 매이면 안 되잖아요. 매이면 많이 힘들 거라서."라고 귀띔해 주었다.
경험자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그렇다고 내가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 다행이다 생각한다.
이 녀석들 아니었다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사람들끼리만 얽혀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 아닌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설레고 멋진 일이다.
물론 삶의 시계가 빠른 그들이기에 아픔과 슬픔도 잦다. 함께 나누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중간에 그만두어 그들로 하여금 기다려도 오지 않는 슬픔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2024년 11월까지 일을 했다.
그때까지만 일을 할 거라고 2021년부터 호언했었다.
더 하려고 마음먹으면 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1년 여름, 미리 준비하겠노라 세운 대책이 결코 대책이 될 수 없는 창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했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는 생뚱맞게 이모티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유명한 카카오 이모티콘 말이다. 제법 쏠쏠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솔깃했다.
'마음먹었으면 주저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나의 장점일 수도 있겠다.
아, 그동안 하던 일은 이것과 완전... 전혀... 무관하다.
전에 하던 일은 종일 수학문제 푸는 일이었다.
나의 또 다른 장점은 비교적 빨리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이모티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필요한 도구는 연습 없이 실전에서 배운다.
도전은 6개월 정도 계속되었다. 꾸준히 탈락했다.
왜 떨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될 때까지 하련다 다짐했다. 아둔하게도 말이다. 지금은 알고 있다.
내 이모티콘이 심사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첫째는 감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생전 이모티콘을 돈 주고 사 본 적 없다. 그러니 감각은 무슨...
둘째는 감각이 딸리면 유명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지극히 아주 지극히 평범했다.
SNS 계정 적어 내라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왜 필요할까? 구시렁거리며
부랴부랴 조건 맞추느라 인스타그램 계정을 팠다.
팔로워 0명.
그렇게 현실을 파악하고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불행하게도 나는 더 무모한 시도를 결심했다.
흡사 망상에 빠진 돈키호테처럼
부실한 창과 방패를 들고 달려들었다.
다만, 둘시네아 공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 밥값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