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할 수 없는 거라서

후회하지 않는다

by 꿈쟁이

"키우는 아이예요?"

"아니요, 제가 챙기는 아이예요."

"아... 그래요? 항상 여기 이렇게 있길래..."

"저희 집 밑에 얘 겨울집도 있어요. 이 녀석 형제는

저희 집에 있고요."

"그렇구나. 애가 너무 이뻐요. 깨끗하고.

길고양이 같지 않네요."

집 앞을 지나던 이웃 주민과 창을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오가는 말이 퍽 궁금했던지

잠든 것처럼 늘어져 있던 두 고양이가 내 곁으로

다가와 둘레둘레 창밖을 살핀다.

나를 바라고 앉아 있던 창밖 고양이도 낯선 이의

반갑지 않은 호기심에 화들짝 놀라 자리를 피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창문 밖 마당(아파트 풀밭)에서 나를 기다리는 먹

"골절입니다."

녀석을 살피던 수의사는 주저함 없이 주사를 놓았다.

"진통제예요. 많이 아팠을 거예요."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 사진을 보여주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왼쪽 뒷다리 대퇴부 골절이었다.

골두가 관절에 끼워진 채로.

"수술해야 합니다. 관절에 박힌 골두 제거해야 합니다"


작년 8월 중순이었다. 소문만 무성했던 새끼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때가.

넘버투와 그를 따랐던 새끼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춘

이후 적어도 2년 동안은 대장과 설이를 비롯한

중성화된 예닐곱 마리가 전부였다.

동네 꼬맹이들이 새끼 고양이를 봤다고 했을 때도

아니겠지 했었다. 반드시 그랬어야 했다.

아... 그런데... 한꺼번에 모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중 한 녀석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한 번 본 적 없는 어미 고양이가 원망스러웠다. "어쩌자고 저 어린것을... 올 겨울 무사히 날 수 있을까?"

녀석들은 매일 도장을 찍었다.

먹성은 또 어찌나 좋던지...

제일 작은 녀석이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먹었다.

'살겠구나. 너.'

<마법사 호이와 깡이의 첫 만남, 재생 코튼지 위에 유화물감, 2025>


볼 때마다 걱정이었던 녀석은

깨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둘째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삶은 눈치가 빠르다. 적어도 내 삶은 그렇다.

11월 말... 17년 넘게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알바처럼 해 왔던 일이다.

대학 졸업 이후 세 번의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출산 휴가

60일을 제외하면 일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이제 좀 자유로워지자 했는데...

삶은 내가 한가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모양이다.

딱 그 시점에 맞추어 깨비가 다친 채로 내게 왔다.

망설였다.

큰돈 들여 중성화 수술시켜 준 것이 불과 십여 일 전이다.

-수술 후 안전한 회복을 위해 세 녀석 모두 5일씩 입원시켰다. 그러느라 제법 큰돈이 들었다.


글렀다.

독한 마음먹어도 봤지만 이대로는 두 다리 뻗고 잘 수 없다.

치료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후 상당히 힘들어질 나도 상상했었다.

하지만... 생명의 끝은 리셋할 수 없는 거잖아.

방법이 있겠지... 어떻게든...

치료는 반드시 수술을 필요로 했다.

십일 조금 넘게 입원시켰다.

혹시나 해서 입양처를 수소문해 봤지만 별 소득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인연이 내게 닿아 있었나 보다.

가까스로 찾은 입양처가 있었지만

보낸 지 일주일 못되어 파양 시켰다.

<올 겨울은 따뜻할 거야, 재생 코튼지, 수채화 물감 2024>

한 유명 수의사가 그러더라.

삶에서 세 손가락 안에 반려동물을 꼽을 수 없다면

입양하지 마라.


겨우 동물 하나 들이는 것 가지고 그렇게까지 유난이냐

싶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애지중지 물고 빨며 키우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이유가 수십 수백 가지다. 저마다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변명이다. 얘들도 감정이 있어서 버려졌구나라는 것도, 상실의 슬픔도 다 느낀다.

이들에게 보호자는 생사여탈을 쥔 신이다.

기왕 그들의 삶에 개입했다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기억이 쌓이는 선반, 나무 패널 위에 아크릴 물감, 2024>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의 삶은 무척이나 고되다.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첫째 고양이와의 합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뭐 서로 부둥켜안고 자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함께 살기에는 훌륭하다.

5년 가까이 외동으로 살던 첫째에게 갑작스러운 둘째는 날벼락이었을 테니까.

여행이 불가하다는 것도 청소를 자주 해야 한다는 것도

불편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못 견딜 어려움은 아니다.

두 녀석 빗질, 양치질 등의 교육도 잘 되었다.

그렇다면 뭐가?

이제 겨우 한 살을 넘긴 둘째의 체력이다.

큰 녀석 얼추 끝내고 조금 여유로워지려나 했는데,

이 놈의 체력은 큰 놈보다 1.5배 강하고

그때보다 나는 나이 들어 힘들다.

그런 서글픈 사정을 봐줄 리 없는 녀석과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무진장 놀아야 한다.

놀려고 먹는 것도 마다하는 놈이다.

낚싯대 여유롭고 우아하게 흔드는 것?

놉!

장난감 흔들며 발바닥이 아프도록 뛰어야 한다.

올여름 같은 더위에는 에어컨을 켜놓아도 죽을 맛이다.

하지만 오늘 밤의 안녕을 위해 멈출 수 없다.

남아도는 에너지를 큰 놈 귀찮게 하는데 쏟아붓거나

밤새 나를 깨우겠다고 갖은 수를 쓸 테니 말이다.

게다가 남편이나 아들이 놀아주는 것을 굳이 마다한다.

큰 놈도 작은놈도...

오직... 나에게만... 그 영광스러운 일을 허락한다.


그런데도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얘들이 이쁘다.

하루에도 수백 번 이쁘다고 외친다.

그래서 힘들어도 절망은 아닌가 보다.

때 이른 폭설에 온 세상이 하얗게 시리던 날,

아픈 다리를 끌고 바들바들 떨며 나를 기다리던 너를

담요로 감싸 안고 뛰었던

나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비루한 작업 공간마저 함께 나누자고

드러눕는 네가 밉지만은 않아서

내 가난한 시간마저 덜어 달라 떼쓰는 너와 함께

나는 또 곤궁한 형편에 맞는 방법을 찾아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이 썩 나쁘지는 않구나.

<비밀의 정원, 나무 판넬 위에 유화물감, 2024>
첫째 아라, 둘째 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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