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서 미안해
먼 미래?
혹은 지금 당장?
어쨌든 지구에 외계 생명체가 왔다고 상상해 보자.
소위 말하는 외계인 말이다.
왜?
우리가 지구에 온 이유는
특수한 물질을 구하기 위함이네.
그것은 절멸의 위험에 처한
우리 별의 운명을 구할 것이네.
오늘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우주를 헤맸어야 했지만 마침내 찾았다네.
푸르게 빛나는 이 행성에서 말일세.
양은 충분하네. 자그마치 80억이 넘는다고 하더군.
게다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수고로움을 덜었지 뭔가. 아, 물론 우리는 그대들을 해칠 생각은 없다네. 단지 그대들의 혈액 속에서 일정 성분만 채취하면 되니까. 또... 그 성분 전부를 뽑아내지도 않을 걸세. 딱 70%만... 안전하게 말일세.
그대들이 제 발로 와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뜻을 전할 길이 없으니. 너무 놀라지는 말게나.
그물로 포획할 생각이네.
그리고 혹시라도 움직여서 다치면 안 되겠지.
그래서 꼼짝 못 하게 묶을 것일세. 역시 안전을 위해서. 워-워- 겁낼 필요 없다니까.
조금만 참으면 곧 끝날 거라네.
그리고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겠네. 그러니 아무 문제없을 것일세.
지구인이여! 그대들이 우리 별을 구했네.
영광스럽지 않나?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인류는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현실판인 것처럼.
모두 알다시피 전염력은 상당했으며 기저질환자와 노인층의 사망률도 높았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한시가 급했다. 유명한 제약사들은 앞을 다투어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무렵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그 잔혹함에 눈물이 났다. S.F. 영화에서나 볼법한 차갑고 무서운 기계에 투구게가 꼼짝달싹 못하고 붙들려 있다. 투구게의 몸 밖으로 체액이 흘러나왔다. 파란 피다. 척. 척. 척. 붙들린 투구게들은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파란 피를 뽑힌 투구게들은 인류 구원의 영광스러운 임무를 다하고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살려주는 거라 말하지만 사실은 무덤이다.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깊은 바다, 4억 5천만 년을 태곳적 그 모습 그대로 인간을 모른 채 살아온 투구게가
고작 30만 년 남짓한 역사의 사피엔스에 의해 절멸할 운명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요긴한 것은 그것이 생명이든 뭐든 개의치 않는다. '나만 살면 그만이다.'
빨간 불이다. 멈춰야지. 하필 앞차가 트럭이다. 까딱까딱 움직임이 없었다면 그저 붉게 녹슨 철창을 잔뜩 실은 트럭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저게 뭐지?' 유심히 살피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까딱거리는 것은 닭이었다. 많다. 층층이 쌓인 닭의 머리들이 허공을 휘저으며 공허하게 움직였다. 몸뚱이는 갇혔다. 유일하게 머리만 자유롭다. 아니다. 그들 공간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너무 좁았으니까. 그래서 한껏 모가지를 뽑아내 좁은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는 몸뚱이를 배려하는 것이다. 죽어야 끝나는 감옥에 갇힌 그들이다. 왜 태어났니? 답 없는 물음을 답할 수 없는 그들에게 던졌다.
생명체일까? 아님 그저 먹이일까? 태어난 이유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함이라니... 매일매일 살아있는 것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서글픈 숙명을 탓해야 하려나.
소리쳐 불러도 대답은커녕 메아리조차 잠잠한 그곳 우주, 그곳에 먼저 닿은 것도 개, 고양이, 원숭이였다.
그들도 궁금했을까? 지구 밖을.
실험실에서는 인간을 대신해 사람 아닌 동물들에게 온갖 다양한 실험을 해댄다.
물론 그들이 나선 바 없다.
실험의 성과를 그들과 함께 나눌 것도 아니다.
이미 충분한 데이터가 쌓여 더 이상의 동물 실험은 실익이 없다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맞다. 2020년 6월, 삐쩍 마른 어미 고양이를 못 본 척할 수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서 종일 서성이는 고양이들도 보았고, 하얀 눈밭을 뛰놀던 새끼 고양이들도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혹여 길 가다가 마주칠까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내가 사는 주변을 어지럽히지나 않을까? 얼굴 찌푸렸다. 집 주변에 개미 한 마리, 거미 한 마리 보이면 당연히 못 볼걸 본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다.
왜냐면 사람이니까.
사람 주변에는 사람만 살아야 하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존재,
그것이 새나 동물이라면 유해조수,
곤충이라면 해충, 풀이라면 잡초,
그런 것들은 죄다 죽이고 뽑아내야 한다.
나의 영역에는 오로지 나만 살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미안해졌다.
사람이라서 미안했다.
사람들이 땅바닥에 보이지도 않는 금을 그어
네 땅 내 땅 땅을 나누기 훨씬 전부터
사람 아닌 그들이 먼저 터 잡아 살고 있었다.
그들을 무참히 짓밟은 이는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울 수 있는
스스로 전지전능한 사람이다.
그동안 반려 동물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가 감당할만한 때가 오면
유기견이든 유기묘든 딱 한 아이는 내가 함께 하리라 마음먹었다.
일종의 속죄? 그런 것이었다.
그 시점에 내 눈에 들어온 녀석들이 고양이들이었다,
내가 동물 애호가여서가 아니라
사람 아닌 동물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아파트 안에 머무는 어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못 되어서
상가 건물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삐약삐약 몇 날 며칠을 울고 있던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구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감당할만한 때가 그때였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의 준비도 덜 되었고 경제적인 면도 그렇고...
나 말고 다른 식구들 동의도 얻어야 하고...
그야말로 사고였다.
구해 놓고도 망설였다.
비만 그치면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결국 500g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아가를 식구로 맞이했다.
그 아이가 나의 첫 반려묘 아라다.
6년째 그를 뫼시고 살고 있다.
*연재중인 브런치북 "고양이 밥값"에 올라갔어야 했는데 오류가 있었네요.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