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넘버투
재잘재잘 쫑알대며 아파트 뒤뜰을
우르르 쏘다니던 다섯 고양이
창문밖 그들이 지났던 벚나무는 올해 더 높이 자랐다.
습도 85%의 여름이 가고 까슬까슬한 가을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왔니?" 하고
인사하려는데 벌써 저만치 달아났다.
"단풍이야 들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냐."
손사래를 치며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하고
매정하게 돌아선 것이다.
가을이 짧게 머물다 떠난 자리는 매서운 겨울이 차지할 것이 뻔해서 나는 불안해졌다.
치즈들은 수컷이니 내년 봄으로 미루어도 되겠으나
알록달록 카오스가 걱정이다.
고양이들의 성장은 꽤 빨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를 낳을 수도 있다.
겨울에 새끼를 낳는다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설상가상 지자체 TNR은 이미 끝났다.
어쩔 수 없네. 사비를 털었다.
그나마 서로 힘을 보탤 수 있는 이웃이 둘이나 되어서 다행이다. 기왕에 하는 거 아파트 상가 근처를 오가는 고양이들도 포획하기로 했다.
기억이 맞다면 모두 여섯 마리를 수술시켰던 것 같다.
드디어, 가을이 일찍 자리를 뜨며 예고했던 것처럼 올 것이 왔으니 겨울이로구나. 내 그럴 줄 알고 미리 겨울집을 넉넉하게 마련해 두었지.
대장과 넘버투 그리고 꼬맹이들 중 수컷 세 마리 강과 산, 쩡,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흉포한 겨울을 견뎠다.
암컷 달이는 아파트 상가 쪽으로 독립했다.
아주 가끔 제 형제들을 만나러 왔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날, 아직은 마냥 어린 꼬맹이들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아 눈부시게 빛나는 눈밭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제법 살아 본 넘버투와 대장이
나도 그랬다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애썼다. 제 아무리 찬바람 쌩쌩 엄포를 놓는 겨울도 이제는 별 수 없겠구나. 1월을 꽉 채워 보내고 2월을 맞았으니 꼿꼿하게 쳐들었던 고개를 숙일 수밖에.
곧 들려 올 봄소식에 마음이 놓이던 그때, 엄마가 죽었다. 어제 점심을 같이 먹었고 컴컴한 저녁까지 함께 있었는데, 집에 와서도 잘 도착했노라 통화도 했었는데, 밤늦게 카톡도 했는데, 오늘 아침 나빠진 몸이 걱정되어 응급실에 가셨어도 큰 일 아니라 했는데, 병원에서 주는 저녁밥이 삼켜지지 않는다며 아빠 드시라 했다는데... 아빠가 그 밥을 다 드시고 돌아섰을 때 엄마는 막 떠나셨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먼 길을.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때도 얘들은 여전했다.
나 없어도 물과 먹을 것을 챙겨 준 이웃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울 엄마가 추위까지 데려간 탓일까?
명랑한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시큰거리고 자꾸만 시야가 흐릿해졌다.
"살아라. 얘들아!
너희들도 딱 한 번 사는 것이니 잘 살아라."
매일 새벽, 절로 눈이 떠지면
"언제 엄마의 손을 놓쳤을까?" 자책했다.
그러는 사이 녀석들의 머리 위로 핀 줄도 몰랐던 벚꽃 잎이 날렸다. 꽃 냄새를 맡은 녀석들의 발걸음은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가볍다.
나 핑크색이야 으스대는 벚꽃에게 질세라,
촌티 팍팍 분홍색과 주황색을 당당하게 뿜어내는
영산홍 틈바구니를 비집고, 삐죽 솟은 풀잎을
꼬맹이들이 아무렇게나 헤집고 다니며 참견했다.
좋은 게로구나!
겨우내 뜯을 수 없었던 풀이 자라고 있으니.
게다가 새순이니 얼마나 맛날까?
볏과의 풀은 얘들의 주식은 아니지만 드물게 먹는다.
이 봄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무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서만 머물거라."
넘버투라 이름 지은 지 일 년 하고 반이 지났다.
꼬맹이들이 어미 손에 끌려 왔다가 눌러앉은 지도
딱 일 년이 되었다.
둥글게 돌아가는 시계는
우리를 다시 여름 한복판에 데려다 놓았다.
봄이 한창일 무렵부터 넘버투는 가끔 기침을 했다.
"좀 지나면 괜찮을 거야. 잘 먹자! "
옛날 내 어미가 그런 것처럼 나도 그랬다.
어느 날부터는 콧물도 났다.
몇 해를 살았을까?
내가 보았던 것만 해도 3년은 족히 되니
혹 감기라 해도 견뎌낼 수 있겠지 했었는데...
지랄 맞은 날씨 탓일까?
여름이 되니 더 심해졌다.
약을 처방받아 먹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집에 키우는 고양이 약 먹이기도 어려운데
집 밖의 고양이는...
이미 구내염으로 고생 많았던 녀석을 경험해 봤기에
쉬이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 떠나고 혼자 남겨진 아빠의 삶도
살펴야 했기에 좀처럼 여유가 없었다.
모처럼 하늘이 개이고,
늘 축축하게 젖어 있던 땅도 바삭하게 말랐다.
차갑게 식힌 파우치와 캔 하나로 만족한 녀석들은
잘 마른 땅 위에 서로서로 기대어 누워
발그레하게 번지는 석양을 즐겼다.
지나가던 주민이 "어쩜 이렇게 예뻐요?"
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넘버투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영역을 순찰하느라 때를 놓치는 날도 있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담 내일은 오겠지.
또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바쁘구나.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넘버투가 보이지 않게 되자
나머지 꼬맹이들도 하나 둘 흩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가슴이 뻐근해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꼬맹이들 때문에
내 지갑은 정신없이 바빴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 참 얄궂다.
눈물이 무색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만약에 만약에 살아는 있는 거라면 한 번쯤은 올 텐데.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굿 바이, 넘버투"
이미 단짝을 잃어 본 적 있는
대장은
우르르 신났던 봄이
꿈인양 아련하다.
넘버투에 쫓겨 멀찍이 서서 주는 밥만 먹고
쌩하고 돌아섰던 암컷 고양이 설이가 다가왔다.
온몸에 상냥함을 담뿍 담아 내게도 앙앙거리고
대장 곁에도 서 본다.
그런 설이를 대장이 단박에 쫓았다.
"너도 어느 집 집고양이로 태어나지 그랬니.
그랬으면 참 예쁨 받았을 텐데."
나를 바라고 처연하게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대장을 타박했다.